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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an 29. 2023

초콜릿 빈통이 새 모이통으로 변신

초콜릿통 /새 모이통으로 변신


토요일 오후에 둥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혹시 작은아들이 보냈나 싶어 얼른 열어보았다. 카톡의 주인공은 퇴직하기 전에 함께 근무했던 이 보안관님이셨다. 동영상과 함께 초콜릿 빈통으로 새 모이통을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영상을 보니 멋진 새 모이통이 연못가 나무에 매달려있고 작은 새가 통에 있는 먹이를 물어가는 모습이라 너무 신기하였다.

'그래, 이건 글로 써야 돼.'

보안관님께 이 글감으로 글을 써도 괜찮겠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에는 학생의 안전을 위해 학교마다 서울시에서 학교보안관님을 배치해 준다. 학교 규모나 교문 수 등을 고려하여 2~3분 정도 근무하신다. 학교보안관님은 예전에는 만 70세가 정년이었지만 새로 채용된 보안관님은 5년만 근무하실 수 있다. 그만큼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처음 학교보안관제도가 도입되었을 때는 경찰관, 군인 등의 경력이 있는 분들을 선호하였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그분들이 위기관리 능력은 있지만 조금 고지식하고 강한 성격이 많으셔서 민원이 자주 발생하여 요즈음은 다양한 경력의 사람들을 채용하게 되었다. 학교 보안관은 매년 11월 말경에 재계약을 하여 다음 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년 계약을 한다. 하루 8시간 근무하고 토요일은 두 분이 교대로 격주 근무하신다. 보통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두 분이 8시간씩 근무를 하시는데 오전 오후 낮시간에는 두 분이 함께 겹치게 근무하신다. 근무시간은 학교마다 다르다. 올해부터 초등학교에 늘봄학교가 시범운영되고 정착되면 학교보안관님 근무시간도 조절될 것 같다.



이 보안관님이 만드신 새 모이통 영상


우리 학교에 근무하시던 보안관님 한분이 2020년 말에 정년퇴직을 하시게 되어 새로운 학교보안관님을 채용하게 되어 공고를 하였다. 거의 70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하셨다. 보안관님 서류 심사와 면접에는 교장은 절대로 관여할 수 없고 학부모님과 교직원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님들께서 심사를 하신다. 보통 서류 심사에서 3 배수를 뽑아 면접을 본다.


이 보안관님은 이렇게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2021년 1월 1일부터 초등학교 학교보안관님으로 근무하셨다. 저랑은 1년 8개월을 함께 근무하였고 지금 3년 차 학교보안관님이시다. 보안관님은 엘지 그룹에서  임원으로 32년을 근무하시다 정년퇴직하셨고 ROTC장교로 특공대 출신이다. 가장 훌륭하신 점은 마음이 따뜻하여 우리 학교 학생들을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하신다는 점이다.


초콜릿통으로 새 모이통을 만들게 된 사연


학교를 지키다 보면 많은 사연이 있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속상한 아이, 친구와 다툰 아이, 등교하기 싫은 아이, 부모와 떨어지기 싫은 아이 등. 그중에서 특히 눈에 밟히는 아이들이 있다. 돌봄 교실에서 늦도록 부모님을 기다리다 혼자서 큰 운동장을 휘적거리거나 어두워진 교문을 쭈빚거리며 들어선 부모님을 따라 오히려 씩씩하게 큰소리로 인사를 해주며 나가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따뜻하다.


그런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던 초콜릿이다. 후배에게 물어 그래도 부모님들이 싫어하지 않을 만한 브랜드를 골랐다. 그렇게 나눠주던 초콜릿이 벌써 네 통이 넘었다. 요즈음은 학교 안에 있는 유치원 원아 몇 명도 보안관실 앞에 와서 똥망똥망한 눈빛을 교환한다. 그럴 때 초콜릿을 하나 꺼내준다.


이렇게 초콜릿을 나누어주고 남은 빈통을 재활용하여 새들의 먹이통으로 활용해 보려고 한다. 크기가 너무 크면 까치나 비둘기들의 차지가 될듯하여 입구를 작게 만들었다. 나뭇가지와 거리를 좀 떨어뜨려주면 박새종류와 되새 등 철새들의 먹이터가 되기를 원한다. 학교에는 다섯 종류의 박새가 날아온다. 역시 결과는 만족한다. 참 신기한 것은 새들이 줄을 설 줄도 알고 혼자서 먹이를 독차지하지도 않는다. 인간세상과 다르다. 욕심이 없고 배울 점이 많다.(이 보안관님이 전해주신 이야기다)


햇빛에 반사되는 것을 줄이고자 외부에 꽃그림 스티커를 붙이신다고 한다. 새들이 와서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보며 새들의 놀이터가 아니라 지금은 학교보안관님이 보고 즐기는 안식처가 되어 가고 있다고 하신다.


초콜릿통을 버리지 않고 환경을 생각하여 재활용하여 새 모이통을 만드신 아이디어가 너무 훌륭하시다. 작은 새 한 마리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돌보시는 아름다운 마음도 본받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나눠주며 외롭지 않도록 돌봐주신 정성도 칭찬해드리고 싶다.



퇴직하긴 전 초등학교에는 교문 앞에 작은 연못이 있었다. 연못 앞에 학교보안관실이 있다. 연못에는 잉어가 살고 있다. 물론 사다가 넣어준 것이지만 학교보안관님은 잉어에게 매일 먹이를 주고 돌보셨다. 잉어들이 알을 낳고 부화하여 할아버지, 아들, 손자 잉어까지 생겼다. 보안관님의 정성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잉어마다 특징이 있어 학년별로 이름도 지어주고 사진을 찍어 연못에 걸어두기도 하셨다. 학생들이 등교할 때, 하교할 때마다 연못에 매달려 잉어의 안부를 확인하며 좋아했다.


학교가 아파트 단지에 있어서 저녁이면 운동장 개방으로 지역 주민들이 운동하러 오신다. 주로 어르신들이 많이 오신다. 작년 봄에 여성 한 분이 코로나로 우울증에 걸렸는데 잉어를 보며 많이 좋아지셨다고도 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이웃 주민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끼친 것 같아 좋았다.


저는 보안관님들께 늘

"학교보안관님께서는 학교의 얼굴이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의 안전이고 규정을 잘 지키되 가끔 융통성을 발휘하여 방문하는 학부모님들께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도록 부탁드렸었다. 이 보안관님께서는 본연의 업무이신 학생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고 방문객에게 친절하게 안내하여 학교의 이미지를 좋게 만드셨다.


이 보안관님께서는 내가 퇴직한 후에도 가끔 학교 소식을 전해 주셨다. 늘 정성 들여 가꾸던 학교 뜰이 가을에 많이 궁금했는데 꽃사진을 보내주셨다. 가을이면 풍성하게 피던 메리골드 사진과 벌새 영상도 보내주셔서 너무 반가웠었다. 가끔 브런치 글도 읽으시고  

'글의 단단함이 나날이 발전하시는 것 같습니다^^'라고 칭찬도 해 주신다. 떠나면 그만인데 너무 감사하다.


퇴직하고 떠나 올 때 주셨던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정재찬지음)' 책은 많이 읽어서 손때가 묻었다. 이 책은 시를 통해서 인생을 배우는 글로 내가 브런치에 시와 에세이를 쓰는 걸 아시고 도움이 될 거라며 읽으시던 책을 주셨다. 이 보안관님도 감성이 풍부하시고 늘 브런치에서 좋은 글을 읽으신다. 올해는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셔서 브런치에서 작가로 뵙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정성껏 돌보시며 자연도, 환경도 생각하시는 보안관님께서 올해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한다. 그리고 글을 빌어 감사한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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