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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Nov 19. 2023

우리가 주최한 콜라보 행사

행사가 별건가요?

포트에 따뜻하게 데운 구기자 차 한잔이 든 컵을 한 손에 든 채 거실에 서서 어느새 깜깜 해진 거리에 탐스럽게 내리는 첫눈을 연신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남편과 나는 첫눈이 오는 날 행하는 둘만의 특별한 첫눈 행사가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행사라 함은 거창한 명목아래 때로는 요란하고 정신없지만 별로 특별하달 것 없이  치러지는 게 보통이지만 큰돈이나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큰 성과를 이루어내는 소소하지만 이외의 결과를 도출해 내는 강력한 임팩트가 있는 2인이 벌이는 행사도 있는 법이다.


2017년에 우리가 거주했던 동네의 집 근처 큰길사거리 코너에는 제법 큰 SS편의점이 하나 있었다.

평수가 넓은 까닭인지 물건들도 찾기 쉽게 종류대로 정돈이 잘 되어있고 거리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유리창이 차도 쪽으로 있었기에 지나는 차들이나 인도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유리창 옆으로 테이블과 의자 4세트가 나란히 놓여있었고 그 자리는 가끔씩 근처 학원생들의 수다 떠는 고정석이 되기도 하였지만 출입문 밖의 데크 위에도 나무 테이블이 있던 터라 아이들은 더운 날은 시원한 탄산음료 한잔을 마시다가 서로서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영하의 추위로 바닥에 고인 물이 얼어버린 추운 날에도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크록스를 신은 다리를 유난스럽게 떨어대며 여간해서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던 탓에 내부의 테이블은 공석으로 편의점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거주지 인근 대부분의 편의점이 그렇듯 그곳도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었기에 가끔은 그곳을 지나는 학생들이나 직장인들 주변아파트 주민들의 출퇴근길 참새방앗간이 되어주기도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평소 편의점에 갈 일이 거의 없던 나와 남편은 가끔 얻게 되는 편의점 쿠폰을 사용하기 위해 그곳에 가곤 하였는데 기대 없이 갔던 그곳에서 작은 재미를 쏠쏠하게 느끼기 시작했던 것도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1인가구가 늘어나는 추세에 맞게 아기자기 구색 맞춰 정렬되어 있는 생활용품이나 귀여움 가득한 소품처럼 여겨지는 잡화들과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초콜릿, 사탕, 에너지바, 쿠키 등은 곁눈질로 슬쩍 지나치던 나의 눈길을 어느 순간 사로잡으며 구경꾼의 자세에서 참여하는 사람의 자세로 탈바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가끔은 1 플러스 1 하는 컵라면이나 내가 좋아하는 카푸치노, 캐러멜마끼아또, 카페모카, 프렌치바닐라라테 등의 봉지커피를 사러 가는 '꺼리'를 일부러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일반종이컵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컵에 그날 입맛에 당기는 커피를 선택하여 봉지의 윗부분을 가지런히 뜯어내고(가지런히 뜯어지면 기분이 좋다) 커피가루를 쏟아낸다음 뜨거운 물을 쪼르르 따르면 물을 부음과 동시에 달달한 커피 향이 편의점 가득 퍼진다.

요즘은 봉지커피를 파는 편의점이 거의 없어 그나마 재고가 있는 편의점에서 겨우 몇 개 구입할 정도로 구매가 어려워졌는데 언젠가 드라이브길에 우연히 들렀던 시골 편의점에서 그 봉지 커피를 만나고 그곳에 있던 커피의 종류를 다 챙겨서 들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프림이 빠진 아메리카노가 대세인 시대에 나는 겉포장지마저 예쁘게 알록달록한 그 커피를 오랫동안 내 사물함에 넣어놓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꿀꿀하거나 쓸쓸하거나 하여 날씨와 마음의 변화가 유독 크게 느껴지던 그 겨울에 수시로 홀짝대며 따듯한 위로를 받곤 했다.

또 가끔은 나와 같은 증세를 보이는 직장동료에게도 그 봉지커피를 처방해 주면서 은밀한 내면의 대화를 나누다가 정신도 뱃살도 함께 살찌우는 일거양득의 이익을 얻기도 하였다.




그 편의점 출입문 바로 앞에는 횡단보도가 있어서 반대편 상가들을 이용하거나 그쪽 편에 거주하는 아파트 주민, 원룸촌사람들, 하여간 많은 사람들이 건너 다녔고 그들 틈에 끼어서 나와 남편도 하루가 멀다 하고 그 거리들을 활보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김없이 불이 환하게 켜진 그 편의점을 보면서 추위에 종종 대던 걸음을 나도 모르게 한 템포 늦추고 그곳에 눈길을 주곤 했다.

함박눈이 첫눈으로 펑펑 쏟아져 내리던 어느 날 우리는 갑자기 컵라면이 먹고 싶어 져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그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Big뚜껑 2 플러스 1 짜리 컵라면 3개와 삼각김밥을 사서 차도가 보이는 유리창옆 그 테이블에 앉아 뜨거운 물을 부은 컵라면을 앞에 두고 3분을 기다렸다.

맞은편 코너에 있던 파리바께쓰 유리창에 매달린 꼬마전구들은 서로서로 애교를 떨듯 깜빡거렸고 속도를 크게 내지 못한 채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굵은 눈송이들이 앞다퉈 부딪히고 어깨를 감싸 안은채 길을 걷는 연인들의 머리 위로도 눈은 쉴 새 없이 내려 안고 있었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눈으로 인해 분주한 사람들, 미소를 띠며 웃는 사람들, 괜스레 시끄러운 사람들, 그렇게 모두들 유쾌한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호빵기계에서 올라오는 하얀 김처럼 내 마음 한편에도 뽀얀 김이 스멀스멀 서려졌다.

그날의 한 장면 장면들이 너무나도 푸근해서 나와 남편은 첫눈 오는 날은 무조건 이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자고 중대결정을 내렸다.


코로나로 인해 잠깐 강제휴지기를 가졌던 몇 년이 흘러 다시 이전의 일상을 되찾은 올해.

남편이 외출한 틈을 타 이곳에 첫눈이 내리고 있다.

어느새 눈이 그쳐버리지 않기를 내가 고대하듯 분명 남편도 첫눈과 컵라면의 1 플러스 1 우리만의 콜라보 행사를 기대하며 귀갓길을 재촉하고 있을 것이다.


                                  2023년 11월 17일 금요일 첫눈 내린 다음날 근교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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