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움직이는 성

by 전 소

성 안의 벌레들은 허상의 갑옷을 걸치고

차례차례 흐릿한 사람의 그림자로 바뀌어간다

그들은 성과 함께 멈춤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뒤처지고 무리에 섞이지 못한 벌레들은

갑옷과 무기를 잃고

허상의 인간 가죽마저 벗겨진 채

성의 폐기물과 함께

끝을 알 수 없는 사막으로 배설된다


거대한 태양의 직사 아래

어둠의 벌레들은 황량한 불꽃 속에 구워지고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 채

소멸이라는 운명을 기다린다


그 한편,

성 안의 백열등은 여전히 따스하고 아름답다

사람들은 그 빛을 태양과 달에 비유하며

신의 광채가 영원히 자신들을 비춘다고 믿는다


성 밖,

한때 태양을 좇던 벌레들의 시신은

마침내 반짝이는 금덩이로 남게 되고

어느 날, 성 안의 사람들이 그것을 캐내어

다시금 화려한 갑옷으로 단장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석중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