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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Oct 25. 2022

호적 나이 만 육십이 세에 퇴직했습니다

초 미니 자서전


지난 8월 말 호적 나이 만 육십이 세에 퇴직하였다. 실제 나이는 한 살 더 많은데 호적에 일 년 늦게 올리는 바람에 일 년 늦게 퇴직하였다. 부모님께 고마워해야 할까. 먼저 퇴직한 선배님 말씀처럼 시원 섭섭하다. 사실 요즘 교장도 권리보다는 책임이 많은 직업이라 힘들기에 시원하다는 쪽이 더 큰 것 같다. 후배 교장들이 퇴직을 축하하면

"선배님, 부럽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 말은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함도 있지만 다시 1년을 잘 살아내야 하는 걱정도 들어 있어서 반은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강릉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교대에 입학한 후 교사로 첫 발령을 받고 교사로 31.06년, 교감으로 5.06년, 그리고 마지막 교장으로 5.06년을 보내고 퇴직하였다. 42.06이란 숫자가 오늘 zero가 되는 날이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참 열심히 살았다. 학창 시절에는 공붓벌레로, 교사 시절에는 일벌레로 살았다.

     

아버지께서 강원도 홍천 두메산골 초등학교 교사여서 초등학교 6학년부터 강릉 외가에서 지냈다. 나의 장래를 걱정하신 부모님께서 그래도 큰 도시인 강릉으로 전학을 시켰기 때문이다. 외가도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다. 외할머니와 사별하신 이모와 사촌 2명과 나 이렇게 다섯 명이 초가집에서 살았다. 외할머니와 이모는 여름에는 누에를 키우며 텃밭에 채소를 가꾸어 팔았고, 겨울에는 가마니를 쳐서 팔아 살림을 유지해 나갔다. 어쩜 가난한 살림에 내 입하나 보태서 더 어렵지는 않았을까 이제야 느낀다.      


중학교 다닐 때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골방에서 등잔불을 켜 놓고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졸아서 머리카락을 그슬리기도 하였다. 열심히 공부한 덕에 여고를 차석으로 입학하여 장학금도 받았다. 그런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여고 시절은 하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우선순위가 대학 합격이었기에 열심히 공부하여 서울교대에 합격할 수 있었다. 서울교대에 합격한 것은 부모님의 소원을 이뤄 드린 일이었고 2년만 대학을 다니면 졸업해서 돈도 벌 수 있고 대학 학비도 적어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다는 생각에 교대 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였다. 맏딸이라 철이 조금 일찍 들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가기 싫은 대학을 억지로 간 건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나의 꿈이 선생님이어서 꿈을 이룬 거다. 꿈이 한 가지가 아니기에 몇 가지 꿈 중에서 한 가지를 이루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교사로 지내는 동안 많은 제자들이 생겼다. 그래서 보람도 느끼지만 지나고 보니 후회되는 일도 있다. 아이들을 좋아하기에 매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면 일 년 동안 최선을 다하려고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좀 더 잘해 줄 걸 하는 후회도 든다.


나는 전소영 그림책 '연남천 풀 다발'을 좋아해서 자주 읽는다. 글 중에서 마지막 구절을 특히 좋아해서 매년 3월 첫 교직원 종례 때 선생님들께 꼭 읽어 주곤 했다.      


어느덧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언제나 똑같은 계절은 없다.
반복되는 일에도 매번 최선을 다한다.  
   

교사들은 매년 3월 1일 새 학년도가 시작되면 새로운 아이들을 만난다. 새로 만나는 아이들이 힘들게 할 수도 있지만 사랑으로 최선을 다해 1년 동안 학급을 담임하라는 의미이다.    

 


교사 시절 승진에 대한 고민을 40이 넘어서 조금 늦게 하였다. 교감 승진을 위해서는 대학원을 나와야 했다. 교대가 2년 제라 대학원에 가려면 편입을 하여 학사학위를 취득해야 했다. 아들 둘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여서 야간 대학에 가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편입하였다. 많은 학과 중에서 국어국문학과를 택한 것은 내 안에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 취미가 독서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좋아했고 늘 담임을 하면서 독서 교육을 위해 연구하고 노력했기에 갈등 없이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국어국문학과가 그렇게 어려운 공부인지 몰랐다. 어려운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갈 수 있었던 것은 피나는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장하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뤘다. 승진은 정말 어려운 여정이었지만 참고 견딘 것은 아버지가 교감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뤄 드려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 상황이라 모든 걸 생략하고 그냥 작별 인사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떠나보내는 입장에서 그렇게 하긴 너무 서운하였으리라. 나도 그랬다. 지난 2월 말 퇴직하시는 세분도 그냥 퇴임식 안 하고 조용히 떠나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보내는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소박하지만 따뜻하게 퇴임식을 해드렸다. 그런 마음을 이해하기에 최소한으로 식을 하기로 했다.   


퇴임식 당일도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나온 상황이라 걱정도 되었지만 짧고 가장 따뜻하게 퇴임식을 마쳤다. 언제 영상편지를 준비했는지 고마움에 자꾸 눈물이 났다. 1학년 1반부터 6학년 8반까지 전체 학생이 학년 특성을 살려 준비한 유머를 가미한 따뜻한 영상 편지를 보느라 웃기도 하고 감성에 젖기도 하였다. 교직원도 학년별로 행정실까지, 거기다 많은 연예인까지 등장시켜 편집한 영상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 육아휴직 중인데도 동영상을 편집해주신 해담이 아빠도 참석해주어 퇴임식의 분위기를 UP 시켜주었다.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사회를 본 친목회장님의 위트 있는 멘트에 무거운 퇴임식이 따뜻한 퇴임식이 되었다. 내가 복이 많구나. 이렇게 좋은 분들과 함께 근무했으니. 내 마지막 일터가 여기라서 너무 감사하다. 교직원 여러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세요.


오늘부터 자연인이다. 새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제2인생을 준비해야겠다.  

이제  꽃길만 걷고 싶지만 자갈밭도 있고 풍랑도 만나겠지. 그러나 꿋꿋하게 살아낼 거다. 내 앞에 어떤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지 제2인생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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