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산 -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다.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취직하게 된 회사는, 내가 그동안 전문으로 해 왔던 유통 분야도, 상품 데이터베이스 관리도 아닌 전혀 생소한 일이었다. 회사 이름은 밝히지 않겠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SNS 서비스의 운영 정책 위반 신고를 처리하는 ‘콘텐츠 모더레이터(Content Moderator)’라는 직종이었다.
그렇게 애를 써도, 내게 주어진 일은 결국 일본어와 한국어 능력을 활용하는 업무였다. 임금은 온타리오주의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았을 뿐이지만, 일반적인 회사원 복지 혜택—의약품, 치과, 생명보험—이 제공되었다는 점은 우버와 비교해 큰 차이였다. 우버는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개인 보험 가입 부담이 컸고, 매번 약값이나 치과 치료비를 자비로 해결해야 했다. 반면 회사 보험은 일부 급여에서 공제되긴 해도 회사가 일정 부분을 부담해 주기 때문에 훨씬 유리했다.
Entry-level 직장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직원은 젊었고, 일본어 파트에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온 일본인도 있었다. 수입만 놓고 보면 여전히 우버 쪽이 더 나았지만, 나는 이 직장을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경력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했다. 부족한 수입은 여전히 우버로 메웠고, 새로 계약한 집의 은행 대출은 임시 승인 상태였지만 총소득에 큰 변화가 없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침 9시 출근이었기 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나 약 4시간 동안 우버를 하고, ‘데스티네이션 모드’를 켜서 직장 방향의 승객을 태우며 출근했다. 출근 전에 100달러 정도 벌고 나면 회사 업무도 한결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다.
업무 특성상 인터넷상에서의 혐오 발언, 충격적인 이미지, 성매매 알선 등의 신고를 다루다 보니,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직원도 많았고 이를 위한 케어 서비스도 마련돼 있었다. 나 역시 토막 살인 현장 사진이나 교통사고 시신 사진을 보고 바로 화면을 닫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업무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고, IT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내가 보기엔 오히려 단순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입사 두 달째, 일본 인터넷상에서 한국인을 차별하는 혐오 발언을 한 일본 이용자의 처리 건을 두고 동료와 의견 충돌이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회사 측은 내가 사내 보안 규정을 위반했다는 통보를 했고, 수습 기간 3개월이 지나기 전이었기에 나는 예고 없이 해고되었다. 정확히 어떤 위반이었는지는 설명되지 않았지만, 짐작은 갔다.
문제는 그 타이밍이었다. 캐나다 집을 계약한 직후였고, 모기지 승인은 아직 임시 상태였다. 계약 당시의 고용 상태를 기준으로 승인된 조건이었기에, 만약 직장이 바뀌었거나 실직 상태로 인정되면 은행은 재심사를 요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승인 자체가 취소될 수 있고, 계약금도 날리게 된다. 다행히도 나는 은행 측에 “직장은 그만뒀지만 고용 기간은 1개월 반에 불과했으며, 다시 원래 하던 우버로 돌아왔다”고 설명했고, 총소득에도 큰 변동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 기존 승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해고는 큰 충격이었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다운페이먼트에 보태기 위해 아파트 매각 대금 일부를 송금해 주기로 하셨는데, 한국은 일본보다 외화 송금 절차가 훨씬 까다롭고, 자금 출처 확인도 복잡했다. 캐나다의 잔금 납부 일정과 어머니의 송금 일정이 맞지 않아, 어머니가 세무서를 직접 찾아가 양도소득세 납부 확인을 받고서야 겨우 송금할 수 있었다.
계획은, 한국 어머니 계좌 → 캐나다 동일 명의 어머니 계좌 → 어머니가 미리 서명한 수표로 다운페이먼트 일부를 납부하는 구조였다. 문제는, 수표 금액이 커서 처리에 1주일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이미 자금은 입금되어 있었고 잔금 지불일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대로 가면 계약금을 날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모기지 브로커와 상담 끝에, 내가 TD뱅크 홈 브랜치(계좌 개설 지점)에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은행 매니저의 승인을 받아 써티파이드 체크(Certified Cheque)를 발급받기로 했다. 다행히 은행 매니저는 이해심이 있었고, 어머니와 간단히 통화한 뒤 인증을 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캐나다에서 첫 집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과거 일본에서 주택을 소유했던 이력이 있었기 때문에, ‘퍼스트 타임 바이어’ 혜택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등기 변호사 비용과 취득세를 모두 낸 뒤에는 손에 쥔 현금이 거의 남지 않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캐나다와 일본의 주택 구입 절차가 얼마나 다른지도 뼈저리게 체감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부동산을 구입할 때 구매자도 중개료를 내야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일반적으로 중개료는 판매자가 부담하며, 구매자는 내지 않는다. 일본의 등기 업무는 사법서사(법무사)가 담당하지만, 캐나다에서는 변호사가 등기뿐 아니라 잔금 처리, 세금 업무까지 모두 맡는다.
또한, 일본에서는 은행 융자금이 일단 내 개인 계좌로 입금된 뒤 판매자에게 지불되지만, 캐나다에서는 내가 납부한 다운페이먼트와 은행 융자금 모두 변호사의 신탁 계좌로 입금되고, 변호사가 이를 통해 잔금을 지불하고 등기 및 세무 처리를 일괄적으로 진행한다.
이 모든 차이점은 이민자로서 새롭게 적응해야 할 현실이었고, 나는 그 현실 속에서 가족의 생계를 지켜야 했다. 직장은 이미 짤렸고, 월세 대신 은행 융자를 갚아야 했으며, 제2금융권에서 빌린 만큼 이자율도 일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았다. 일본에서는 매달 상환금의 80%가 원금이었지만, 캐나다에서는 그 반대로 80%가 이자였다.
아내는 ESL 과정을 마치고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공부를 시작한 상태였고, 나는 다시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저녁 8시, 9시까지—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고, 경우에 따라 일요일도 나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