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첫날, 천양희 시인의 시와 함께 시작합니다
2월은 홀로 걷는 길
천양희
헤맨다고 다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며
미아리를 미아처럼 걸었다
기척도 없이 오는 눈발을
빛인 듯 받으며 소리 없이 걸었다
무엇에 대해 말하고 싶었으나
말할 수 없어 말없이 걸었다
길이 너무 미끄러워
그래도 낭떠러지는 아니야, 중얼거리며 걸었다
열리면 닫기 어려운 것이
고생문(苦生門)이란 걸 모르고 산 어미처럼 걸었다
사람이 괴로운 건 관계 때문이란 말 생각나
지나가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걸었다
불가능한 것 기대한 게 잘못이었나 후회하다
서쪽을 오래 바라보며 걸었다
오늘 내 발자국은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된다는 말 곱씹으며 걸었다
나의 진짜 주소는
집이 아니라 길인가?
길에게 물으며 홀로 걸었다
-천양희 시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