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가 세 명이다. 다섯 살 쌍둥이 손자와 14개월 손자다. 아들만 둘인데 손자도 아들 손자만 있다. 작은아들이 먼저 결혼하여 쌍둥이를 낳았고, 큰아들이 나중에 결혼하여 이제 14개월 된 아들이 있다.
요즘 아이가 하나인 집이 많다. 한 명이다 보니 아이에게 옷도, 먹는 것도 최고로 해주고 싶어 한다. 백화점에 가면 키즈 명품매장도 많다. 굉장히 비싸지만, 부모는 아이 옷을 구입한다.
나도 쌍둥이 손자 생일날과 어린이날에는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준다. 쌍둥이다 보니 최소 두 벌, 보통 네 벌을 산다. 50만 원이 훌쩍 넘는다. 그래도 손자가 귀하고 예쁘기에 사서 선물한다.
비싼 옷이지만, 아이들은 금방 커서 오래 입지 못한다. 한 해 아니면 오래 입어도 두 해 정도다. 적어서 못 입는 옷이 많아진다. 정말 아깝다.
지난 추석에 가족이 모두 만났다. 큰 며느리가 둘째 며느리인 쌍둥이 엄마에게 둥이 작은 옷 있으면 달라고 한다. 그 소리가 고맙고 반가웠다. 아직 아이가 한 명이기에 다른 아이가 입던 옷을 입히고 싶지 않을 텐데, 그런 며느리가 대견했다.
옷이 한 상자
다행히 둘째 며느리가 쌍둥이 아기 때 입었던 옷을 버리지 않고 모아 놓았다고 했다. 주말에 우리 집에 오며 옷을 가지고 왔다. 옷이 모두 좋은 옷이다. 내가 사주었던 옷도 있어서 반가웠다.나이키 운동복을 색깔만 다르게 입히고, 아파트 옆 근린공원에서 뒤뚱뒤뚱 뛰어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쌍둥이 손자 아기 때 보던 책까지 넣었더니 큰 상자로 한 상자다.
큰아들은 수원에 산다. 한 시간 30분 정도 걸려야 올 수 있다. 손자 데리고 휴무인 날에 오기로 했는데 손자가 감기가 심해서 오지 못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 감기를 달고 산다고 보면 된다. 요즘 입기에 좋은 옷도 있어서 택배로 보내주려고 했는데, 남편이 손자 보고 싶다며 우리가 가져다주자고 했다.가면서 담근 총각김치도 가져다주고 싶었다.
손자 보러 가는 길은 늘 설렌다. 오랜만에 나오니 여행하는 것처럼 즐거웠다.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선 자동차로 길이 막혔지만, 짜증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가을 풍경을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가을이 익어가는 풍경을 보며 자연의 오묘함을 느낀다. 수원에 들어서니 가로수로 은행나무가 많아서 온통 노란빛으로 채색된 가을 풍경에 그리움이 물씬 풍긴다. 가을을 오래 붙잡고 싶지만, 곧 겨울에게 자리를 빼앗길 것 같다.
손자를 만났다. 덥석 안기면 좋은데 낯을 가린다. 쌍둥이 손자는 주말마다 우리 집에서 돌봐주기에 아기 때부터 낯을 가리지 않았다. 셋째 손자 준우는 어쩌다 가끔 만나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낯선 것은 당연하다. 며느리가 영상 통화도 자주 해주는데 엄마 품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자주 보러 가야겠다.
며느리 힘들까 봐 점심은 집에서 먹고 가서 차 한 잔만 마셨다. 아들은 주말에도 일하는 중이라 없었다. 아이가 있으니 집은 온통 아이 장난감으로 가득했다.바닥에는 두꺼운 매트가 깔려 있었다. 층간 소음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요즘 아이 있는 집은 필수다.
펜스도 쌍둥이 아기 때 쓰던 거고, 자동차를 비롯해서 장난감도 우리 집에서 가져간 것이 많았다. 타요 미끄럼틀은 당근에서 구입했다고 한다. 알뜰한 며느리가 참 예쁘다.
거실에 있는 손자 장난감
손자가 놀이터를 좋아한다고 해서 함께 아파트 놀이터에 갔다. 놀이터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신났다. 미끄럼틀도 타고 시소도 탔다. 그러다 갑자기 바닥에 누워 떼를 쓴다. 낙엽이 많은 곳에 내려가려고 해서 엄마가
"위험해서 안돼!"라고 했더니 바닥에 누웠다. 바닥에 눕는 것은 어찌 알았는지, 14개월 아기가 화난다는 표시를 이렇게 한다. 얼마나 웃음이 나는지 남편과 한참 웃었다.
손자와의 만남은 짧았지만, 얼굴 보고 오니 행복하다. 다녀오길 참 잘했다. 어서 감기가 나아 우리 집으로 마실 오면 좋겠다. 큰 며느리가 옷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당분간 쌍둥이 형님이 물려준 옷으로 멋쟁이 준우가 될 거라고 좋아했다.
요즘 새것만 좋아하는 시대지만, 환경 보호 차원에서나 경제적인 면에서나 아이 옷을 서로 물려주고 물려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옷뿐만 아니라 장난감과 책도 나누면 좋겠다.
오늘은 평범한 일상이지만, 오랜만에 손자를 보고 온 특별한 날로 기억하고 싶다. 손자 준우가 건강하고 지혜롭게 자라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