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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Dec 31. 2022

배롱나무 꽃분홍 드레스

 8월 초 진주성에서
7월의 화려한 배롱나무 / 8월 둘째 주 폭우 후 배롱나무

*작가의 서랍에 머물러 있던 시를 발행합니다.

8월 말 폭우가 쏟아진 후에 쓴 글입니다. 가장 추운 겨울의 한복판에서 가장 더웠던 여름을 잠깐 느끼시며 다가올 봄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배롱나무 꽃분홍 드레스


진주성 처음 찾은 날

가장 먼저 손 흔들어 반겨준 그녀

눈을 반쯤밖에 뜨지 못했는데도 멀리서 그녀는 알아볼 수 있었다

시끄런 매미 소리 박자 맞추어

뜨거운 햇빛 즐기

그녀는 기다린

헤어진 벗이라도 만난 듯 반긴다

 

꽃분홍 레이스 드레스 예쁘게 차려입고

깃털 달린 샛노란 모자 머리에 살짝 얹어

세련된 도회지 아가씨 같다


그녀는 여름을 사랑한다

여름 내내 가장 화려하게 차려입고

떠나간 벗 기다리는 그녀

내 벗이

아주 멀리서도 볼 수 있게 두 팔 크게 벌려

꽃분홍 드레스 자락 펄럭인다     


100일 동안 화사하게 차려입고 기다려도

벗은 소식이 없지칠 만도 한데

자매 앞다투어

피고 또 피고 지치지도 않는다


장마와 무더위에도 끄떡없던 그녀가

폭우 몰아치던 지난

옷이 찢기고 꽃물 빠져

초라해진 꽃분홍 드레스 끄러워 

고개 숙인다  


무더위도 이제 지쳤는지

살랑살랑 가을바람 앞에 드러눕는다

100일 동안 기다린 벗은 언제나 올까

이제 나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든데

어디를 헤매고 있을까

아니면 좋은 새 벗 만나 나를 잊은 걸까


그녀는 이제

빛바랜 레이스 드레스 벗어버리고

하나 둘 바람 타고 떠난다   

   

배롱나무야

더운 여름 너 때문에 행복했다

가는 곳마다 반갑게 맞아주고

떠나올 때도 손 흔들어주는 네가 있어

난 이 여름 잘 이겨냈다

헤어진 벗은

내년 여름에는 꼭 찾아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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