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하고 싶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의학전문대학원까지 부산에서 졸업한 나는 부산이라는 도시를 떠나고 싶었다. 대학을 서울로 간 친구들은 가끔 부산에 와서 마치 부산이 시골인 것처럼 말하곤 했는데 내가 우물 안 개구리 같아 항상 신경이 쓰였다. 제2의 도시라 불리는 부산을 시골이라고 하다니 서울은 뭐가 그리 다르길래 하면서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저 나도 언젠가는 서울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이 그리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S병원이나 A병원은 전국에서 모인 수재들이 주로 지원하는 곳이라 경쟁이 불 보듯 뻔했고 어차피 나는 인턴에 합격해도 인기 없는 과를 선택해야 할 것 같아 그 두 곳은 탈락시켰다. 선택한 병원은 C병원으로 8개 병원의 300명의 인턴을 한 번에 뽑는 곳이었으므로 합격이나 전공 선택에는 좀 더 유리할 것 같았다. 성적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고 본교에 남았다면 인기과를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했지만 부산을 떠나기로 했다. 사실 그 결정에는 나의 캠퍼스 연애가 끝난 것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진짜 떠나고 싶었다. 엄마로부터도 독립을 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장소가 필요했다.
우리 엄마는 보수적인 분이니 반대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떠난다고 했을 때 걱정은 하셨지만 반대는 없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학교를 떠나 경쟁을 하러 타지에 가려는 내가 용기 있고, 대견했고, 한편으로는 너무 후련해서 살 것 같았다고 하셨다. 드디어 나의 책임이 끝났구나 하셨단다. 울며불며 걱정하면서 떠나지 말라고 할 줄 알았더니 의외의 대답에 놀랐다. 엄마도 나를 키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던 거다.
그렇게 지원한 C병원은 8개 병원 중 선호하는 병원 2군데를 지원할 수 있었다. 지원 병원은 어차피 내가 다 모르는 곳이니 그냥 클릭했을 때 나온 순서대로 서울, 수원 병원을 선택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알고 보니 세상 힘든 병원만 지원한 것이다. 같이 지원한 동기오빠가 어디 지원했냐고 묻길래 “그냥 그 위에 거 두 군데 지원했는데?”라고 말했더니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절대 지원하지 않는 조합이라는 거다. 역시 나는 구멍 투성이 인간이다. 그럼 어때. 일 많이 하면 많이 배우고 좋지 뭐 하고 맘 놓고 있던 와중에 들려오는 소리는 어마무시한 괴담이다. 서울이야 위치도 그렇고 본교 출신들이 지원하는 편이지만 수원은 세상 힘들어서 절대 지원 안 하는 곳이라나.
나는 그렇게 어마무시하게 힘든 병원을 지원한 인턴이었지만, 운이 좋게도 동양에서 가장 편하다는 별명이 붙은 여의도와 수원 두 곳에 합격을 하게 되었다. 한 곳은 힘들지만 한 곳은 편하다니 1년 정도는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각 병원을 6개월씩 근무하게 되어 있었는데 여의도가 먼저였다. 막상 여의도를 가니 30명의 인턴이 모든 과를 섭렵하며 일을 해야 하는 예상보다는 힘든 스케줄이었다. 수원을 가서야 여의도는 정말 편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첫 병원이라 긴장도 많이 하고 서툴러서 쉽지만은 않았다. 근무 첫날 교수님이 물으셨다. "여기 여의도 안 쓴 사람? 없지? 지원 안 한 사람이 여길 올 수가 없지!" 안 쓴 사람인 나는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29명의 인턴 동기들이 수군거리며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저 누나 뭐야? 숨겨진 이사장 딸이야 뭐야? 낙하산이야?’ 하며 나에게 의문의 눈빛을 보냈다. 알고 보니 대부분 본교 학생들이다. 역시 인턴 선택부터 타교 출신의 비애가 느껴진다. 예상 못한 상황은 아니었으니 그러려니 하는데 다들 내가 너무 의아하다는 듯 쳐다본다.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내 일만 열심히 하기로 했다. 턴발표를 보니 심지어 첫 턴이 산업의학과다. 내가 생각해도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과다. 이건 뭐지. 주님 저에게 왜 이러십니까 무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