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문화 2024 봄호>
흰 눈은 젖은 숲을 돌리다 만 태엽
숲에는 어제 죽은 나뭇잎 냄새가 난다
그 위에 쌓인 눈은 고백하지 못한 입술들
훔칠 수 없는 슬픔을 생각하다 잠든 적이 있었다
창가에 내리는 흰 눈 속의 눈동자
유리창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나뭇잎
입술을 깨물며 언 손으로 너의 손을 잡으면
차가운 손은 미끄러졌다
두 손으로 새를 만들었던 그림자놀이
빛과 어둠 사이에 금이 가고 있었다
아직 읽지 못한 오르골 편지
사라지지 않는 멜로디를 품고
어떤 젖은 숲에서 뒹굴고 있을까
나무 밖에는 빛이 쏟아지고 새가 운다
눈 위에 찍힌 새 발자국
그 끝에 누워 있는 너는 모를 것이다
젖은 숲의 냄새를
흰 눈 속의 시계를
오르골 편지에 가득한 눈의 문장을
겨울새처럼 네가 어제 발자국을 찍으며
젖은 숲을 노래하며 나타날지도 모른다
손바닥을 펴자 손 안에 빛이 가득하다
약속은 반지 속으로 사라져
찾을 수 없는 아득한 고백
나무들 사이에서 어른거리는 구름
이제는 젖은 숲 끝까지 등을 돌리고 걸어가야지
미래는 그렇게 오는 거겠죠
흰 눈은
어제 죽은 너의 낯빛으로 녹기 시작한다
며칠 전 꿈에서 우리는 젖은 숲을 걸었다
너는 어울리지 않는 겨울풍경에 대해 말했고
잠시 쏟아졌다가 사라졌다
내가 없는 너의 꿈은 어떤 모습일까
흰 눈을 딛는 발자국에서 새어 나오는 마음은
궤도 밖으로 새를 날린다
태엽의 힘으로 다시 돌아온 너는
어둠 속에서 오르골 편지를 꺼내듯
또 다른 새를 꺼낸다
-[시와문화] 2024 봄호, 118~1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