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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Sep 16. 2022

내 꿈의 시작, 초4 선생님이 읽어주신 책 한 권

시에서 못다 한 이야기

최근에 다시 읽은 헬렌켈러 이야기
나는 볼 수 없는 사람이기에 볼 수 있는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귀띔을 해 줄 수 있습니다.  볼 수 있다는 축복을 충분히 활용하게 해 주는 한 가지 충고랄까요.

내일 당장 장님이 될 것처럼 당신의 눈을 사용해 보세요. 내일 귀머거리가 될 것처럼 음악소리와 새의 노랫소리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선율에 귀를 기울이세요. 내일 당신의 촉각이 모두 마비될 것이라 생각하고 모든 물건들을 만져 보세요.
(중략)
그렇지만 확신하건대 모든 감각들 가운데 볼 수 있다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ㅡ사흘만 볼 수 있다면(헬렌 켈러) 중


요즘 꿈에 대한 글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지난번 시 한 편을 쓰고 보니 조금 부족함이 느껴져서 2탄으로 내가 선생님의 꿈을 이룬 이야기를 좀 더 쓰기로 했다.


https://brunch.co.kr/@ce3179a175d043c/129



지금 나는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42년 6개월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자유인이 되었다. 퇴직하고 보니 선생님이 더욱 그립다.

전정숙 선생님~~

생각만 해도 그립고 고마우신 선생님이다. 꿈이 무엇인지 모르던 나에게 선생님의 꿈을 갖게 해 주신 분이 바로 전정숙 선생님이다.     


전정숙 선생님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다. 나는 아주 두메산골인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에 있는 당무초등학교에서 3학년까지 다녔다. 당무초등학교는 아주 작은 학교로 교실이 세 개밖에 안되어 1, 4학년, 2, 5학년, 3, 6학년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복식학급이었다. 3년 동안 팔이 하나밖에 없으신 상이군인이셨던 남자 선생님께서 담임이셨는데 초등학교 교사셨던 친정아버지의 전근으로 4학년 초에 같은 강원도 홍천군 남면에 있는 매산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매산초등학교는 당무초등학교보다는 조금 큰 학교로 4학년부터는 남자반과 여자반으로 나누어 2개 학급이 있었다. 1반은 남자 선생님이 담임교사였고 여자반인 2반은 바로 전정숙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춘천교대를 졸업하신 경력이 얼마 안 되신 처녀 선생님이셨던 것 같다.


선생님 댁이 춘천 시내였던 것 같고 지금 기억에 부모님께서 동파 상회라는 가게를 하셨던 것 같다. 미술 시간에 마을 꾸미기를 하였을 때 우리가 가게 이름에 동파 상회란 이름도 붙여 놓았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전정숙 선생님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친근한 선생님이셨다. 어느 날 휴일이 지나고 댁에 다녀오신 선생님 손에 동화책이 한 권 들려있었다. 그 당시는 동화책이 많지 않아서 책 읽을 기회가 아주 적었다. 선생님께서 가지고 오신 동화책을 읽어주셨는데 그 책이 바로 ‘헬렌 켈러’ 위인전이었다. 난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던 ‘헬렌 켈러’에 빠져 버렸다. 정말 초롱초롱한 눈으로 잠시 눈을 떼지도 못하고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날 나는

‘이다음에 설리번 선생님 같은, 우리 전정숙 선생님 같은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지’하고 다짐하였다.

그 꿈은 너무 강력해서 시간이 지나도 계속 나의 꿈이 되었다.     


4학년 말에 우린 학부모님을 모시고 학급 학예발표회를 하였다. 작은 시골이었지만 부모님들께서 바쁜 일손을 잠시 놓으시고 학교에 오셔서 우리들의 발표를 감상하셨다. 우리 교실에서 발표한 정말 별 볼 일 없는 학예발표회였지만 학부모님께서 정말 많은 박수를 주셨고 칭찬을 해주셨던 것 같다. 그날 난 ‘걸레’라는 국어책에 있는 연극에서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순이 역할을 하였고, 또 레이스가 달린 공주풍 치마를 입고 당시 유행하였던 트위스트 춤을 추었다. 수줍음이 많던 나여서 많이 부끄러웠지만 연습하는 동안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 덕분에 그날 발표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날의 아름다운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가 선생님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다음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4학년을 너무나 행복하게 마치고 우린 5학년이 되었다. 그런데 너무 슬픈 것은 선생님께서 홍천군 홍천읍 시내에 있는 홍천초등학교로 전근 가시게 되었다. 우린 선생님과 헤어지면서 엉엉~~ 많이 울었다. 5학년 때는 남자 선생님께서 담임을 맡으셨는데 전정숙 선생님을 그리워하여 그리 즐겁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철이 없었던 우리 3명의 친구는 홍천으로 선생님을 찾아가기로 했다. 겁도 없이 여자아이 세 명이 20여 리를 걸어가서 홍천 가는 버스를 타고 홍천초등학교를 찾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는 행동이었다. 일요일에 학교를 찾아가도 선생님께서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었다. 막상 물어물어 학교를 찾아갔지만 선생님을 만날 수가 없어서 우린 터벅터벅 힘없이 돌아오게 되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어 미리 연락을 드리고 만날 장소와 시간을 약속하면 되었지만 그때는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편지밖에 없었다. 선생님 보고 싶은 마음에 연락도 안 드리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무작정 찾아갔었던 것이다.   

 

선생님을 늘 그리워하면서도 그 이후에 난 선생님을 한 번도 뵙지 못하였다. 5학년을 그곳에서 마치고 부모님께서 의 앞날을 걱정하셔서 6학년 때 외가가 있는 강릉으로 전학을 보내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난 강릉에서 생활하였다. 마음속으로는 늘 내 마음의 선생님인 전정숙 선생님을 그리워하면서도 찾아뵙지 못해 너무나 아쉽고 죄송하다. 지금은 80을 넘기셨을 나이인데 지금이라도 만나면 지금 를 이 자리에 있게 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다.


선생님~~

건강하시지요? 정말 보고 싶습니다. 저는 정말 좋은 교사로, 교감으로,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하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선생님 같은, 설리번 선생님 같은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항상 노력하였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저를 있게 해 주신 분이 선생님이십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뵙고 잘 자란 제자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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