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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Oct 29. 2023

나 돌아갈래~~

그땐 그랬지.

나의 삼십 대는 어땠나?

번듯하게 내세울만한 스펙을 가졌거나  부잣집에서 곱디곱게 자란 외동이거나 그것도 아님 사회적 지위로  번지르하게 금빛치장을 한 형제자매가 있거나 는 아니지만 그 나이가 주는 젊음이라는 강력한 배네핏 때문인지 나는 정규직 직원들 속에 소위 말하는 비정규직 사원으로 혼자 끼어서  행사를 진행할 때도, 회식자리에서 내 옆에 앉은 직장상사가 '너는 누구?'(물론 파트별로 많은 직원이 있었다만)라고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또 다른 그 옆의 상사가 비정규직원이라는 표현대신 내가 하는 파트의 업무로 에둘러 나를 설명할 때도 아무렇지 않은 미소를 띠며 그들과 담소를 나눌 만큼 자존감이 높았던 건지 세상살이가 그저 쉬웠던지 아무튼 나의 삼십 대는 그랬다.

그런 태평한 생각들이 플러스가 되었는지 마이너스가 되었는지 모른 채 어느새 중년이라는 나이에 덜컥 발을 디밀게 되니 세상만사 다 만만하게 여겨졌으면 좋겠고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 그날이  100점짜리 인생이라고  나 스스로 점수를  매기게 되었다.

크게 낙담한 적도 성공한 적도 없는 밋밋한 삶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 규칙대로 움직이는 내 삶의 동선들은 때에 따라 작고 크게 보폭을 띄어가며 때론 느리거나 위태롭게 뒤뚱거리지만 조금씩이라도 전진했다.

진흙땅에서 더 중심 잡기가 어렵고 속도를 내기 힘든, 하지만 어렵게 지나온 그 길에 더 굵고 짙게 베인 흔적을 남기는 손수레처럼 내가 지나온 길에도 결코 가볍지는 않으나 무겁지도 않은 내 발자국 이 그렇게 쌓여온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나는 여러 곳에서 30대 들에게 퇴짜를 맞았다.

선 본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중년들 망신시키는 소리인가 싶을 거다.

내 나이 바야흐로 20대 중반시절 퇴근길 지하철 2호선 플랫폼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언뜻 보기에 한국사람처럼 보이는 여자가 나에게 급하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세종대왕님 이 창조한 우리말이 아니라 영어로. - 고대 영어(Old English) 또는 앵글로색슨어(Anglo-Saxon)는 5세기 중반에서부터 12세기 중반까지 지금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남부에서 앵글로색슨인에 의해 쓰이던 언어이다.-라고 되어있다.


삼성역인지 강남역인지 를 가는데 이 전철을 타는 것이 맞냐고 물은 것 같았다.

일단 급한 마음에 팔로미를 외치며 막 떠나려는 전철 안에 몸을 실었다.

정말 난감했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나에게 하필 이 여자는 말을 걸었대?'

마음속으로는 긴장했지만 20대 젊음으로 철저히 무장한 나는 겉으로는 태연함을 가장한 채 지하철 노선표를 들여다보는 체했다.

나보다 늦게 하차하게 될 그 이방인 여자를 위해 아는 단어를 머릿속으로 나열해 보다가 ' Listen to the announcement '라고 한마디를 던지곤 내 옆에 서있던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에게 얼렁뚱땅 그 낯선 여자를 내 맡기고 불 보듯 뻔할 나만큼이나 뜨악한 표정을 하고 있을 그 학생을 뒤로한 채 재빠르게 그곳을 탈 줄 하였다.

세게 틀어놓은 히터 탓인지 당황함으로 화끈해진 마음 탓인지 얼굴이 불콰해졌다.




그날 이후로 영어를 배우기로 작정하였다.

영어가 좋아선지 그날의 창피함을 덜어내기 위해선지 모를 의문부호를 풀지 못한 채 그렇게 영어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말 그대로 작정만 한 영어는 늘지 않고 그래도 해가 바뀌는 새해 첫날 '올해 조금 더 정진해야 할 것 ' 들의 리스트에서 항상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중요 목록으로 물색없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를 몇 해, 동영상 강의, 미드 시청,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스크립트 따라 읽기 등 나름 노력을 하다가 직장동료인 외국인과 가끔 대화도 나눠보다가 발음이 안 좋아서 못 알아듣겠다고 괜히 없는 실력 티도 내다가 더 늦기 전에 영어 동호회라도 나가보자 굳게 다짐하고 인터넷을 뒤졌다.


'아 제가 나이가 좀 있는데 괜찮을까요?.

한창 젊은 카페지기 앞에서 있던 기도 죽이면서 어렵사리 물었더니 '아~~ 하고 뜸을 들인다.

'안 되나요?' 재차 물었더니,

'여기 나오시는 분들이 거의 이삼십 대 라서요'

흘려들어도 나오지 말란 소리로 들린다.

한참 젊은 세대들에 나 혼자 섞이는 건 자신 없지만 막상 거절 비슷한 것을 당하고 나니 어렵게 낸 용기가 팍 쪼그라들었다.


맥없이 전화를 끊고 이번에는 나이보다 영어의 열정이 제법 느껴지는 영어모임 사이트를 찾아 또다시 전화로 묻지는 못하고 톡을 날렸다.

'오셔도 되 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요'

, 과 , 의 글자를 보는 순간 마음이 닫혔다.

그 외에도 요즘 대표적인 중고거래 마켓 인 *근에도 들어가 봤지만 아예 나이제한을 삼십 대까지라고 정해놓은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난 오늘 삼십 대에게 물을 먹고 곧 삼십 대가 되는 바쁜 조카에게 전화를 해서 괜히 신경질을 냈다.

'야 너희들도 곧 중년된다. 항상 뭐 그 나이 일 줄 아냐?'

뾰로통한 이모의 마음을 아는 조카는 '이모, 이모가 동호회하나 만들어버려' 한다.

'정말 그럴까? 그리고 '삼십 대는 사절'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써놓을까?' 하다가 '하하' 하고 둘이 웃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나는 삼십 대의 나이가 부럽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만 때로는 그 나이대 가 주는 맞춤형 문제에 직면하여 그 문제가 요구하는 알맞은 답안을 제시해야 하는 순간이  닥쳐오기도 하기에 단순히 나이를 숫자로 치부해 버릴 수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삼십 대란 나이대는 그런 문제 앞에 졸거나 기죽거나 포기하거나 낙망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빛나는 인생의 황금기를 위해 언제든 첫발을 뗄 수 있는 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나이대의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를 이유 없는 에너지가 돌고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이런 척 저런 척하지 않고도 나다운 면모를 자연스럽게 내보일 수 있는 나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해진 젊음의 마지노선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젊음의 한계가 존재할 뿐.

그래서 분명 신체적으로는 여기저기 삐걱대기 시작하는 날이 다가오겠지만 하고 싶고 이루어내고 싶은 소중한 것들에는 적어도 '최후 방어선'이라는  마지노선을 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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