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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Nov 16. 2023

기차역 마을 사람들 2

삶은 계속된다

기차역이 있는 마을에서의 아침은 분주하다.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학교도 가고 출근도 하며 때로는 마을과 가까운 읍내에 장 을 보러 갈 때도, 마을의 보건소나 약국에서 구할 수 없는 약을 타기 위하여 기차를 타기도 하였다.


그 해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와 상관없이 우리 집은 마을 어르신들의 기침 소리로 아침을 열었다.

'아무개 있는가'라는 대문 밖 소리가 들린 후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의 유리문이 드르륵 열리면 역시나 그날도 어김없이 마을  어르신의 손에 들려온 두툼한 서류봉투 가  안방의 이부자리에 누워 잠결인지 꿈결인지의 중간쯤에 있던 나의 눈에 보일 듯 선하게 그려지곤 했다.

그런 다음 마루에 쫙 펼쳐진 온갖 서류들을 이리보고 저리 보며 어르신과 아빠가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이 그 당시에 한창 진행 중이던 특별조치법과 관련된 것 들이었고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아빠는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소도시의 법원으로 출타를 하곤 하셨다.


엄마는 이른 아침 찾아온 첫 손님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진지 드셨어요?' 묻곤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어르신을 기어이 소박한 밥상 한편에 앉히고는 여분의 숟가락 젓가락을 올려놓았다.

우리 집은 기차역에서는 가까웠던 반면 초등학교까지는 도보로 30여분 남짓 되었는데 버스가 다니지 않았던 까닭에 기차로 출퇴근을 하는 선생님들은 언제부터인지 우리 집을 자신들의 자전거 보관소로 이용하였고 그렇게 이른 아침 기차에서 내려 자전거를 가지러 오던 선생님들을 위해 엄마는 또 부리나케 아침밥상을 차리셨다. 

그 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십리 밖에 있던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역시나 우리 학교 출신이었던 언니 때부터 행해졌던 그 밥 한 끼의 대접으로 인해 별 존재감 없이 학교에 다니던 나는 본의 아니게 이미 학교를 졸업한 언니이름을 기억하던 선생님들에 의해 누구누구 의 동생으로 불리며 낯간지럽고도 쑥스러운 유명세를 타기도 하였다.

그렇게 우리 집은 선생님도 마을사람도 때로는 커다란 고무대야를 머리에 이고 생선을 팔러 우리 집을 드나들던 아주머니도 서로서로 부담 없이 밥 한 끼를 먹으면서 그네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그런 집이 되어갔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아침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윗집 순이네도 아랫집 철이네도 모두가 어려웠던 그때, 밥 한 끼의 나눔은 삶의 허기를 채우는 든든한 힘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시골이었지만 제법 여러 동네가 기차역을 중심으로 몰려있었고 주변의 읍이나 소도시로 이동하는 수단이 오로지 기차뿐이었기에 기차역이 있던 우리 마을은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들의 환승마을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시골마을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할 정도로 많은 상가들이 역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집을 거쳐 우체국을 끝으로 밀집되어 있었다.

역 개찰구를 빠져나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간단한 생필품이나 담배 과자등을 파는 구멍가게가 서로 마주 보며 손님을 맞았고 왼편으로 꺾어지는 작은 골목으로 접어들면 미용실(그 옆으로 한참뒤에 다방도 들어왔다)이 있었고 다시 메인 길로 나와서 내 친구네 집이었던 정육점, 이발소, 역시나 내 친구네 집이었던 떡방앗간, 양조장, 마트까지 겸했던 농협, 쌀방앗간, 자전거포, 그리고 우리 집으로 접어드는 골목입구에 있던 보건소를 지나 우체국을 끝으로 비로소 우리 마을이 끝나고 옆마을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규모가 작지 않은 동네이다 보니 툭하면 다투는 어린애들 마냥 크고 작은 이슈들도 참 많았었다.

기차역에서의 인명사고나 마을을 끼고 흐르던 수로가 있던 탓에 간혹 발생하던 익사사고도 마을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고 내기 장기를 두다 투닥거리던 어르신들을 달래주던 기차역 앞 구멍가게의 막걸리 한잔으로는 없던 일이 되지못했던 마을아이의 교통사고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의 파노라마가 그곳엔 있었고 그런 날엔 주체할 수 없이 처연했던 삶의 흥분 앞에 사람들은 시름시름 열병도 앓다가 때로는 무언의 생앞에 솟구치던 절망의 한나절을 보내고 노을 지던 하루해를 뒤로한 채 처마밑에 돌아와 지친 몸을 누이기도 하였다.




다시 찾은 그곳은.

공허함만 남을까 발길을 망설이게 했던 내가 태어난 그곳은.

사람이 더 이상 살지 않는 폐가들로 유령마을처럼 변했을까 불안했던 그곳은.

아니었다.


조용하지만 쓸쓸하지 않았고.

부산하지 않지만 우울하지 않았고.

뛰어노는 아이들은 없었지만 골목마다 생기가 있었고.

우리 가족이 없어 슬플 것 같던 나의 옛집엔 다른 이의 온기로 행복해있었다.


고향은 그런 곳이리라.

내가 없어도 여전히 나의 과거와 현재를 끌어안은 채 나의 존재를 결코 가볍게 느끼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 주는 곳이리라.

나는 그곳에서 주마등처럼 흘렀던 망각의 시간을 반추하며 나의 지금은 먼 훗날 또다시 나를 과거로 이끌게 될 순간의 시작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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