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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Sep 24. 2023

죽음의 스쾃

스쾃 하다 죽은 사람 없지요?

역도화, 무릎보호대, 팔꿈치압박붕대, 벨트, 온갖 도구들을 들고 헬스장으로 향하는 남편 뒤를 따라 겨우 내가 마실 물병하나를 달랑달랑 들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황소처럼 걸음을 뗀다.

여름저녁 무더위가 다 이곳으로 밀려들어왔나 싶을 정도로 후텁지근한 지하 2층 주차장을 빠져나가면 코로나로 인해 아파트 입주시기보다 몇 년 늦게 개방된 주민체육시설인 헬스장이 나온다.

들어가는 문 입구에 달린 얼굴인식 화면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무심한 얼굴을 갖다 대면 그 얼굴 주인의 이름이 뜨면서 '문이 열렸습니다' 하는 여자음성의 기계음이 들리고 '딸칵' 문이 열린다.

오늘도 역시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경쾌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에 리듬을 실어 나르듯 저마다의 기구들과 씨름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입구에 나란히 정렬되어 놓여있는 러닝머신들과 그 앞에 역시나 얼마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자전거 몇 대를 지나쳐 렛풀다운, 체스트프레스, 레그익스텐션, 레그컬, 벤치프레스, 레그프레스 등 운동만큼이나 이름도 힘들게 불려지는 기구들을 지나면 저 맨 구석자리에 - 아마도 모두에게 외면당할걸 알고 차지한자리 - 떡 하고 스쾃 랙 이 자태도 위용 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아파트 헬스장을 이용하기 전 나와 남편은 1년여 동안 동네의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지만 없는 근력에 무리하게 몸을 쓴 덕분인지 나의 어깨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고 코로나로 인해 백신 3차 접종을 앞두고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잠깐동안의 휴지기를 가졌었다.

그곳에 나가면서 많은 기구들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외우게 되었고 혼자로는 절대로 해낼 수 없을 만큼 힘든 운동의 강도를 남편의 덕분으로 이겨낼 수 있었기에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해온 운동실력과 남을 가르쳐봤던 경험을 살려 나의 맨투맨 과외 선생님이 된 남편의 운동에 대한 열정이 모조리 나한테 쏟아지고 그 감당은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되는지라 내가 다 죽을 맛이었다.

운동이 필수인 시대가 된 지금 운동의 대가처럼 들려오는 스쾃이란 운동을 여러분들도 다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한다.

근력운동의 3대 핵심 운동을 두고 스쾃,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라고 하며 운동깨나 한다는 사람들은 그 세 가지 운동을 합쳐 무게를 몇 치냐고 묻고 3대 500이라는 무게를 들어 올린 사람들은 조금 웃프지만 우쭐한 마음을 가지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힘든 운동인 3대 핵심운동을 중년이 훨씬 넘어버린 내가 하고 있으며 오늘이 바로 그 힘들다는 스쾃을 하는 날이니 집을 나서면서부터 끌려가는 소만큼이나 발걸음이 무겁다고 허풍 아닌 허풍을 떨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첫 세트부터 남편의 자세 잔소리가 시작된다.

가슴을 펴라, 일어날 때는 발바닥으로 바닥을 힘껏 누르고 똥꼬에 힘을 주면서 엉덩이로 일어나라, 

다리를 비틀면서 일어나지 마라, 가슴이 같이 올라와야 허리에 무리가 안 간다 등 등 끊임없는 자세 지적에 짜증이 나기 시작하면서 '내가 뭐 하러 운동을 이렇게 힘들게 하고 있나, 어디 보디빌딩 대회 나갈 것도 아닌데' 그저 건강을 생각해서 시작했던 운동에 되려 짜증 나는 마음과 더해서 스트레스까지 얹어지니 급기야는 " 스쾃 말고 대신할 수 있는 운동 없어? 스쾃 하다가 죽을 것 같네." 

스쾃 말고 레그 프레스로 하체운동을 하겠다는 내 마지막 필살기에 남편은 자기가 생각하기에 레그프레스는 스쾃의 50% 정도밖에 안 되는 하체운동이라며 스쾃을 절대 양보하지 않을 기세로 내입을 막아버린다. 

이렇게 구시렁대기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바벨을 들기 시작하면 은근히 승부욕이 발생하는 나는 또 이를 악물고 무게를 들어 올린다.

그렇게 알 수 없는 희열에 원반을 하나씩 하나씩 더 끼워가다 보면 드디어 내가 목표했던 10세트 운동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제야 여기저기 운동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엄청난 괴력을 타고난 삼손도 울고 갈 만큼 넓은 가슴과 어깨를 가진 4십대 정도로 보이는 주민 한분이 역시나 나처럼 구시렁대면서(힘이 들면 나도 모르게 구시렁대게 된다) 덤벨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키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머리가 희끗하게 나이 드신 어르신부터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듯한 젊은이까지 우리는 운동이라는 기차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위해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기에 결국은 그 목적지에 도착해서 가뿐 숨을 들이쉴 그 황홀한 순간을 상상할 수 있기에 기꺼이 편안하게 늘어질 수 있는 시간을 운동에 헌납하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오면 그 힘든 시간을 견녀낸 나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남편은 단백질이며  꿀이며 약간의 탄수화물 등 을 준비해 나에게 갖다 바친다.

이맛도 저 맛도 아닌 먹기 거역스러운 단백질 한 컵을 밀어내며 먹기 싫은 표정을 지으면 운동을 하는 것만큼이나 먹는 것도 중요하다는 한마디를 꼭 덧붙이면서 남편 또한 선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한다.

운동을 하면서 나는 심신(心身)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몸을 힘들게 쓰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게 되고 그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정신또한 단단해짐을 체득하게 되었다.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진 않지만 일단 습관을 들여 나의 일상이 된 후에는 그 습관을 버리기도 어렵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이 좋은 습관을 가지려고 하는 이유이다.

오랜 기간이 걸렸지만 운동은 이제 나에게 좋은 습관 중 하나가 되어 나의 일상에서 제법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운동을 순조롭게 마칠 수 있도록 서포트 역할을 하는 남편의 애씀을 아는 나는 남편이 들으면 기분 좋을 한마디를 건넨다.

"스쾃 하면서 죽은 사람은 없지? 다음시간에도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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