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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Oct 03. 2023

어머니 힘내세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뇌종양'(brain tumor)

80세를 눈앞에 둔 어머니에게 내려진 병명이다.

몇 해 전부터 시력이 많이 나빠진 어머니는 아버님의 권유로 1년여를 기다려 서울의 큰 병원에서 각막이식 수술을 받으셨다.

수술 후 얼마간의 회복기간만 지나면 점차 시력이 좋아질 거라는 실력 있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말 잘 듣는 초등학생처럼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이른 아침 첫 버스를 타고 서울병원에 외래 다니신 지도 어언 3년 여가 흘렀다.

하지만 지금쯤이면 회복이 되고도 남았을 시간이건만 여전히 어머니의 시력은 좋아지기는커녕 눈앞에 있는 얼굴의 형태도 간신히 구분할 정도로 점차 나빠져만 가고 있었다.

그리 그리하여 또 백내장 수술까지 마친 어머니의 여전히 흐릿한 시력이 걱정스러우셨던 아버님께서 최종적으로 찾았던 병원에서 이런 원인이 눈 때문이 아닌 다른 것 때문일 수도 있다는 또 다른 병일 가능성의 걱정을 하나 더 보탠 채 MRI 검사를 진행했고 뇌종양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결혼을 하면서부터 난 어머니가 참 좋았다.

일찍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분위기를 가진 어머니에게 왠지 친근감이 느껴지면서 시댁으로 인한 힘듦은 없겠다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들었다.

며칠 전 서울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받고 집에 돌아올 버스를 기다리시다가 전화를 하셨다.

걱정하고 있을 자식에 대한 염려전화였다.

"불안하지 않으세요?" 

딱히 위로의 말이 생각나지 않아 던진 내 물음에 

"이제 살만큼 살았는데 불안할게 뭐 있다니?"라는 차분한 대답 안에는 작은 일 큰일 다 겪으신 어머니 삶의 흔적이 조용히 묻어있었다.

"악성은 아니라니 수술 잘 될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말씀드렸지만 마음의 진심을 담기에는 너무도 부족하고 통상적인 단어 몇 마디가 야속하고도 턱없이 얕게 느껴져서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렇게 간단한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으면서 문득 친정엄마가 생각나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십 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엄마는 퇴근길 유연하게 흐르는 흰구름에도, 들에 흐드러지게 핀 해바라기에도, 아무 생각 없이 먹던 국수가락에도, 하얀 김이 모락모락 흩어지던 순댓국에도, 불쑥불쑥 그 존재를 드러내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울컥거리게 한다.

회사에 휴직서를 제출하고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약 보름정도 엄마를 간호했다.

그 시간이 내가 엄마에게 실질적으로 효도한 유일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앞으로 얼마의 시간을 보장받았을지 모를 엄마의 하루하루를 위해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래 딸이니까 저렇게 지극정성으로 엄마를 간호하지" 

라는 다른 보호자들의 말을 들으며 참 서글퍼졌다.

엄마에겐 항상 아빠가 계시니 엄마의 보호자는 당연히 아빠라는 생각은 젊디 젊은 자식이 역시 나이가 드신 아빠에게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미루어버리는 안일한 태도였던 것이다.

병실에 누워있는 엄마를 바라보는 슬픔은 더 이상 아무런 손도 쓸 수 없이 엄마옆을 지키는 아빠에게 뾰족한 화살이 된 채로 뿜어져 나갔다.


아무리 과거를 되짚고 회상해 봐도 어린 시절 아픈 나를 등에 업고 한 밤을 꼬박 병실을 서성이던, 집에 돌아가는 기차를 놓쳐 스산한 바람이 부는 노을가까이 내려앉은 들판을 따라 걸으며 자식 배고플세라 어디선가 뽑아온 무를 옷에 슥슥 닦아주던, 이른 새벽 기차를 타고 학교에 가야 하는 자식들을 위해 그보다도 더 이른 새벽 아침밥을 준비하시던, 그때는 당연하게 생각했었을 그 순간순간들이 왜 이리도 가슴 아픈 부메랑이 되어 내 마음을 후벼 파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일상을 조금 더 자세히 살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는 이미 떠난 버스뒤에서 어김없이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는 것 하고는 차원이 다를 것이었는데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을 위해 하는 후회는 어느샌가 켜켜이 쌓여가는 그리운 크기의 비례만큼 후회가 남는 것임을 좀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는데...


오늘 문득 내 옆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

가족으로, 친구로, 직장동료로, 혹은 선배로 후배로, 나와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과 함께했던 어느 날의 한 순간이 타자가 마음껏 쳐낸 홈런볼이 되어 먼 훗날 내 가슴에 후회로 꽂히기 전에 그래서 몸도 마음도 큰 타격을 입고 나가떨어지기 전에 항상 함께해 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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