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더라. 손에 닿는 것도, 몸에 닿는 것도.
그래서 수영하는 것도, 샤워하는 것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이런 내가, 늘 손을 물에 적셔야 하는 주부가 되었다.
아이를 젖먹일 때부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엄마란 사람은 아이의 먹거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신체는 아이의 먹이를 위해 쓰였고, 나의 역할은 삼시 세끼를 챙기는 일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엄마는 아이의 먹이를 선택할 수 있다. 모유를 먹일지, 분유를 먹일지부터 시작해서 그 일련의 선택은 계속되어 왔다. 이것이 나에게는 큰 책임으로 느껴졌다. 내가 선택한 대로 아이는 먹어야만 했던 것이다. 내가 햄버거를 주면 아이는 햄버거를 먹어야 했고, 내가 불고기를 주면 아이는 불고기를 먹어야만 했다. 이 때문에 나는 투철한 책임감을 지니고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요리를 아주 잘하는 사람들의 엄마들은 주로 요리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다. 먹어본 놈이 아는 거겠지. 요리와 식사는 일종의 가풍이고, 집안마다 갖춰진 요리 방식들이 있다. 우리 엄마의 경우는 간 마늘을 넣는 것이 지저분하다고 싫어하고, 통깨를 뿌리 거나 소스가 많이 들어가는 것을 싫어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요리할 때 이 점들이 생각나더라. 또 사람들마다 자라온 집안환경에 따라 좋아하는 음식취향이 다르다. 우리 집의 요리사는 나이기 때문에 나에 의해서 우리 아이의 식사취향이 생성된다는 게 나에게는 자부심이기도 한 동시에 의무감이기도 했다. 나의 손끝에 의해 남편과 아이의 입맛성형이 된다니...
거창한 동기에도 불구하고 늘 요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꾸준히 냉장고를 관리하고, 끊임없이 장을 봐야 하고, 항상 먹거리를 염두하고 있어야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오랜 시간 동안 어머니들이 해오신 일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에게는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건 없는 듯하다. 여느 시절보다도 장보기 편리한 세상이지만 더더욱 집밥을 게을리하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더욱더 집밥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부각된다. 성조숙증이 이례적으로 증가하고, 남녀노소 모두 환경호르몬에서 피할 수 없는 시대이다. 키성장은 늘 엄마들의 이야기 속 화두가 된다. 아이들이 직면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먹거리가 아닐까 싶다. 건강한 조리법, 위생적인 조리도구, 신선한 재료들. 이 모든 것을 신경 써서 좋은 먹거리를 제공해야만 하는 것 같다. 물론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믿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집에서만이라도 가능한 가공식품을 배제하고, 과당의 음료보다는 물을 준다. 중간에 과자를 먹고 싶어 할 때는 간단한 음식을 싸서 다니거나, 과일로 대체한다. 내가 주지 않더라도 아이는 어디에선가 사탕, 젤리와 과자를 받아오더라...
이렇게 원대한 요리에 대한 꿈이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 엄마가 요리에 대한 관심이 전무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성장기에 엄마가 해준 요리도 당연히 기억나지만, 피로했던 엄마가 자주 시켜준 음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피자헛의 피자와 핫윙이었다. 그리고 사춘기 동안 나는 여드름과 힘들게 싸워야만 했다. 음식과 피부의 상관관계가 없을 수 도 있다. 나의 사춘기 여드름은 호르몬의 영향이 클 수도 있으나, 이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모든 원인을 다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실험하는 마음으로 부엌에 선다. 과연 우리 아이는 집에서 해 준 음식들로 사춘기여드름을 모르고 지날 수 있을까.
요리에 큰 흥미가 없는 엄마는 내게 요리하는 습관을 가지지 않게 하고, 대단한 미각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결핍을 주셨기 때문에 나는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나는 요리를 잘하는 여자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다. 마치 어떤 사람의 서랍을 열어봤는데, 서랍 속까지 깔끔하게 잘 정리된 그런 대단한 사람을 보는 느낌이랄까. 나의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것은 그런 생활의 기본을 갖추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먹을 것이 지천에 깔려있는 요즘. 우리는 더욱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먹는 것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매번의 선택으로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이와 가족을 위해서 내가 생각하는 최선을 다하는 것 또한 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어제도 나는 부엌으로 출근했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는 부엌으로 출근할 것이다.
물론 주말에는 오프다. 나도 좀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