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공항

5. 가족

by 민달팽이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어렸을 때부터 어린왕자 책을 참 좋아했다.

엄마가 처음으로 잠이 들던 나에게 읽어준 날부터

사춘기 때 친구관계에 지쳐 울면서 읽고,

이제는 읽으며 마음이 찡해지는 날까지

수 없이 읽은 책이다.

책에서의 이 문구는 나에게 사랑의 책임을 알려주고는 했다.


가족과 떨어져 살다가 여름에 한국을 가면 모든게 다르다.

오빠로부터 나의 밥을 사수하기 위해 황급히 밥을 먹고,

아빠의 잠꼬대 소리에 웃음이 나기도 하며,

엄마의 청소기 소리에 잠에 깨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면 첫 몇 주는 나의 개인공간이 없어져 버리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함께 지내는 석달동안

나는 아빠와 함께 나가는 코스트코 소풍에,

엄마와 비밀스럽게 가는 쇼핑몰과 맛집 투어에,

오빠와의 밤늦게 단둘이 가는 편의점에 익숙해지게 된다.

영국에서는 강하디 강하던 어른이어야만 했던 나는

그 석달 동안 다시 여리고 여린 막내딸이 되고는 한다.


이번 여름, 영국에 돌아오기 한 일주일 전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잘 먹는 우리를 위해 1kg 연어를 사용해서 연어 초밥을 만들어 주셨다.

빨리 먹는 오빠는 엄마가 만드는 속도를 못 참고 자신이 밥을 떠서 연어랑 함께 먹겠다며 재촉했다.

나는 그런 오빠로부터 나의 초밥을 사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오빠를 피해 나에게 연어초밥을 입에 넣어주며 웃는 엄마와,

그런 우리를 보며 투정을 부리는 오빠를 보며 정신 없이 웃었던 식사시간이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돌아가면 연어초밥도 못 먹겠지,로 시작했던 생각은

돌아가면 이렇게 바보같은 오빠도 없겠지,

돌아가면 사랑으로 나를 둘러싸는 엄마도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원래 돌아가기 일주일 전부터 바보같이 자주 울고는 하는데 그런 날 중 하나였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장난을 쳤지만 결국 두 명 다 울고,

오빠는 또 이 여자들은 왜 이러나 하며 바라보는 참으로도 우리 가족 같은 상황이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길들여졌고,

가족은 나에게 길들여진 매해 여름,

우리는 코 앞으로 다가온 헤어짐 앞에 책임을 다하느라 눈물이 많아지고는 한다.


하지만 해외생활 9년, 홀로 유학을 4년째 하다보니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들고는 한다.

지금은 같이 살고 있는 친구에게,

“떠날 때마다 너무 아픈 것 같아”라고 이야기 했을 때,

그 친구는 “내가 들었는데 나아지지는 않는대. 그래도 익숙해진다 하더라”

라는 말을 들었다.

그 당시에는 참으로 이해가지 않았는데,

이번 여름 처음으로 공항에서 울지 않았다.


아침에 엄마가 주는 아침을 입에 쑤셔 넣고,

마치 어딜 놀러가는 듯이 “갔다 올게”라며 집을 나섰고,

아빠가 데려다 주겠다는 차에 올랐다.


아빠가 공항에 데려다 주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에

“오~ 웬일이에요. 버스보다 너무 좋다”라고 이야기하며 인천공항을 향했다.

아무렇지 않게 우리는 체크인을 하고,

출근해야 하는 아빠를 돌려보내며 나는 웃어보일 수 있었다.

참 신기한 일이였다.


마치 그저 소풍 가는 듯이 구는 스스로가 낯설었다.

언제 끝날까 기다리던 고통이 약해지자

혹시나 그게 내가 더 이상 가족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까봐 불안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가족들을 그리워하고는 한다.

나를 위해 손으로 감자를 채썰어 감자전을 만들어주던 아빠 생각에,

함께 장을 보러 갔다가 세일하는 곳에 눈이 팔려 나에게 이 옷 저 옷을 입혀보던 엄마 생각에,

잠 자려고 누운 나를 깨워 야밤에 국밥을 먹으러 가자던 오빠 생각에,

아직도 종종 눈물이 고인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익숙해진다는 건 사랑이 식었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을 온 책임을 다해 견디는 힘이 생긴다는 뜻임을.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이별들 앞에서도,

나는 이제 웃어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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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