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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산의 계단

by 조희

라오산의 계단



조희 趙曦


은행나무가 신의 계시처럼 손을 흔들 때

계단에서 은행잎을 껴안고 뛰어내라는 새

반쯤 깨진 사람 같고

나를 찾아오지 않는 당신을 찾아서

계단에 까만 돌로 서 있었다.

바람은 나를 모래언덕으로 옮기려 했다.

오랜 줄다리기에 지친 두 손을 털고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나에게 물을 주기로 했다. 계단을 오르며

돌이 돌에게 물을 준다.


나에게 찾아오지 않는 당신을 찾아서

스스로 부서지기 위해 물을 준다.

어디선가 달려온 파도소리는

계단 속으로 자꾸 파고든다.

바닥에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은 어떤 모래

계단을 얼마나 올랐을까

옆구리에 고인 물웅덩이에서

내가 뭉개진 얼굴로 모래의 문장을 꺼낼 때

새들은 사람의 표정으로 다시 날아오르고

여기 라오산 계단에서 당신을 만난 것 같고


누군가가 꿈 바깥에서 나를 세차게 흔들었다.

계단은 신의 오브제라고



칭다오 노산의 은행나무.jpg

칭다오 노산(라오산)의 은행나무. 2024년 11월 14일. 나비의 건축술 사진


칭다오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오후2시30분쯤.jpg

칭다오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2024년 11월 15일 오후 3시쯤.


칭다오 노자상 계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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