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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an 31. 2024

정이흔 작가님의 단편소설 <섬>

(서평) 우리의 이야기 같은 친근한 소설

정이흔 작가님 단편 소설 <섬>


이흔 작가님은 첫 소설집 <초여름의 기억>을 출간하고, 이번에 두 번째 단편 소설집인 <섬>을 출간하셨다. POD 출판으로 표지부터 내지까지 직접 편집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전혀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편집을 따님과 아내분께서 편집자가 되어 도와주셨다고 하셨다. 든든한 조력자를 두신 작가님이 부럽다. 지난번 나도 첫 책을 출판할 때 나 혼자의 힘으로 편집하며 어려웠기에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은 큰 재산이다.


섬은 늘 아득한 기억을 가져다준다. 제목처럼 작가님 소설을 읽으면 내 기억 속에 있는 까마득한 기억을 끄집어 내준다. 작가님은 '소설이 나의 이야기가 아닌 읽는 사람의 이야기로 읽히기'를 바란다. 그런 면에서 성공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는 여섯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는데 '섬'은 첫 번째 소설이다. 늘 브런치 스토리에서 작가님 글을 읽었기에 '섬'을 읽으며 이 글에 나오는 분이 혹시 작가님 어머님이 아니신가 생각되었다. 하지만 주인공의 할머니는 어쩜 우리 모두의 미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에는 약간 판타지 요소가 삽입되어서 독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불러일으켜 준다. 글을 읽으며 '섬'은 무엇을 상징할까 생각해 보았다. 어쩜 어머니와 화해하고 싶은 마음을 섬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다. 글에서는 다행히 어머니는 편하게 가셨다. 하지만 남겨진 자식은 그동안 잘해드리지 못한 것이 자꾸 생각날 거다.


그곳에서는 이곳 사람처럼 흰옷을 입고 허리가 더 굽어진 할머니가 우리를 향해, 거의 달려오다시피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순간 어리둥절 해졌다. 할머니는 분명히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즈음부터 집 근처의 요양원 치매전담실에 입소해서 지내고 계셨는데, 그런 할머니가 왜 이런 곳에 계신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사람은 할머니가 분명했다. 나는 점점 더 깊은 혼란에 빠졌다.
-p.18 <섬> 본문 중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하나씩 '섬'을 가지고 산다. 이 글에서 친어머니와 시어머니를 함께 소환한 것은 어쩌면 이름은 다르지만, 결국 부모는 같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이었다.


<남과 여>도 <그해 여름> 도 정말 물 흐르듯 잘 읽힌다. 그 이유는 글이 꼭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눈 오는 날 한 여자를 통해 어린 시절을 소환하며 어린 시절 함께 놀았던 소녀를 기억하는 일도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아마 소설은 끝났지만, 눈 오는 날 만났던 여인을 다음에 또 만났을 것 같은 여운이 남는다.


< 그해 여름>은 37년의 교직 생활을 뒤로하고 퇴직한 교사의 이야기라 처음부터 관심이 많이 갔다. 소설 전체적으로 큰 갈등이나 사건 사고는 없었지만, 시골의 따뜻한 인심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42년 6개월 동안 서울에서만 교사로 근무했기에 시골 학교의 분위기는 모른다. 하지만 소설을 통해 만나는 시골 학교의 총각 선생님은 학생들이나 교직원, 마을 사람들에게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는 것은 짐작한다. 주인공 지훈도 마찬가지였다.


등장하는 교장 선생님도 지훈의 하숙집 아주머니와 아저씨도 지훈에 대해 어떤 기대감이나 언급은 없었지만, 독자는 등장하는 하숙집 딸과의 어떤 인연을 상상하였을 거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소설이 거의 끝날 때까지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서 실망했다. 그냥 서울로 떠나면 재미없는데, 그냥 끝나는 것 아니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님은 소설이 끝날 때 비로소 어떤 인연의 고리를 만들어 준다. 역시 작가님은 소설의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야 "그럼 그렇지.' 하고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퇴직금>이나 <세 남자> 이야기도 읽으면 글 속에 풍덩 빠지게 된다. <퇴직금>은 코로나19로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게 해 주었다. 사업을 안 해 보아서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그 시절 문 닫는 가게도 많았고, 퇴직을 강요받았던 분들도 많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평생 일한 직장에서 받는 퇴직금은 소중하다. 퇴직금을 담보로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것은 위험한데 주인공 강찬식은 용감하기도 하지만 너무 착하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으로 응원하며 읽었다. 결국 회사 문을 닫게 되고, 함께 일한 직원에게 퇴직금 독촉을 받으며 많이 힘들었다. 결국 신은 강찬식 편이 된 것 같아 마지막에 착한 사람이 이기는 세상 같아서 따뜻함을 느꼈다.


<세 남자>를 읽으며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의 재산이 무어라고' 부모 자식 간의 관계까지 어렵게 하는지 속상했다. 그러며 자식 간에도 예의가 필요함을 느꼈다. 자식이 자기 입장이 아닌 아버지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은 '지훈'이라는 이름을 좋아하나 보다. <그해 여름>의 주인공과 마지막 글인 <죽음에 관한 짧은 이야기> 주인공도 모두 지훈이다. 편하고 멋진 이름인 것은 맞다. 마지막 글을 읽으며 일찍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도 지훈처럼 오랜 세월 갈 곳으로 가지 못하고 길목에서 엄마가 오실 날을 기다리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손잡고 천국에 가셨길 기원한다.


책장을 덮으며 읽었던 이야기가 오래 여운으로 남았다. 특히 가장 먼저 읽은 <섬>이 그렇다. 어쩜 친정엄마를 떠나보낸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 것 같다. 작가님 소망처럼 이제 소설가로서의 첫발을 떼셨으니 앞으로 작가 활동 전반에 따뜻한 봄날이 찾아와서 좋은 소설 쓰셔서 제3, 제4 소설책이 출간되길 기원한다.


작가님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이 뛰어나시다. 글을 읽으면 자꾸 궁금해져서 빨리 읽고 싶어 진다. 중간에 내려놓을 수 없다. 책을 받고 모임이 있어서 외출하고 와서 읽기 시작해서 끝까지 단숨에 읽었다. 이 기세로 장편소설까지 쓰시면 좋을 것 같다.




서평을 쓸 때 늘 걱정이 된다. 작가님의 의도를 왜곡한 건 아닐까 해서다. 부족한 서평이 작가님께 누가 되질 않기를 바란다. 정이흔 브런치 작가님의 두번 째 소설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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