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제주도에 뭐하러 가나요? 3편_서귀포 올레길>

올레 6코스, 7코스

by 민작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제주의 겨울은 따뜻하다. 수도권과 대략 10도 정도 차이가 난다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수도권이 영하 10도일 때 제주는 1도 정도이며 1도라하더라도 햇살이 좋고 바람이 없는 날은 점퍼가 거추장스러울정도이다. 보통 이렇게 생각하는 그 따뜻한 제주는 제주의 남쪽인 서귀포시를 말한다. 제주도는 한라산이 가운데 우뚝 자리잡아 한라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섬이다. 겨울에 북서풍이 불어와 제주시는 춥지만 한라산이 막아주는 서귀포시는 따뜻하다. 반면에 여름 태풍이 남동쪽에서 올라와도 한라산이 막아주니 북서쪽 제주시는 태풍이 온 지도 모르게 지나간다. 이러한 지리적 영향으로 서귀포시 날씨가 좋아 제주시에 살 적에도 겨울에는 유독 서귀포시로 발길이 향했다.

수도권의 매서운 찬바람과 겨울이 싫다면 겨울에 서귀포시 올레길로 오라. 올레 3코스부터 10코스까지가 동쪽 성산에서부터 서쪽 사계 송악산까지 남쪽 해안가를 따라 걷는 코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곳을 꼽자면 6, 7코스이다.


올레 6코스는 쇠소깍에서부터 소천지, 구두미포구를 지나 서귀포올레시장까지이며 올레 7코스는 올레시장부터 천지연, 외돌개, 법환포구, 강정동을 지나 월평동까지이다. 사실 언제 걸어도 좋은 코스이지만 여름에는 너무 덥고 봄가을에는 어디를 걸어도 좋은 계절인지라 겨울에 더 빛을 발하는 게 이쪽 코스인 것같다. 서늘한 찬 공기가 몸 속 구석구석을 비집고 들어올 때쯤 올레 6 코스를 걸었는데 쪽빛깔을 띄면서도 밑바닥까지 훤히 비치는 맑은 바닷물과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낚시꾼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카페들의 진한 커피향이 스며든 골목 등을 지나치며 걷는 그 길이 참 따스했다. 허기질 즈음에 도착하는 곳이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이라 시장의 다양한 먹거리도 눈요기 중의 하나이며 뱃 속을 채워 배꼽시계를 꺼주는 것은 당연지사다. 올레 7 코스는 시장부터 시작이라 방향을 반대로 걸어도 되고 다 걸은 후 차를 타고 돌아와서 시장에 들러도 된다.


우리가 처음 걸은 올레 7 코스는 천지연 폭포에 주차를 하고 시작했다. 처음부터 계단지옥과 끝이 안 보이는 삼매봉 언덕을 넘느라 많이 지쳤지만 그 고비를 넘기면 아름다운 선녀탕과 외돌개를 만날 수 있다. 여름에 즐겁게 놀았던 선녀탕은 이제 낙석때문에 폐쇄가 되어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추억이 되었다. 외돌개를 지나면 공터가 나타나는데 여기가 정말 매력적인 장소이다. 절벽으로 둘러싸인 바닷길 위에 어떠한 나무도 없이 탁 트인 전경이 펼쳐지고 억새가 간간히 바람에 휘날린다. 이름도 없는 그 공터는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명소이다. 많은 사람들이 네이밍을 좋아하는데 흥미로운 건 이름없는 명소를 찾는 이들도 그만큼 많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감명을 주는 것은 유명한 것이 아니다. 내게 필요한 무언가를 주는 것이다. 그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게 우리 인생이 아닐까싶다.


감동적인 그 공터를 지나 법환포구에 가까워지면 하늘을 찌를듯 높이 솟은 야자수들이 늘어선 길을 걷게 된다. 그 길을 한참 지나 뒤를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그 야자수길이 보이는데 그 장면 또한 그림같다. 절벽 위에 일부 구간만 야자수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고 앞에는 짙푸른 바다가 파도를 키우고 있다. ‘내가 걸어온 길이 저 길이구나.’ 실감이 안 된다.


해녀를 육성하는 해녀학교가 있는 법환포구를 지나쳐 걷다보면 해안가를 걷는 올레길이 나타난다. 몽돌해안이다. 제주도하면 떠오르는 하얀 백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는 대개 제주의 북쪽 해변이다. 제주의 남쪽 해변은 동쪽 끝 표선과 서쪽 끝 중문을 제외하면 백사장이 없다. 돌밭으로 된 해안들 뿐이다. 그래서 올레 6, 7 코스도 몽돌해안길을 따라 걷는다. 물이 빠진 드넓은 몽돌해안을 사람마다 제각각의 길로 걸어간다. 정해진 루트가 없으니 내가 밟고 싶은 돌을 골라 밟고 뛰고 혹여나 넘어질세라 어깨까지 긴장을 세워가며 조심조심 걷는다. 그 길에서 단체일행을 맞딱뜨렸다. 다 함께 올레길을 걷는 모양인데 20명은 넘어 보였다. 그 일행의 뒤에 붙어 우리도 일행인 것처럼 따라가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어느새 그 일행이 사라지고 서건도를 발견했다. 제주말로는 썩은물이라고 하는 이 섬은 썰물 때에 물이 빠지면 길이 생겨 섬을 건너갈 수 있다하여 썩은물이라 불렸다고 했다. 처음 이 섬을 봤을 때는 물이 빠졌을 때라 큰 바위산처럼 보였다. 다음에 다시 가 보니 물이 차 있어 정말 섬처럼 보였다. ‘물 때가 맞았을 때 건너갔어야 했는데…’하는 아쉬움과 그 때는 이미 2만보 남짓 걸었을 때라 다들 기운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썩은물이라는 어감과는 다르게 반짝이는 바다 위에 푸른 머리 장식을 한 바위 섬이 아름다워 그 이후로도 여러 번 찾아갔었다.


그 해안을 벗어나면 사람사는 마을로 들어와 겨울에는 동백과 유채꽃도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다. 핑크빛 동백과 노란 유채꽃을 보면 또 다시 생기가 돈다. 꽃은 그런 존재다. 모든 기운을 쏟아 더 이상 쥐어짤 에너지도 없을 때조차도 에너지를 불어 넣어 주는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생명이다. 제주에서는 겨울에도 나팔꽃과 들꽃이 길에서 자라고 동백은 어느 집 담벼락, 유채꽃은 버려진 공터 등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그래서 더더욱 걸을 맛이 난다.

멋드러진 해안 풍경과 생기를 북돋는 꽃들과 햇살의 따스함을 간직한 제주스러운 겨울을 맛보려면 올레길을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