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일본에서 다주택자가 된 사연
사이타마에서의 생활은 안정감을 주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씩 불편한 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목수인 아내 큰아버지가 직접 확인해 주셔서 구조적인 결함은 없는 집이었지만, 단열 성능이 너무 떨어졌다. 여름이면 2층에 잠시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고, 겨울에는 석유 팬히터에 의존해 난방을 해야 했다. 매번 주유소에서 등유를 사서 통에 담아 나르고, 다시 집에 와서 팬히터의 연료통에 펌프로 옮겨 담는 일은 무척 번거로웠다. 현관은 흘린 등유 때문에 늘 미끄러웠고, 손에 묻은 등유 냄새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석유 팬히터의 또 다른 단점은, 전원을 켠 후 등유가 기화되고 점화되기까지 몇 분이 걸린다는 점이다. 추운 겨울날 덜덜 떨며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 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유독 길게 느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스 팬히터로 바꾸는 것도 검토했지만, 공교롭게도 이 지역은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일본의 도시 외곽에는 아직도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이 꽤 많다. 우리 집도 LP가스(프로판 가스)를 사용하는 구조였다. 보통 이런 집은 건물 옆에 가스통 두 개를 설치하고, 가스 회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가스가 떨어지기 전에 교체해 준다. 덕분에 가스가 떨어졌다고 따로 연락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프로판 가스에 연결할 수 있는 가스 팬히터는 구하기도 쉽지 않고, 별도의 배관 공사도 필요했다. 결국 우리는 겨울마다 등유 히터, 전기장판, 그리고 일본식 전열 탁자인 코타츠로 추위를 견뎌야 했다.
의외로 프로판 가스는 도시가스보다 매달 내는 요금이 비쌌다. 가격은 공급 업체마다 조금씩 달랐고, 경쟁도 치열했다. 한번은 아내가 더 싸게 공급하겠다는 다른 업체의 제안을 받아들여 회사를 바꾼 적이 있었는데, 기존 업체가 우리 집 우편함에 손편지를 남기고 간 일이 있었다.
그 편지는 장문의 항의와 변명이 담긴 절절한 내용이었다. 새로 계약한 회사에 레몬 가스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이는 특정 회사가 아니라 여러 업체가 사용하는 공동 브랜드라고 했다. 요즘 TV 광고를 통해 기존 고객을 빼앗고 있으며, 새로 바뀐 업체는 업계 질서를 무너뜨리는 부당 영업을 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손글씨로 또박또박 적힌 편지는 오히려 과장되고 집요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일본 특유의 과도한 경쟁과 그 이면에 자리한 병리적인 영업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또 한 가지 불편했던 점은, 집이 역에서 도보로 18분 거리였다는 것이다. 걸어갈 수는 있었지만, 비가 오거나 여름철 무더위에는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마을 버스가 있긴 했지만, 아침 출근 시간에 두세 편 정도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내가 나를 역까지 데려다주거나 마중 나오는 일이 점점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자동차 중심의 생활이 자리 잡게 되었다.
사이타마는 도쿄와는 달리 차 없이는 살기 힘든 지역이었다. 외식을 하러 나가면 대부분의 음식점에 주차 공간이 있었고, 도쿄 중심부에서는 보기 힘든 이온몰 같은 대형 쇼핑몰과 복합 상업시설이 곳곳에 있었다. 불편함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족 중심의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했다. 고속도로(칸에츠 자동차도)를 타면 바로 군마현, 니가타현, 나가노현의 스키장이나 온천에 놀러가기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집을 산 지 6년쯤 되었을 무렵, 부동산 업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가 전한 소식은 놀라웠다. 내가 처음에 살까 말까 고민했던 리모델링 된 주택, 바로 내 옆집이 부동산 경매로 나왔다는 것이다.
업자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좁은 땅에 신축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지금 옆집을 사서 두 필지를 합치면, 나중에 팔 때 훨씬 유리합니다.”
부동산 경매는 생전 처음이었고, 낙찰 가능성도 낮아 보였다. 하지만 업자의 권유에 따라 반신반의하면서 입찰 서류를 준비해 제출했다. 감정가는 1,200만 엔이었지만, 일단 안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절반인 600만 엔을 적어 냈다. 참고로 아내는 일본에서 매우 드문 성씨인데 그 부동산 업자가 아내와 같은 성씨라서 (아내 가족 말고 그 성씨 가진 사람은 처음이었다) 먼 친척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조금 더 신뢰가 갔는지도 모르겠다.
입찰 결과를 기다리던 중,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도쿄 수도권의 철도망은 마비되었고, 주유소엔 기름을 넣기 위한 긴 줄이 늘어섰다. 기름도 아낄 겸 당시 취미로 가지고 있었던 혼다 APE 100오토바이를 몰고 낙찰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가와고에에 있는 지방 재판소까지 직접 달려갔다. 낙찰 결과는 경매 물건 번호와 낙찰자 이름을 호명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구석에 앉아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설마 했는데 진짜 내 이름이 불렸다.
그 순간, 안에 있던 부동산 업자들과 관계자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외국인 이름이 불려서 놀란 기색이었다. 나는 그렇게 600만 엔에 옆집을 낙찰받으며 졸지에 일본에서 다주택자가 되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낙찰받은 집에는 입주자가 여전히 거주 중이었지만 누가 사는 지도 모를 정도로 대부분 인기척이 없는 집이었다. 일본의 경매 부동산은 대부분 ‘현상 인도(現況引渡し)’ 조건이기 때문에, 입주자가 자발적으로 나가지 않으면 법적 절차를 거쳐 강제 퇴거를 해야 한다. 이는 시간도 비용도 드는 골칫거리였다.
며칠 뒤, 다행히 아내가 그 집에 사람이 잠시 들른 모습을 목격했다.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리가 이 집을 경매로 낙찰받았다는 사실과 빠른 시일 내 퇴거 가능 여부를 정중히 설명했다. 상대는 의외로 상황을 이해했고, 한 달 후 자발적으로 이사를 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집 내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리모델링을 또 한 번 한 듯, 집은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집보다 더 깔끔하고 쾌적해 보였다.
나는 이렇게 또 하나의 집을 얻었고, 동시에 또 하나의 가능성과 고민을 안게 되었다.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