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노 Oct 14. 2023

나는 지금 인터미션(intermission) 중

let it be

이젤에 놓인 캔버스 위의  미완성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파렛트에 덕지덕지 붙은 유화물감을 나이프로 박박 긁어대다가, 괜히 붓통에 꽂혀있는 붓이며 여기저기에서 모아들인 물감 케이스에 끈적끈적 묻은 오일도 닦아보다가, 또 질서 없이 책장 한편에 모아둔 리플릿들도 뒤적거려 보다가 결국은 방을 나왔다.

그림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캔버스 앞에 앉으면 어떤 시점에서 붓 터치를 시작해야 할지 난감한 마음은 여전하다.

혹자는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니 마음 편하게 즐기면서 하라고 충고한다.

단지 그림이 좋아서 시작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좋아하는 일이 스트레스가 되고 작게는 일상생활마저 흔들릴 때가 있으니 사람들의 충고가 백번 맞는 말이다.

 



그저 어린 시절부터 그림이 좋았고 그림을 볼 줄 아는 나이가 된 후로는 여러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하다가 어느 날 문득 내 마음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분주해졌다.

잠깐동안 학창 시절 화실에 나가  아그리파 석고 데생을 그려보며 화가의 꿈을 꾸어본 적도 있지만 부모님의 탐탁지 않은 경제적 지원 덕분에 일치감찌 생각을 접었다.

특히 아빠는 '그림쟁이(아빠의 표현) 들은 가난하게 산다' 며 돈으로 결부시켜 당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그렇다면 그 길을 걷지 않은 내가 지금 부자로 살고 있는가? 그건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꿈은 완전히 포기되지 않은 채 마음 귀퉁이 언저리에서 항상 나를 따라나녔고 몇 번쯤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기도 했었다.


처음으로 알게 된 화가는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 단지 상가에서 화실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었는데 공모전이나 대상작 등에 대해 몇 시간이고 비평하고 날을 세우는 모습으로 나에게 자신의 예술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것엔 성공했지만 그림만을 좋아하던 내 마음에 의지를 불어넣는것엔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화가의 그림은 본인의 성향만큼이나 날카로우면서 참 멋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 후로도 여기저기 지역화가들을 검색해 보다가 갓난쟁이 아기를 둔 친구를 꼬드겨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를 달려 한적한 시골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선생님을 찾아가 차 한잔을 얻어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오기도 했다.




나는 그저 그림이 걸려있는 어떤 장소라도 좋았다.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벽에 걸려 표구된 캔버스의 그림들은 보는 순간 현실에 버벅대느라 안 간 힘을 쓰던 나를 금방 미소 짓게 만들었다.

물감냄새며 오일냄새가 짙게 배어있는 아무도 없는 한낮의 화실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넓은 창을 통해 들어오던 강렬한 빛만큼이나 강하게 눈을 사로잡던 캔버스의 그림들이 자연 속으로 때로는 어떤 이의 단아한 낯빛 속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유화물감이 주는 거칠고도 강렬한 질감이나 여러 번 덧칠할수록 탁한 깊이가 느껴지는 풍부한 색감 등에 사로잡혀 무작정 물감이며 붓을 사들였다.

유화물감은 각 각의 특징이 있고 여러 가지 색을 섞어서 사용할 때 제맛이 나지만 특히나 채도[Colorfulness]가 낮아 가을을 닮은 Row sienna, 채도는 강하지만 여름과 어울리는 Vridian Green 등 은 내가 좋아하는 색상이다.




그렇게 다사다난한 시절을 거쳐 시작한 그림이지만 때로는 내 생각대로 표현되지 않는 손놀림에 예민해지고 답답해지고 한숨이 나곤 한다.

신이 나에게 재능은 주지 않고 갈망만 주었다고 푸념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미칠 만큼 열심히는 해봤냐' 며 아프게 정곡을 찔러댄다.

실력은 갑자기 일취월장하거나 통달하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서서히  올라간다고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내가 서있는 계단이 어디쯤 인지  습작의 틀 안을 벗어나지 못한 듯한 나의 그림이 결국 그 계단 한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나는 무턱대고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그림의 본질을 생각하고 더 매진하기 위해서란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몇 년을 몸담았던 화실에서 짐 을 챙겨 나온 날 갑자기 사라진 소속감에 괜스레 마음이 불안했고 자주 나태해지는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은 그저 지나가지 않는다.

스스로 둥지를 틀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가장한 채 있어도 언젠가는 그곳을 벗어나야 하는 순간이 올 것임을 잘 알기에 너무 깊게 둥지를 파고들지는 않아야 한다. 




그림과 함께하는 나의 시간들이 좋다.

직접 고른 아사천을 내가 원하는 왁구의 크기에 맞게 재단하여 팽팽하게 당기고 적당한 간격을 두고 타카핀으로 고정시키면 한 개의 캔버스가 완성된다.

물론 화방에서 구입하여 쓰는 캔버스도 가성비가 좋지만 이상하게 나는 캔버스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아날로그식 행위가 조금 더 유화그림이 가지는 특징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쩌면 나는 그림을 완성한 후의 기쁨보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 속에 머무는 수많은 붓질 속에서 - 멈추고 나아가고 를 반복하는- 인고의 시간을 견딘 나 스스로에게 더 큰 희열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컬러의 색감에 따라 어느 날 나는 고독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때로는 두려움 같은 알 수 없는 당혹감에 사로잡힐 때도 있지만 그런 감정들을 무난하게 내 삶에 버무려 농축시킬 수 있는 여유로움도 그림을 그리며 함께 배워간다.


나는 지금 잠시 쉬어가는 중이다.

3인칭의 관찰자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다 다시 시작해야 할 시점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가끔은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물러나와 큰 숲을 바라보듯 고개를 주억거려 볼 필요가 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나의 마음을 가라앉혀줄 작은 깨달음이라도 만나게 되는 날 

걸어도 종착점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나의 길에 설치된 무수한 장애물들을 서서히 걷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몇 해를 함께했던 스승님이 얼마 전 소천하셨습니다.
그림을 사랑했던 당신, 무한한 한 폭의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했습니다.


  







이전 07화 피렌체의 고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