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은 희망처럼 노력의 방식이 달라야 한다
오늘, 창가에 앉아 문득 생각에 잠겼다.
절망에 대해, 그리고 노력에 대해.
그 순간 마음이 조용히 움직였고,
이 생각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졌다.
나는 아마도 꽤 오래전부터
고통을 잘 참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람과의 이별 앞에서도 먼저 미련 없이 등을 돌렸고,
상처를 받아도 그 아픔을 말로 꺼내기보다
혼자 조용히 마음속에서 정리하며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었다.
슬픔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지 않다 보니
언제나 “괜찮아질 거야”,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절망을 미리 받아들인 채
그에 맞춰 움직이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그건 마치, 부모님과 심하게 다투던 날들처럼
절망을 예감하고 마음을 단단히 다잡은 채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견뎌내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열심히 살아왔다.
참고, 견디고, 애쓰며.
그러나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절망에 맞춘 노력과 희망에 맞춘 노력은 다르다.
절망에 빠진 순간, 더 열심히 버티려는 노력은
오히려 나 자신을 공격하게 되기도 한다.
마치 늪에 빠졌을 때
몸부림칠수록 더 깊이 가라앉는 것처럼.
우리가 아플 때 해야 할 진짜 노력은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멈추고, 천천히, 가라앉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전거가 앞으로 달리고 싶을 땐 힘껏 페달을 밟아야 하지만,
기름이 다 떨어졌을 땐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결국 고장 나고 만다.
절망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그 감정을 ‘깊은 바다’라고 생각하려 한다.
억지로 벗어나려 하기보다,
차라리 온몸을 바다에 눕히고
천천히 숨 쉬며 떠 있으려 한다.
그렇게 나를 가라앉히고 기다리는 것.
그것 또한 하나의 노력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절망이라는 감정은 어쩌면
우리에게 또 하나의 버팀목이 되어주려는 것이 아닐까.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면,
절망은 다시 살아갈 희망의 어머니일지도 모른다.
생명이 어둡고 깊은 바닷속에서 태어나듯,
우리의 새로운 시작도 어쩌면
절망이라는 바다의 품 안에서부터
조용히 시작되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