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결혼 40주년이다. 세월이 유수 같다고 하더니 벌써 강산이 네번 변했다. 1983년 4월 5일에 결혼을 하였다. 남편은 4월 5일 식목일에 결혼한 것을 인생을 심는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결혼할 때만 해도 식목일이 공휴일이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우린
"어떻게 만났어요?"
라고 물어보면
"하나님이 중매했어요."
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중매한 것 맞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린 만날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
1980년에 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고 교사로 교단에 섰다. 그해 가을에 선배 선생님의 전도로 여의도 순복음 교회 성경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1기 성경대학으로 1주일에 두 번 성경공부를 하는 거였다. 처음 가본 순복음교회는 너무 커서 무척 놀랐다.
성경 공부하러 처음 간 날 양복 입은 아저씨 같은 사람이 옆자리에 앉았었는데 친절하게 성경도 찾아주고 모르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석 달 동안 성경 공부를 하러 다녔고 그 아저씨는 내 옆자리나 내 주위에 앉아서 가끔 음료수도 사다 주곤 하였다. 내가 대학생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때의 인연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함께 교회에 나가며 한 곳을 바라보고 살고 있다.
결혼 40주년을 맞이하여 남편이 커플링을 맞추자고 했다. 나이 들어서 커플링이라니 그냥 그 돈으로 다른 것을 하자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게 버킷이라고 했다. 금은방에 가서 디자인을 고르고 사이즈를 재서 커플링을 맞추었다.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 일상생활에서 늘 끼고 일할 수 있는 무난한 디자인으로 맞추었다. 남편은 손가락이 짧고 굵다. 나는 손가락이 가늘고 긴 편이다. 사이즈 차이가 컸다. 나이 들어서 손에 살이 빠져서 쭈굴쭈굴 하지만 커플링을 끼고 기념사진도 남겼다.
결혼기념일을 위해서 케이크도 맞추었다. 물론 그것도 남편이 하였다. 케이크에 벽옥혼식(碧玉婚式)이란 글자도 넣고 싶어 했지만 너무 길어서 안 들어간다고 했다. 그냥 '축 결혼 40주년'과 날짜를 넣었다고 한다. 찾아온 케이크를 보니 크기는 작았지만 예뻤고, 내가 좋아하는 블루베리 케이크라 맛있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결혼 40주년에 리마인딩 웨딩을 할까 했는데 올해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냥 날 잡아서 아들, 며느리, 손자 모두 모여 스튜디오에서 가족사진 찍는 걸로 바꾸었다.
4월 4일 저녁에 작은 아들네와 일식집에서 식사를 하였다. 퓨전 일식 식당이었는데 고기도 구워 먹으며 맛있게 먹었다. 쌍둥이 손자가 할머니, 할아버지 결혼 축하 노래도 불러주어 행복했다.
4월 5일 결혼기념일 당일에는 일본 여행에서 돌아온 큰 아들네와 이웃에 사는 시누네를 불러서 집에서 함께 식사하였다. 여행 다녀오면 매콤한 것이 먹고 싶을 것 같아 묵은지 김치를 많이 넣고 목살로 '돼지고기 묵은지 김치찜'을 만들었다.
조금 양을 많이 해서 넉넉하게 차렸다. 큰 며느리는 결혼하고 처음 먹어 보는데 정말 맛있어요를 연발하였다. 이 요리는 유세프 요리 교과서에 있는 요리라 재료만 사면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요리다. 모두 맛있게 먹어서 오늘 수고한 것이 행복이 되었다. 원하면 언제든지 해줄 수 있으니 하루 전에 연락하라고 했다. 새로 들인 식탁에서 편하게 앉아서 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에 아들네는 피곤할 것 같아 먼저 보내고 시누네랑 케이크와 와인을 마시며 결혼 40주년을 자축하였다. 40년 동안 살면서 어려웠던 일도 속상한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남편과 한 방향을 바라보며 건강하게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남편도 나이가 들더니 요리도 잘하고 집안 일도 많이 도와준다. 내가 몸이 조금 약하기 때문에 힘든 일은 앞장서서 다 해준다. 나이 들더니 철이 많이 들었다.
이제 결혼 50주년을 향해 다시 함께 걸어가려고 한다. 앞으로의 10년은 나쁜 일, 속상한 일보다는 좋은 일, 행복한 일로 채워지길 바란다. 큰 욕심이 없다. 서로를 배려하고 도와주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길 바란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이라고 생각한다. 적당한 운동과 소식 등으로 건강하게 지내며 결혼 50주년 금혼식에도 가족과 함께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