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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Nov 06. 2023

행복을 파는 김밥집

맛은 별책부록

가게 이름에 맞는 로고그림이 붙여진 출입문 옆쪽의 선팅 된 유리창을 통해 실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신없이 분주한 직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모양새가 꼭 무용수가 어깨춤을 추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 앞을 지키고 있는 손님들은 때로는 멍하니 메뉴판을 응시하거나 대기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거나 그마저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포스 앞을 서성이며 직원들이 열심히 김밥 싸는 모습을 보고 있는 중이다. 

주방의 화력이 센 화구 위에서는 라면이며 떢볶이가 끓고 있고 식기세척기에서 순식간에 세척된 그릇들은 하얀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깨끗이 소독되고 있다.




단조롭고 깔끔하게 멋을 낸 메뉴판으로 눈을 돌리자  주 메뉴인 김밥의 가장 기본이 되는 꼬마김밥, 스페셜 1, 스페셜 2, 단독메뉴로 판매되는 매운 어묵김밥, 날치알김밥, 떡볶이, 라볶이, 쫄면, 어묵탕 등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음식들이 가지런하게 줄 맞춰 자리를 채우고 있다.

먼저 반으로 재단된 김 위에 단무지, 계란, 잘게 채 썬 당근 약간을 올려놓으면 기본 김밥이 완성되고 스페셜 1,2는 기본 김밥 재료에 손님들의 기호에 의해 선택된 날치알, 어묵, 오징어, 스팸, 참치, 치즈 등 의 추가 재료가 들어간다.

내가 좋아하는 맛은 스페셜 1의 날치알 김밥이다.

마요네즈와 버무린 고추냉이소스에 톡 톡 터지는 식감을 가진 날치알의 향이 입안에서 퍼뜩 퍼지면 나도 모르게 짜릿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상가 거리의 내리막 시작점에 있는 이 가게를 중심으로 주변을 살펴보면 지금 시대를 대표하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용해 봤을  카페들, 빵집들, 아이스크림가게 등 많은 패스트푸드 점 들이 입점되어 있고 또 아파트 주민을 겨냥한 적당한 규모의 마트들도 적지 않게 포진되어 있다.

그런 만큼 가게손님들의 연령층도 매우 다양한 편인데 평일과 주말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먹거리나 쇼핑거리를 찾아 이 거리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픈 때는 기본메뉴인 김밥만을 판매했는데 50% 할인으로 행사를 홍보했던 덕인지 많은 손님들이 웨이팅을 하면서까지 가게를 방문하였고 주문을 담당한 점장은 다양한 김밥의 종류에 맞게 포스를 클릭하여 결제하고 손님의 오신 순서에 따라 bill 지를 정리해 나열하고 포장을 하는 등 자잘하게 신경 쓰고 챙겨야 할 일들이 무수히 많음을  빠른 손놀림으로 보여주었다.

또 가오픈이 끝나고 정식오픈이 시작되자 여러 가지 다양한 메뉴를 주문하고 음식을 찾아가는 손님을 위해 먼저 준비하고 있던 김밥의 진행과정을 지켜본 뒤  김밥과 같이 주문한 나머지 음식을 주방에 요청하는 등  손님의 needs에 맞추려 시간을 계산하며 연신 hall 직원들과 주방 직원들과 소통을 하며 바쁘더니 언제는 '손목터널증후군' 걸린 손목에 붕대를 감고 포장을 하면서도 포스 기를 연신 바라보며 실수를 하지 않으려 아픈 내색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길게는 30-40여분을 기다려서 주문한 음식을 찾아가는 손님들을 보며 사장님의 얼굴은 미안해서, 고마워서, 익숙지 못한 일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붉그레 홍조를 띠어간다.

 사장님은 주방담당으로 하루에도 몇 차례 쌀 씻기, 단무지 짜기, 당근 볶기, 지단 부치기, 햄 부치기 또 각종 음식에 들어갈 재료 다듬기 등을 도맡아 하면서도 가끔은 hall로, 카운터로 지원을 나오기도 한다.




사실은 안정된 직장을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둔 점장과, 여행하고 글 쓰고 식물 가꾸기를 좋아하는 사장님은 모녀관계이며 나의 언니와 조카이다.

처음 가게를 오픈한다고 했을 때 걱정스러운 마음에  '네가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구나. 때 되면 알아서 월급 받는 직장 생활하는 것이 최고다' 라며 조카에게 쓴소리를 날리기도 했고 '언니 가게 시작하면 좋아하는 여행도 못 다녀'라고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반대를 하기도 했었다.

 

이제 7개월 차에 들어선 가게는 조금은 주인티가 나는 언니와 전반적인 가게의 경영을 맡은 조카의 협업으로 인해  제법 안정된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주문량이 많아 가끔은 날 선 목소리를 내었던 손님들도 지금은 기다림의 미학을 터득한 티를 내고 있으니 마냥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음식점 주인이 된 언니는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해서 산책길에 꼭 들르게 되네요' 하며 이쁜 모자를 쓰고 일주일에 몇 번을  오시는 나이 지긋하신 손님과는 꽃과 나무얘기들을 나누며 나이를 넘어서는 우정을 쌓아가고 있고, 음식을 먹으며 수다삼매경에 빠진 삼총사 아주머니들께는 떡볶이에 들어가는 계란을 몇 개 더 넣어주며 단골로서 누려야 할 특혜? 를 주고 있기도 하다가, 출근길 허기를 메우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삶이 바쁜 젊은이들과는 편안한 미소로 하루를 여는 에너지를 주고받는다고 하니 이곳에서도 여전히 언니의 삶은 이전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깊이와 넓이를 더하며 진행되고 있다.


그곳을 다녀갔던, 다니는, 앞으로 다녀갈 모든 사람들이 그곳을, 단지 음식을 만들어 파는 곳만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 다양한 삶을 이야기하고 그 나눔을 꾸덕하게 채워가기 위해 존재하는 nothing special 이 아니라 something special을 가진 good place로 음미하며 오랫동안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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