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과정 속에 빠질 수 없는 하나는 나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다.
20대에는 나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고 나를 참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된 게 30대가 되어도 나의 앎이 부족한 건지, 내가 변한 건지,
매번 나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참 겸연쩍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민낯을 더 마주해야 하는 때가 많아졌다.
실제의 내 모습, 즉 나라는 인간의 본질과 성질에 대한 민낯이라고나 할까...
진정으로 부끄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나의 민낯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
더 부끄러운 것은 이 민낯을 아이와 공유하는 것이다...
아이가 보게 되는 나의 민낯. 이것보다 수치스러운 것은 없을 것 같은데,
더 염려스러운 것은 이게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민낯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어디가 부족한지, 어디가 만족스러운지.
자라면서 어떻게 했으면 내가 더 성장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고.
이런 점은 참 충족되었다, 하며 토닥토닥하는 것도 있고.
그리고 많은 엄마들과 대화해 보고 많은 육아를 돌아보며 느끼는 것은
사람들은 아이를 양육할 때 자신의 민낯을 인지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육아한다는 것이다.
같은 대상이라도 사람들은 개인이 가진 배경과 가치관 따위를 바탕으로 받아들이듯,
우리가 육아를 할 때도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과 경험들을 바탕으로 아웃풋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성장배경, 나와 내 부모와의 관계 및 인생경험 등을 바탕으로 아이를 지도편달한다.
내가 많이 못 배워서 너는 안 그러게 하려고,
내가 많이 경험 못해서 너는 안 그러게 하려고,
내가 많이 힘들었어서 너는 안 그러게 하려고,
내가 많이 못 가져봐서 너는 안 그러게 하려고,
반대로
내가 너무 많이 배워서 너는 안 그러게 하려고,
내가 너무 많은 경험을 해서 너는 안 그러게 하려고,
내가 많이 가져봐서 너는 안 그러게 하려고...
육아의 기본은 어쩌면 아이가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세상에 지나치도록 많은 육아 관련 강의와 프로그램, 책이 있지만 그곳에서 주는 교훈들이 무색하게 결국 나라는 뿌리에서 육아가 시작되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민낯이 고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에 자괴감을 느끼고 고개 숙여지는 것.
그게 육아인 것 같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_
를 반증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쳇바퀴 같은 체계 속에서 헤매고 있는 그런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