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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Apr 22. 2023

트라우마와의 화해

문빔

"엄마, 일어나셔야지요."

살짝 방문을 열어본다.

친정엄마가

"몇 신데."

그 소리에 콩당거리던 가슴이 진정되었다.


나는 트라우마가 있다. 그 트라우마는 벌써 25년이 넘었지만 요즈음도 트라우마와 화해하지 못하고 있다.


결혼하고 따로 사시던 시어머니께서 뇌출혈로 쓰러지고 한방병원에 입원하셨다. 치료를 하였지만 왼쪽 팔과 다리를 잘 못쓰게 되셨다. 혼자 생활하기 어려워 퇴원하시며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우리 부부는 작은 방을 사용하고 안방이 커서 여섯 살, 여덟 살 아들 둘과 시어머님이 함께 사용했다. 그날이 일요일이서 맞벌이 하던 우리는 조금 늦게 일어났다. 거실에서 아들 둘이 놀고 있었다.

"할머니 안 일어나셨네."

"제가 깨웠는데 할머니가 안 일어나세요."


순간 전율이 느껴지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안방 문을 살짝 열며

"어머니, 식사하셔야지요."

기척이 없으셨다.

방으로 들어간 남편이

"어머니!" 하며 오열을 하였다.


시어머니는 그렇게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 전날 저녁도 함께 맛있게 드시고 주무시러 들어가셨는데 아침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참 허망하였다.


그때부터 트라우마가 생겼다. 남편이 자고 있으면 가까이 가서 손으로 숨을 쉬는지 확인한다. 특히 요즈음엔 친정엄마가 주무시는 문을 아침에 열려고 하면 가슴이 두근 거린다. 그래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을 살짝 열고 기척을 살핀다.


친정엄마가 장기요양급여 4등급을 받고 주야간 보호센터에 나가신 지 1년 반이 되었다. 오늘도  유치원생이 등원하듯 보호센터 차를 타고 집 앞에서 출발했다. 보호센터를 복지관이라 부르며 매일 신나서 가신다.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서  함께 살며 마음이 편하다고 하신다.


친정엄마는 늘 말씀하신다.

"그저 자는 듯 세상을 떠나고 싶어. 나는 아는 사람이 죽음의 복을 잘 타고났다고 했어."

'주무시다가 자는 듯 세상을 떠나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구나.'

생각하니 트라우마가 조금씩 옅어졌다. 이제 힘들었던 트라우마와 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요즈음 밤새 안녕이란 말을 생각한다. 친정엄마 소원처럼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다가 자는 듯 세상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파서 몇 년씩 고생하다가 힘들게 가시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친정엄마 덕분에 트라우마와 화해할 수 있어 다행이다.


친정엄마 살아계실 동안 최선을 다해 돌봐드려야겠다고 다짐한다. 나중에 후회가 한 톨도 남지 않도록 말이다.



친정엄마가 살아 계실 때 쓴 글이다. 좋은 생각 공모전에 제출할까 하고 분량에 맞추어 쓴 글이다. 2월 초에 썼는데 2월 말에 친정엄마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친정엄마 소원대로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 전신 마취하고 검사받으시다가 심장이 멈추셨으니 주무시다가 돌아가신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고생 많이 하지 않으시고 돌아가셔서 좋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많이 서운하다. 옆에 계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옆자리가 비었다고 생각하면 그 마음이 얼마나 허전할지 짐작하실 것 같다.


엄마가 천국에 가셔서 아프지 않고 영원히 사실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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