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오기 전, 나는 먼저 움직였다
십 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하며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
'위기가 오기 전 움직여야 한다는 것'
회사는 위기의 순간에 직원들의 희생을 요구한다.
나 또한 여러 번 위기에 회사와 함께 하기를 바랐다.
월급을 반납하고 초과근무를 하며 고락을 함께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잔인한 '자르기'였다.
이직을 여러 번 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능력으로 비춰질 수 있다.
나 또한 이 글을 쓰기까지 수많은 회사를 퇴짜 놓기도,
수많은 회사를 실제 옮겨 다니기도 했다.
이직을 많이 한다니 부럽다는 말, 능력 있다는 평가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이직이라는 것은 과정만큼 적응도 쉽지 않다.
늘 회사에 새로 입사하면 내 능력을 증명해야 함은 물론,
연차나 퇴직금도 쌓이는 것 없이 소비만 하게 된다.
이직을 하면 연봉은 오르지만 그건 몇 해를 지나야 남는다.
빠른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면 결국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다.
사람도, 오래 함께 하기 어렵다.
나 역시 동료들의 이직을 마주할 때마다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회사나 상황이 불안정해 이직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불안한 감정이나 이직의 필요성에 공감이 된다.
때로는 서류나 레퍼런스 체크에서 그들을 돕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끈끈했어도 각자 다른 회사로 흩어지면,
연락은 해도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사람을 떠나보내다 보면 만남에 대한 기대도 낮아진다.
C2C 서비스 회사를 그만두기 전,
허락받은 이직을 했다.
서비스 기획을 경험해 보니 마케팅과 다를 바 없어
다시 인프라 모니터링 (기술기획) 이 가능한 회사로 가고자 했다.
내가 생각하는 기술기획에 딱 맞는 회사는 찾기가 어렵다.
대부분 기획에 대한 채용공고는
1. 와이어프레임, 스토리보드 작성 가능자
2. 피그마 외 기획툴 사용 가능자
3. 타 부서와의 소통이 원활한 자
4. 관련 경험이 n년 이상 있는 자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기재되어 있다.
회사의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서비스나 제화를 보고,
블로그나 독스 (docs) 를 보며 어떤 기획을 원하는지 예상한 뒤
대면 인터뷰에서 자세한 질문과 대화로 파악해야 한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후
한 회사와의 면접이 잡혔다.
회사는 광고 CRM 서비스를 제공했다.
서비스 제공 시 사용자가 보는 광고 현황 및 인사이트를
대시보드 형태로 제공하고자 기획자를 충원하고 있었다.
이 회사 역시 시니어급 기획자가 없었기에
일정 경력을 충족하는 시니어 기획자를 찾고 있었다.
여러 가지 면접 질문 중
'백엔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느냐'
라는 질문이 있었다.
개발자나 엔지니어가 아니기에 디테일은 모르나
기술기획을 위해 백엔드의 흐름 정도는 안다고 하고,
이 흐름을 구술하여 최종 합격했다.
회사는 IT계통에서는 나름 규모도 이름도 있는 곳이었다.
입사 첫날부터 이를 강조하며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쉬운 부분이 있기야 했지만 '안정' 이 한마디에 마음을 결정했다.
실제 근무 하는 동안 배운 것도 많았다.
클릭하우스 기반의 데이터 적재 및 관리에 대한 기술적 내용과
웹과 웹앱, 퓨어앱의 제작 관점에서도 배울 것이 많았다.
특히 기획자의 성장을 함께 하고자 하는 팀장님을 만나
업무시간 외이긴 했지만, 스터디도 열심히 했다.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도 좋아서
근무 기간 동안 재밌게 지냈다.
회사에 적응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2022년은 IT업계의 암흑기와도 같은 시기였다.
이때 글로벌 벤처캐피털이나 사모펀드들의 부도가 있어
투자받은 회사들이 줄지어 무너지는 사건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우리 회사에 투자한 사모펀드 회사였다.
화기애애하던 회사 분위기도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사모펀드 회사 측 직원이 직접 회사에 이사로 들어와
동태를 파악하고 직접적으로 퇴사를 권유했다.
같이 일하던 옆 자리 직원들이 하나씩 짐을 쌌다.
그들이 없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매일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
회사는 제일 먼저 문제가 있었던 직원들을 정리했다.
근태나 사내 평판을 근거로 권고사직을 했다.
그 뒤 CS팀이나 영업, 기획팀을 차례로 정리하고자 했다.
사람들은 아침 일찍 면담을 하고 나면 바로바로 짐을 싸 나갔다.
마지막 기획팀에 남은 게 난데,
그 많은 사람들이 차례로 퇴사하는 것을 보며 매일 불안했다.
특히 입사 만 1년을 앞두고 일어나는 일이라
지금 퇴사하면 퇴직금이며 경력을 날린다는 게 제일 불안하게 했다.
불안은 곧 현실이 됐다.
기획팀에 모든 직원들이 퇴사하고
내 차례가 다가왔다.
당시 나의 불안은 분노로 표출됐다.
'1년 근무도 보장하지 못하면서 채용을 했느냐'
사모펀드에서 나온 이사에게 이야기하며
1년 만근을 해야 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흐르는 물을 손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매일 같이 이어지는 면담과 스트레스로 인해
결국 1개월의 급여와 시간만을 보장받고
퇴사를 결정했다.
이제까지 상황이 어찌 됐든,
내 발로 회사를 나온 적은 있어도
내가 내보내졌다는 게 용납이 안 됐다.
마치 쓸모없는 잉여인력이 된 기분이었다.
적어도 그 회사에서는 그게 사실이니까.
이제까지 그래도 쉼 없이 이어나간 일이었는데
더 이상 동력이 생기질 않았다.
너무 많은 회사를 겪었고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었다.
나는 권고사직을 받은 김에
쉬어가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실업급여를 받는 6개월.
그렇게 오래 쉬는 건 처음이었다.
일을 쉬면 대부분은 해외여행을 다녀오거나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재충전을 한다.
하지만 나는 쉬는 게 안 되는 사람이었다.
평일 일을 하고 주말에 쉬거나,
연차를 쓰며 쉬는 것은 마음이 편하지만
아예 일을 쉰다는 것은 정체기처럼 느껴져
공고를 본다거나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거나
포트폴리오를 수정하는데 매진했다.
놀러 다니고 누굴 만나고는
항상 좋은 일이 있을 때,
즉 내가 회사에 안정적으로 근무할 때다.
실업급여를 받는 6개월의 기간도 그랬다.
매일매일 공고를 찾아보고
이력서를 업데이트했다.
몸과 마음은 동력이 없었지만
억지로 억지로 나를 일으켰다.
그렇게 꼬박 6개월을 채우고서야
지금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이력서를 보고 기술기획 직무로 입사를 제안했다.
무기력한 내게 주어진 기회는
행운일까, 또 다른 실망일까.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엔 ‘버텨야지’보다 ‘나를 지켜야지’로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