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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un 30. 2023

부산촌년의 서울의사 되기

첫사랑 산업의학과

산업의학과는 직업환경의학과로 명칭이 바뀌었다. 직업이나 환경에 의해 일어난 질병에 대한 진단 및 치료를 주로 하는 과인데 입원환자 대부분은 진폐증 할아버지들이 많다. 과 특성상 입원환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과 보다 당직은 수월한 편이다. 직업환경의학과 선생님들은 대부분 노동자의 편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분들이 많고 성격도 대부분 안정적인 편이다. 그래서인지 다들 인턴한테도 꽤 친절하신 걸로 유명했다.     

첫 당직을 앞둔 날 2년 차 선생님이 부르셨다.

"너 홍대 가봤니?"

"아니요."

"우리 오늘 홍대 가서 저녁 먹자. 맛난 거 사줄게."

‘인턴들은 한 달 동안 외출 금지인데.. 괜찮을까..’하며 걱정했지만 상명하복을 따르기로 했다. 홍대라니. 가야지.     


우리는 선생님의 스포츠카를 타고 홍대에 갔다. 선생님은 김 OO 선생님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인턴에게 1부터 10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셨던 천사였다. 내 실수에도 괜찮다고 다 그렇다고 응원해 주신 선배님. 첫 당직 때 데리고 나가서 맛있는 밥을 사주신 친절하고, 멋진, 스포츠카를 타는 여자 의사.     


그 시절 나는 얼어있어서 그 순간을 즐기지 못했다. 홍대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어색했다. 옷차림은 남루했고, 머리는 못 감아 지저분했고, 얼굴은 생얼에 다크서클이 심했다. 이런 생활은 너무 오랜만이었기 때문에 음악 소리마저 시끄럽게 느껴졌다. 인턴 주제에 혹시나 병동에서 날 찾으면 어쩌나 하며 저녁 먹는 내내 걱정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좀 귀여웠다. 첫 인턴의 당직을 축하한다며 바쁜 와중에 스포츠카를 끌고 홍대까지 행차한 레지던트 2년 차와 당직인데 병원 벗어난 것이 너무 긴장되어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인턴 나부랭이의 조합. 내가 스탠더드 한 인간만 아니었어도 그 시절을 더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아마 지금 다시 인턴으로 돌아간다면 애초에 따라나서지도 않았다.     


처음 인턴이 된 3월은 모든 것이 두렵다.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고 시험만 통과했지 모든 지식이 뒤죽박죽 되어 있는 완전 초자 의사들이다. 우리끼리는 농담 삼아 3월에는 절대 병원 가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자만심 가득한 농담이다. 인턴은 대학병원에서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없으면 좀 불편한 정도의 그냥 인턴 나부랭이다.     


그 두려움에는 ABGA라는 동맥혈 검사를 위한 혈액 채취가 한몫한다. 정맥혈은 간호사나 임상병리사가 채취 가능하지만 동맥혈은 의사가 채취해야만 하기 때문에 검사오더가 나오면 언제든 인턴이 불려 간다. 손목에 있는 요골 동맥에서 혈액을 뽑게 되어있는데 정맥보다 깊은 곳의 눈에 보이지 않는 동맥의 맥박을 느낀 뒤 주사기를 꽂아야 한다. 살아있는 존재에 주사를 해 본 적 없는 신입사원에게는 꽤 떨리고 어려운 일이다. 주로 폐질환 환자라던지 의식 저하 환자들의 혈액 속 pH와 산소포화도를 보기 위한 검사이므로 모든 환자들이 하는 검사는 아니지만 산업의학과는 대부분이  폐질환 환자로 레지던트들은 아침 회진 전 루틴으로 이 검사를 낸다.     


결코 피할 수 없는 ABGA를 위해 인턴들끼리 서로 손목을 내어주며 여러 번 서로의 피를 본다.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아주 능숙한 양 환자에게 검사를 시행한다. 내가 불안하면 환자는 더 불안하고 신기하게도 불안하면 무조건 실패다. 3월 한 달이 지나면 모든 인턴이 ABGA는 눈감고도 하게 된다. 우리끼리는 주사기를 던져서도 맞출 수 있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이게 바로 트레이닝의 힘인가...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 결국은 적응해 살아남는다. 나도 그렇게 적응을 했다. 아니 적응을 하게 되었다. 그냥 던져놓아 살아남게 만드는 참으로 대단한 트레이닝이다.     


어쨌든 나는 아주 편한 산업의학과에서 모두가 힘들어하는 ABGA를 제일 많이 한 인턴이다 보니 많은 동기들의 검사를 돕고 지도하게 되었다. 같은 인턴주제에 지도라니, 오지랖이 끝도 없다. 자기 일이나 잘했으면 참 아름다운 한 달이었을 것이다. 좋은 의도로 하게 일이었으나 동기들은 피가 잘 뽑히지 않으면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삐삐를 쳤다. 밤이고 새벽이고 대중없다. 스트레스가 슬슬 쌓이는 와중에 한 동기가 새벽 ABGA콜을 나에게 돌리는 일이 발생했다. 본인은 중환자실에 나타나지도 않았고 그냥 간호사에게 나한테 콜 하라고 하고 본인은 잠을 주무셨다. 나는 일단 피는 뽑아 주었다. 간호사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오빠 인턴된 지 한 달이 다 되었는데 이런 일로 새벽에 저 깨우는 거 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오빠는 나타나지도 않고..."

뭐 이렇게 나의 감정을 표출하는 일이 발생했다. 눈도 못 뜨고 부스스한 머리로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사실 인턴 초반에는 괜찮았지만 피로가 누적되어 가는 시점에서 새벽 4시에 콜 해서 직접 부탁하는 것도 심한데 본인은 나타나지도 않은 일은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난다. 각자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결한다는 것이 인턴끼리의 철칙인데... 그 오빠와 난 이후에 서먹해졌다. 그 서먹함과 함께 그동안의 나의 오지랖은 물거품이 되었고, 험담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언니 그 오빠랑 싸웠어요?라고 여러 명이 묻는다. 그래, 뭐 그럴 수 있다. 남의 말은 쉽고 아무렇지 않게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 거 아니겠나. 착한 척하더니 콜 한번 했다고 화를 낸 까칠한 타교출신의 나이 많은 여자 인턴이 되었다. 그래도 이건 학교폭력 아니 병원폭력, 빵셔틀이 아니라 주사셔틀 아닌가. 사람을 저렇게도 이용할 수 있구나. 아무에게나 선을 베풀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다. 잘해주면 우습게 보는구나, 이기적인 서울 것들...이라고 서울사람 모두 나에게 욕을 먹었다.   

  

워낙 바쁜 와중이라 동기와의 서먹함도 잠깐의 이벤트로 지나갔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도 잘못한 부분이 있었다. "오빠 왜 안 왔어요? 무슨 일 있었어요? 저도 새벽 4시는 좀 힘들어요..."라고 왜 말하지 못했나, 왜 이유를 물어보지도 않았나? 왜 그냥 그렇게 오해만 하고 화를 냈나? 아마도 그 동기는 일어날 수 없을 만큼 몸이 피곤했을 것이다. 그 힘든 와중에 내 생각이 난 거라면 고마운 일이기도 했다. 내가 도와준다고 했기 때문에 나쁜 의도 없이, 그냥 별생각 없이 일을 넘겼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화내지 않고 웃으면서 물어보았다면, 오해 없이 잘 풀었을 것이고, 아름다운 한 달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여유로웠던 한 달을 즐기지도 못하고, 다음 달에 펼쳐질 외과의 버라이어티한 삶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나의 첫사랑 산업의학과는 씁쓸함과 함께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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