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라온 가정은 편안했다. 물론 아버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셨지만, 당신 삶 속에서 우리 가정을 잘 지키시고 이끄시며, 엄마는 우리를 정성껏 돌보고 내조하셨고, 그 안에서 나와 동생이 자랐다. 좋은 부모님과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커서야 절절히 깨닫는다. 나의 유년기를 돌아보며 언제 우리가 참 행복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비싼 해외여행을 갔을 때도, 좋은 선물을 움켜쥐었을 때도 아니었다.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우리 가족의 행복했던 순간은 동대문 야시장 구경을 갔을 때이다.
그런 걸 특별히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느꼈던 우리 가족의 행복이 내 마음에 잔잔하게 물들어 있다. 노상에서 팔고 있던 액세서리를 보며 좋아하던 나와 동생. 야시장에서 파는 음식을 보며 기뻐하던 아빠 모습. 엄마와 함께 식사하시는데 쫄래쫄래 들러서 만원 한 장만~ 하고 받아와서 만원 들고 쇼핑하던 우리들.
어린 시절을 돌아보았을 때 또 기억나는 것은 엄마가 부엌에서 오징어김치전을 부치시는 모습이다. 갓 전을 부쳐서 식탁으로 가져오시면 아빠랑 나랑 공격적으로 젓가락으로 집어 먹을 때가 기억난다. 늘 가져올 때마다 엄마는 '이번건 좀 망했어', '이번건 진~짜 잘됐어' 하면서 스스로를 평가했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자신의 행복의 시간은 정말 소소한 것들로 채워져 있어도 된다.
나도 아름답고 예쁜 것을 좋아하지만, 정말 물건이 주는 행복은 그리 길지 않다. 물건은 또 다른 물건으로 대체될 수 있다. 물건은 또 다른 행복을 요구한다. 돈이 넘치게 많다는 것이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다. 부유한 사람들끼리는 그 안에서 또 다른 경쟁에 시달린다. 끝도 없는 경쟁. 세상에는 과시할 것들이 수없이 많다. 새로 생겨나는 회원권,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 새로 나온 차. 이런 것들로 채워지는 행복은 영원히 목마르다.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정신적인 행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 충족은 그 안에 곁들여진 양념 같은 존재일 듯. 이걸 몸소 깨닫게 되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왜냐하면 더 깊고 잔잔한 행복을 자주 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세 식구가 아침에 헤어져서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사는 것이 좋다. 윤여림의 동화책,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제목처럼,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잠시 거리를 두고 있다가 집에서 다 같이 모인다.
남편은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고, 아이는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하고, 나는 집에 관련한 일을 본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서로의 이야기보따리를 가지고 마주한다. 보따리에서 나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누며 웃을 때, 하루의 모든 피로가 가시는 것을 경험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함께한다는 것.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일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나중에 아이 키우던 시절을 돌아보면 지금 우리들의 이 모습이 얼마나 찬란했는지 뼈저리게 느낄 것만 같아 더욱 소중한 시간들이다.
결국 서로 함께하는 시간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절의 행복, 우리가 만들어가는 추억들이 우리 아이 마음과 정신 속에 켜켜이 쌓여 아이를 더 행복하고 환하게 만들어주길, 아이의 소중한 유년시절 속에 남아있길. 그래서 살다가 세상살이에 지쳤을 때 잠시라도 미소를 줄 수 있는 추억 하나로 남겨지길. 그렇게 살아내는 너를 바라보는 게 내 육아의 작은 소망이 아닐까.
그동안 저의 첫 브런치북 '나의 슬기로운 육아생활'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육아는 계속되겠지만 지금까지의 시간을 간략하게 남기고 싶어 쓰게 된 저의 육아일상의 부수적인 감상과 느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