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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Oct 17. 2022

교장 선생님, 시간 강사로 매일 출근합니다


8월 말에 퇴직하고 두 달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려고 했다. 그래서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쉬는 동안 브런치에 글 쓰고 운동하고 요리하며 너무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며 가끔

"주님, 퇴직 후에도 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자리를 예비해주시길 기도합니다."

라고 기도를 했다.


이제 퇴직하고 한 달 반 정도 지났다. 조금씩 일상을 찾으며 적응하고 있다. 그런데 아시는 집사님께서 학교에 시간강사로 좀 나와주실 수 없냐고 하신다. 생각해 보지 않아서 나가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는데 학교에 어려운 사정이 생겼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두 달 병가를 내고 쉬셔야 하는데 기간제 교사를 못 구해서 교감선생님께서 걱정이 많다고 한다.


학교는 선생님께서 출근 못 할 때는 시간강사를 채용하여 수업을 맡긴다. 시간강사는 초등학교 교원 자격증이 있으면 가능하다. 시간강사를 못 구할 때는 교과 선생님이나 동학년 선생님께서 교과시간으로 수업이 없을 때 보결수업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결을 오래 하다 보면 선생님들의 피로도가 커져서 너무 힘들다. 사 구하는 일은 주로 교감선생님께서 지만 못 구할 때는 교장도 알아보며 강사 구하는 일에 학교가 집중한다.


교사가 한 달 이내로 결근을 하면 시간강사를 채용하지만 한 달이 넘으면 공고를 통해 기간제 교사를 채용해야 한다. 시간강사는 수업만 끝내고 교실 정리하고 퇴근하면 되는데 기간제 교사는 정규교사와 마찬가지로 퇴근할 때까지 근무해야 한다. 업무도 하나 정도 맡아야 하고 직원회의에도 참석해야 한다. 급여도 호봉에 맞추어 정규교원처럼 받고 4대 보험도 다 들어야 한다. 하지만 시간 강사는 시간당 약간의 수당을 받고 4대 보험도 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부담도 그만큼 적다.


시간강사나 기간제 교사도 코로나 이전에는 만 62세까지만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퇴직한 교원은 할 수 없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강사 수요가 많아지면서 강사 인력풀이 부족하여 교육청에서 한시적으로 나이 제한을 풀어주어 퇴직 후에도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이 제한은 코로나가 종식되면 다시 원상 복구될 거라고 생각한다.


교회 집사님께서 말씀하신 학교는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아주 가까운 학교다. 5학년 과학 교과와 5, 6학년 도덕 수업이라고 한다. 기간제 교사를 원하지만 기간제는 더더욱 할 마음이 없다. 더군다나 5, 6학년 강사는 많이 꺼리는 학년이라 처음에는 자신 없다고 못하겠다고 했다.


지난번 서울 모임 갔을 때 나보다 몇 년 먼저 퇴직한 선배 교장선생님께서 집 근처 학교 시간강사로 나가신다고 하셔서 우리 모두 대단하다고 했었는데 그냥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직에 있을 때도 학교에서 강사를 못 구하면 한두 시간 들어가서 수업을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학교가 참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2학기에는 졸업한 교대생들이 임용고사 때문에 공부하느라 강사 구하기가 더 어렵다. 한 마디로 시간 강사 비상이다.


'그래, 이것도 봉사지. 하나님께서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아이들 가르치는 일인 걸 아시고 일자리를 예비해주신 걸 거야.'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시간강사로 우선 한 달만 해보기로 하고 계약을 하였다. 이럴 땐 집이 서울이 아닌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서울은 내가 교장으로 퇴직한 것을 다 알기에 시간강사를 한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인데 집이 여기라 나를 아는 교직원이 없기에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해서 난주부터 시간강사로 아파트 건너에 있는 초등학교로 출근하게 되었다. 좋은 것은 과학실 하나를 내가 혼자 하루 종일 교과교실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거다. 과학실 컴퓨터에 수업 준비를 세팅해 놓으면 학생들이 한 반씩 1교시부터 수업하러 온다. 실험 준비는 과학 실무사가 해주어 실험에 대한 부담도 적었다. 사전미리 학교를 방문하여 교과서와 시간표를 받아와서 주말에 교재 연구를 하고 수업 준비를 확실하게 하였다. 


이곳 초등학교는 학생수도 적고 학년마다 학년 연구실이 있어 너무 좋았다. 학년 연구실에는 교사들이 모여 회의도 할 수 있고 차도 마실 수 있게 정수기도 있었다. 더 좋은 것은 연구실마다 복사기가 있어서 필요할 때 교실 앞에 있는 연구실에서 바로 복사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필요한 도화지 등 학습자료도 바로 가져가서 수업할 수 있었다. 서울 선생님들이 아시면 너무 부러울 것 같다. 퇴직 전 학교는 학생수도 30명이 넘었고 학년 연구실뿐만 아니라 교과교실도 거의 없어서 교과 교사들이 학급으로 순회하며 수업을 해야 했다. 많이 불편했지만 유휴교실이 없기에 어쩔 수 없었다. 다양한 특별교실과 넓은 공간이 있는 이곳 학교환경이 참 부러웠다.


5학년은 네 반이고 6학년은 다섯 반이다. 6학년 도덕 수업은 월요일 1교시부터 5교시까지 이어서 하고 퇴근한다. 5, 6학년은 5교시 후에 급식을 먹었다. 5학년은 네 개반이라 2교시부터 5교시까지 수업하고 퇴근하면 된다. 월요일을 제외하면 2교시가 9시 30분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9시에서 9시 10분 사이에 출발하면 된다. 친정어머니 센터 보내드리고 출근하면 되어 그것은 맘에 든다. 1주일 정도 수업을 하며 느낀 점은 나는 가르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는 거다. 교사 시절 학교 업무 하느라 수업에 집중 못할 때도 많았는데 지금은 철저한 수업 준비와 수업 시간에도 학생들만 바라보고 수업에 올인하니까 수업이 너무 재밌고 왠지 참 교사가 된 것 같다.


갑자기 시작하게 된 시간 강사지만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가르치는 일임을 새삼 느끼는 요즈음이다. 계약한 한 달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다시 계약하여 병가 내신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해본다. 학교로 출근하면서 오늘 만날 학생들을 생각하며 처음 교사로 발령받았던 때처럼 가슴이 떨리는 건 아직 내 마음속에 선생님의 사명감이 남아 있어서겠지.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기도 응답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시간 강사는 수요가 있을 때만 하는 거라서 쉬다가 가끔 학교로 출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학교가 다섯 학교라 그냥 주변 학교에서 연락 주면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하려고 한다. 우리 동네 다섯 학교만 갈 거라고 마음먹었다.


교감선생님께서 시간강사로 와주셔서 고맙다고 여러 번 인사하신다. 고마운 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가슴 뛰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요즘 마음이 젊어진 것 같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11월까지는 최선을 다해 교사의 사명을 다하리라 마음먹어 본다.


나는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초등학교로 출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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