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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만 하기 어려운 것들

by 토끼대왕




우리는 꽤 어릴 적부터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다만 그 훌륭하다는 의미는 반드시 사회적인 지위나 명예, 재산을 얻는 것 따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어서 마음 속에 들어 있는 것이 훌륭하다는 의미도 포함되었다.

자연스레 해야할 것과 해야하지 않을 것도 구별하는 법을 배웠다. 지금은 교과과목으로 지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장유유서'니 하는 과거부터 당연하게 해야하는 것으로 여겨진 것들-삼강오륜의 요체는 누구나 다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이 꼭 하는 것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과거 우리는 뒤의 것을 앞의 것과 맞추는 데 퍽이나 애를 썼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이름에서는 자랑을, "동이족"이라는 표현에서는 우리에게 걸맞지 않음을 느꼈다. 조선은 이理와 기氣를 중심으로 현실을 당위로 끌어올리는 것이 곧 국가발전으로 여겼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물론 우리에 앞서 동북아시아의 맹주가 아편의 연기 속에 먼저 무너지기도 했지만, 강제적으로 우리 것을 잃게 된 결과는 지나치게 이상을 중시하던 시대의 요청, 당위와 맞닿아 있었다.


요즘의 우리는 이미 과거의 아픔은 잊은지 오래된 것으로도 보이지만, 보다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어느 삶, 어느 시대에서나 현실 속에서 사는 것이겠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삶은 마땅히 그리 되어야 할 것과의 비교가 없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현재를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공동체나 시대'가 요구하는 것보다 '내가', '개인이' 원하는 것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는 의미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점차로 '아는 것'과 '하는 것'이 분리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적혀진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요즘 젊은이들은 예의가 없다!"), 어느 곳, 어느 시절에나 전세대의 행동은 잘은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기 싫은 것이다. 그러나 합리적인 것들은 배워야 할 대상이고, 결국 우리는 그 행동과 양식을 답습하며, 이어가며 살아 왔다. 처음에는 알지만 하기 싫었던 것이, 점차로 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이는 사회가 내게 그러한 행동을 요구하고, 그렇게 행동을 해야 그 구성원들에게 '어른'으로 인정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애초에 알기조차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이 분리되는 것을 넘어 앞의 것은 아예 인식이 되지 않고 있다. "현재의" 삶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지금까지의 생각과 경험이 무시되고 있다. 무엇이든 기분 나쁘거나 거슬리는 것은 비합리적인 것으로 섣불리 판단한다. "꼰대"라는 말 속에는 비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에 대한 경멸 외에도 합리적인 불편함에 대한 거부도 들어 있다. 무엇이 옳은가, 타당한가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누가 자신의 생각을 지지하고 그 지지자가 얼마나 있는지에 주의를 기울인다. 양이 질을, 감정이 논리를 압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현실감각이 없다는 뭇매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이런 경향의 극단에 있는 것이 "헬조선"이다. 객관적인 삶의 지표들은 한국전쟁 직후나 경제발전기 당시와 현재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식과 감정은 거꾸로다. 우리가 밟고 서 있는 그곳 자체를 부정한다. 이민에 대한 이야기들도 심심지 않게 볼 수 있다. 헬조선이 보다 과격한 표현이라면, 이민은 덜 급진적인, 그러나 더 실현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말이다. 어느 경우든 현실에 대한 인식부정을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부딪치는 두 개의 생각이 있을 때 대부분은 다름과 같은 흐름으로 정리된다. 시작에는 어느 더 강한 쪽이 득세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논리의 문제점들이 보이고, 반대 편의 사고가 힘을 얻는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애초에 사람들이 자연스레 쏠렸던 그 생각으로 돌아간다. 다만 기존의 문제점들은 일부 수정된다. 이런 최종적인 고민의 산물들을 '절충' 또는 '신新OO', '네오OO'라고 부른다. 이런 관점에서는 우리 사회는 두 번째 단계에 있다. 아는 것과 하는 것, 두 방향성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아니, 이 두 번째 과정은 과연 어느 정도로 그 생명력을 유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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