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부동산 경험담 - 사이타마에서 현금으로 산 첫 집
2005년, 큰아이가 태어날 무렵 나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집을 샀다. 영주권도 없었고, 직장도 오래 다닌 건 아니었다. 은행 융자는 영주권 없이는 기본적으로 제한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선택지는 자연스럽게 좁아졌고,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1000만엔 전후의 중고 주택을 현금으로 사는 것. 그때 내가 가진 저금은 750만엔 정도였다. 여기에 부모님이 조금 보태주시거나 영주권이 없어도 은행에서 100만엔 200만엔 정도는 빌려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었다.
당시는 도쿄에서 조금 떨어진 사이타마현 서쪽 중심으로 매물을 검색했다. 이미 출퇴근에 이용하는 철도 노선을 타고 외곽으로 더 나간 지역이었다. 조건은 단순했다. 내 손에 쥔 돈으로 살 수 있을 것, 철도 역까지 버스를 타지 않고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일 것. 그렇게 찾다가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1980년대 초반에 지은 2층짜리 목조 주택, 대지는 약 15평. 리모델링이 되어 있다는 설명. 가격은 1,200만 엔. 예산을 초과해서 살 수는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옆집—구조가 똑같은 또 하나의 집—이 리모델링이 되지 않은 상태로 980만 엔에 나와 있었다.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내부를 확인했고,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750만 엔에 오퍼를 넣었다. 다소 무모한 제안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상대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때가 일본의 부동산 시장이 바닥을 기던 시절이었고, 상대도 매각이 시급했던 것 같다.
잔금 준비를 하며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께 도움을 청했다. 모두 흔쾌히 100만 엔씩, 총 200만 엔을 지원해 주셨고, 그 돈은 고스란히 리모델링 비용으로 들어갔다. 융자 없이, 순수하게 내 저축과 가족의 도움만으로 산 첫 집이었다.
그런데 소유권 이전 등기 이후 등기부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이 집에는 3,000만 엔의 은행 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당시 시세의 4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이 집을 샀고, 그 금액 일부가 아마도 전 주인의 채무 상환에 쓰였을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누군가의 과거를 덜어주는 대가로 이 집을 넘겨받은 셈이었다.
리모델링은 욕실과 부엌, 실내 전체 도배, 외벽 페인트, 마루바닥 니스칠, 그리고 일본의 오래된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재 이중창(아마도라 불리는 것)의 파손 수리를 했다. 1층 다다미방은 다다미를 교체하지 않고 기존 프레임에 표면만 교체하는 저렴한 서비스 (오모테가에表替え 라고 한다)를 이용했다. 다다미를 직접 들어 홈센터에 가져가면 1장당 6,000엔이면 새것처럼 만들어 준다기에, 그렇게 했다. 부엌은 싱크대와 벽면 패널을 교환했고 욕실은 오래된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내 보일러와 배관을 철거하고 외벽에 실외 보일러를 설치했다. 남은 공간에 꽉 차는 사이즈의 법랑 재질의 욕조를 새로 넣었다. 욕조 만큼은 일반적인 신축 주택보다 더 크고 고급졌다. 타일은 공사 중에 깨진 부분만 보수하고 벽은 새로 흰색 페인트를 칠했다.
집이 인도되었을 무렵, 아내는 친정에서 산후조리 중이었고, 나는 혼자서 새 집 정리에 매달렸다. 4월 말, 다다미방에 데롱기 오일 히터 하나만 켜 놓고 잠을 잤는데,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에 깜짝 놀랐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실감했다. 일본의 오래된 목조건물은 얼마나 단열이 안 되는가를.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바퀴벌레였다. 이 집은 1년 넘게 비어 있었다고 했는데, 그 사이에 어디선가 바퀴벌레들이 번식했던 모양이다. 이사 후 아기를 데리고 분유를 먹이고 있는데 옆으로 바퀴벌레가 지나갔다. 공포였다. 한번은 밤에 자는데 아기 쪽으로 바퀴벌레가 가는 것을 보고 아내가 맨손으로 바퀴벌레를 잡은 적도 있다. 나는 온갖 종류의 살충제와 트랩을 사서 몇 달간 전쟁을 벌였다. 초반 몇 주 동안 ‘고키부리 호이호이’ 트랩에 열댓 마리씩 붙어 있는 끔찍한 광경을 매일같이 마주해야 했다. 결국 몇 달 뒤에는 박멸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요즘 일본의 단독 주택은 바닥 전체에 콘크리트로 기초공사를 하고 ("베타키소"라고 한다) 그 위에 짓지만 80년대 초에 지은 집들은 흙바닥 위에 집 기둥이 올라가는 부분만 콘크리트를 썼다. 이 방법은 "누노키소"라고 한다. 거실 마루에 수납공간이 있는데 그걸 들어내면 마루 밑 집터 흙바닥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는 그 흙바닥 위에다가도 바퀴벌레 트랩과 연기 분무식 살충제를 여러번 사용했다.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과정은 나에게 집을 산다는 것의 현실적인 의미를 알려준 시간이었다. 드림하우스는 커녕 추위와 해충, 청소와 수리, 정리와 협상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달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안정감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내 공간을 하나씩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그 집은 작고 협소했지만, 내 삶을 안정시켜 준 존재였다. 창문 너머로 비치던 오후 햇살과 4장반 다다미 방 위에 처음 들여놓은 아기 침대, 내 손으로 직접 붙인 창호지, 그리고 바퀴벌레 트랩을 들고 집 안을 누비던 날들의 기억.
2005년, 나는 처음으로 내 이름이 적힌 부동산 등기부를 손에 넣었다. 비록 80% 이상 내 돈으로 산 집이지만 장인어른의 부탁으로 아내와 공동명의로 했다. 그런데 시청에서 오는 재산세 통지서는 아내 이름 외 1명으로 되어 있었다. 외국인인 내 이름은 나오지도 않았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