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계속 이어질 고난의 시작
캐나다에 도착한 지 몇 달이 지나고 연말이 다가올 무렵, 드디어 일본 네리마의 집에 구매 희망자가 나타났다. 나는 캐나다에 머물며 일본에 계신 장모님을 통해 대부분의 서류를 처리했다.
당시 나는 2월 말에 회사를 그만뒀고, 1월 1일 기준으로는 여전히 네리마구의 주민 등록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일본에서는 1월 1일에 주민 등록이 되어 있으면, 그 해의 주민세가 전년도 소득 기준으로 과세된다. 집을 팔지 못한 상태에서 명의도 내 이름으로 되어 있었기에, 아내와 아이들만 주민 등록을 말소한 채 나 혼자 등록을 유지한 상태로 출국했다. 국민연금도 당연히 계속 납부 중이었다.
하지만 이 상태로 다음 해 1월 1일을 넘기면 또다시 주민세가 부과되므로, 일본에 직접 들어가 필요한 서류를 준비한 후 주민 등록을 말소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집을 팔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일본에 다녀온 지 2주도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남은 융자금을 일괄 상환하려면 반드시 본인이 은행에 방문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미쓰비시 UFJ은행은 "지점 방문은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대리인을 일절 허용하지 않았다. 준비된 서류에 도장 하나 찍기 위해 캐나다에서 다시 일본까지 날아가야 했다. 아무리 항의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죄송합니다”뿐이었다. 일본 사회의 융통성 없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한 순간이었다.
비슷한 일은 토론토의 일본 총영사관에서도 겪었다. 일본 운전면허증을 캐나다 면허로 교환하려면, 영사관에서 발행한 공식 번역본이 필요했는데, 이 번역본을 받는 데 일주일이나 걸린다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은행 계좌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소가 명시된 신분증이 필요했고, 그 출발점이 바로 운전면허증이었다. 나는 3주간 캐나다에 잠시 머무르며 준비 중이었는데, 번역 하나 때문에 귀중한 시간을 일주일이나 허비해야 했다. 번역은 사실상 이름과 면허번호만 바꿔 프린트하는 템플릿에 불과했지만, 수수료 25달러는 신용카드나 직불카드 결제가 불가했고, 현금이나 certified cheque만 가능했다. 25달러짜리 공증 수표를 만들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이후 캐나다에서 오토바이 면허를 취득할 때도 불합리함은 반복됐다. 일본에서 이미 오토바이 면허를 소지하고 있었지만, 일본과 온타리오 주는 4륜 차량 면허에 대해서만 상호 교환 협정이 있고, 2륜 면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도 일본에서 오토바이 면허를 오래 보유한 기록이 있으면, M1–M2–M으로 이어지는 캐나다의 3단계 면허 시스템 중 M2에서 M으로 넘어갈 때 요구되는 1년의 유예기간이 면제되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일본 총영사관이 발급한 면허 번역본에는 4륜 면허 정보만 기재되어 있고, 2륜 정보는 누락돼 있었다. 일본 면허증에는 분명히 4륜과 2륜 모두 기재되어 있었기에 항의했지만, “2륜은 협정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유예기간 면제를 위해 2륜 보유 경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설명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개인 번역회사에서 별도로 번역을 의뢰하고, 이를 공증 받아 제출해야 했다. 그 결과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했고, 비용도 50달러가 추가로 들었다. 지금도 이 일은 일본 행정의 융통성 부족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이야기한다.
집을 팔기 직전 마지막으로 네리마 집을 찾았을 때, 마당 한켠에서 아이들과 함께 키우던 스다치 나무에 주황빛 열매가 맺혀 있었다. 평소엔 호랑나비 애벌레의 먹이로만 쓰던 나뭇잎 덕분에, 이렇게 열매를 맺은 모습은 처음이었다. 집을 구매한 일본인도 얼굴을 보고 싶다며 요청하여, 중개 사무소에서 짧게 인사만 나누고 돌아섰다.
그렇게 나는 일본 은행의 융자를 모두 상환했고, 남은 잔금 2천만 엔이 내 계좌에 입금되었다. 이 돈은 한 번에 보내지 않고, Wise 송금 서비스를 통해 100만 엔씩 나눠 환율이 좋을 때 캐나다로 옮겼다.
그 무렵 캐나다에서는 임대하던 집의 1년 계약이 끝난 상태였고, 1개월 단위로 연장하며 거주 중이었다. 아내는 아직 일을 시작하지 않았고, 나는 우버와 리프트 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의 후배 남편이 부동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집을 소개해 주겠다며 도움을 주었다.
내 수입과 예산으로 집을 살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지만, 그분은 한인 모기지 브로커도 연결해 주었다. 다운페이먼트만 충분하면, 메인 은행이 아닌 제2금융권을 통해 대출이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우버 수익은 사업소득으로 간주되어 기름값과 차량 유지비 등을 공제한 순이익 기준으로 대출 가능 금액이 산정되지만, 제2금융권은 이를 단순 월수입으로 계산해 주기 때문에 약 30만 달러 이상의 대출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서울 구로동의 아파트도 전세를 끼고 있었지만 매각이 가능했고, 어머니는 이 자금 중 약 15만 달러를 지원해 주시기로 했다. 단독주택은 어려웠지만, 방 세 개와 지하실이 있는 중고 타운하우스라면 도전해볼 만했다. 캐나다에서는 부모님이 다운페이먼트를 지원하는 것은 일반적이었지만 내가 부담하는 25만불의 다운페이먼트는 자금 출처를 진짜 꼼꼼하게 요구했다. 일본 은행의 과거 3년간의 입출금 내역까지 제출했고 전부 일본어라서 걱정했는데 은행 직원중에 일본어를 좀 아는 중국계 직원이 있어서 무사히 증명을 해 주었다. "헤이세이 xx년"이 서기 몇년인지를 확인해 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 진짜 일본의 시스템은 이런 거 하나하나까지 짜증나게 한다.
매물을 둘러보고, 후보를 정하고, 브로커와 협의를 이어가던 중, 일본에서 데려온 고양이가 갑자기 숨을 가쁘게 쉬기 시작했다. 병원에 데려가니 흉수가 차 있었다. 긴급조치를 했지만 종양 여부는 바로 확인되지 않았다. 보험이 없었기 때문에 매번 진료비는 수백 달러씩 들었고, 결국 CT를 찍은 끝에 폐에 종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검사비를 포함해 이미 수천 달러가 들어간 상태였고, 수술까지 포함하면 총 비용은 만 오천달러를 훌쩍 넘는다고 했다.
순간 집을 사는 대신 수술을 선택할지도 고민했지만, 결국 치료를 포기하고 흉수 제거와 스테로이드로 몇 주를 연명시켰다. 흉수를 빼고 나면 하루 정도는 안정을 되찾는 듯한 모습이었기에, 안락사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았다.
동물병원이 쉬는 일요일, 잠시 계약서 서명을 하러 외출한 사이 고양이는 세상을 떠났다. 가나가와현 히라츠카에서부터 새끼 때 데려온 아메리칸 쇼트헤어였다. 일본에 있는 브리더에게도 연락해 혹시 유전적 병력이 있었는지 물어봤지만, 고양이의 어미는 지금도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먼 캐나다까지 데려오는 과정에서 혹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주었던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도 들었다. 10년을 함께한 가족 같은 존재였고, 특히 큰아이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멍한 정신 속에서도 가족을 책임져야 했다. 계약금을 내고 3개월 후 잔금을 치르는 조건으로 리치먼드 힐의 타운하우스를 계약했고, 그 즈음 뜻밖의 면접 연락이 왔다. 조건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얻은 정규직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