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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한 보따리 주웠다

by 유미래


주워 온 지혜 한 보따리


얼마 전에 재활용품을 버리러 내려갔던 짝꿍이 양손에 뭔가를 들고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책 두 묶음이다. 다른 사람이 버린 책을 왜 주워 왔냐고 했더니

"책이 깨끗하여 보관했다가 둥이 주면 좋을 것 같아서 가지고 왔어."

둥이 할아버지는 자나 깨나 불조심이 아니라 자나 깨나 둥이 생각이다.

나는 헌 책을 둥이에게 주고 싶지 않았지만 가지고 온 거라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현관 장 위에 올려두라고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시간이 꽤 지났다. 주워 온 책 보따리는 거기가 원래 있었던 자리인양 가끔 눈에 띄었지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외출했다가 들어오는데 갑자기 책보따리가 눈에 크게 들어왔다. 무슨 책인 지 궁금하여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어머, 이거 괜찮은 책이네."


세계명작 12권 한 뭉치와 우리나라 고전 12권이었다. 먼저 어린 왕자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아씨들, 빨간 머리 앤, 오페라의 유령, 탈무드 등 학창 시절에 읽었던 책 들이었다. 고전도 한중록, 한국전래동화, 구운몽, 난중일기 등 꽤 괜찮은 책이었다.


글을 쓰며 가끔 다시 읽어보고 싶었던 책들이다. 항균 티슈로 깨끗하게 닦아서 책꽂이에 정리하였다. 책소독고에 넣어 한 번 소독하고 싶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다. 갑자기 책 소독고가 있는 옛날 학교 도서관이 그립다. 가고 싶어도 선뜻 갈 수 없는 곳이라 그냥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본다.



책꽂이에 정리한 책을 보며 마음이 뿌듯하다.

읽을 때마다 늘 설레던 어린 왕자를 가장 먼저 펼쳐 본다. 어머, 책이 새 책이다. 전집을 사 두고 읽지 않고 책꽂이에 꽂아 두었다가 그냥 내다 놓은 것 같다.


예전에 아들 키울 때는 전집을 많이 샀다. 학교에 있다 보면 책 외판원이 방문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솔깃해서 한 질을 할부로 구입한다. 웅진출판 책을 많이 샀던 것 같다. 그렇게 구입한 책이 점점 늘어났다. 다행스러운 것은 둘째 아들이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웅진 과학 전집을 보다가 한글을 혼자 떼었다. 처음엔 그림을 보다가 개미, 매미 등 글자를 통으로 외운 것 같다. 낱말 카드를 사주었더니 어느 날 한글을 읽었다.


초등학교 2학년때는 위인전을 사 주었는데 1권부터 다 읽으면 스티커를 붙이며 차례대로 읽었다. 지금 생각해도 우리 집에 많은 전집이 있었다. 우리도 아이들이 크면서 책을 물려주기도 했지만 버리기도 했다. 아마 책을 재활용품 버릴 때 내려다 놓은 분도 책을 읽을 아이가 너무 커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 왕자를 펼쳤다. 어린 왕자 하면 누구나 알고 있는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뱀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다음에 양을 그려 달라는 어린 왕자에게 양을 그려주지만 맘에 안 들어 하자 양대신 상자를 그려주고 합격을 받는 이야기다. 그냥 어린 왕자를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늘 그렇다. 어린 왕자는 한번 펼치면 끝까지 읽어야 하는 책이다. 이렇게 난 한 권씩 다 읽게 될 거다. 그러며 조금은 동심을 느껴 보겠지. 명작 동화는 지금 읽어도 재밌다. 물론 느끼는 감정은 다르지만 너무 좋다. 역시 명작은 명작이다.


나의 버킷리스트에 동화를 써서 공모전에 응모하는 것이 들어있다. 퇴직하며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동화작가와 시인이 되고 싶었다. 미려하나마 시인은 되었다. 이제 동화작가에 도전해보고 싶다. 그러려면 글힘도 더 키워야 하고 동화 창작 공부도 해야 한다. 올 일 년 동화작가가 되기 위한 공부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오늘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 해.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어린 왕자를 읽으며 많은 것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좋아하는 책을 사면 부자가 된 것 같다. 아니 부자가 된다. 마음 부자도 부자니까. 오늘 공짜로 주운 지혜가 마음밭에 차곡차곡 쌓여서 더 큰 마음 부자가 되길 바란다. 둥이에게 주려던 책이 내 선물이 되었다. 지금은 내가 읽고 둥이 크면 그때는 새 책을 사주어야겠다. 선견지명이 있어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지혜를 한 보따리 주워온 짝꿍에게 감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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