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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Dec 23. 2023

나답게 살고 있는가?

평화주의자를 지향하다.

나는 나답게 살고 있는가? 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청춘이었을 때의 나는 남 눈치를 보느라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끙끙댄 적은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탓을 듣는 게 싫어서 뭐든 더 열심히 하려고 했었다.

때로는 알량한 자존심을 다치지 않으려 속으론 이미 상처받고 겉으로 안 그런 척 강함을 가장 한 적도 많았다.

그때는 그런 단단함이 나를 세워주고 지탱시켜 준다고 믿었으니까.

그렇게 가끔은 뾰족하게 날을 세워야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나이가 들고 보니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고 그 마음을 털어내는 것 또한 내 나이의 숫자만큼 더디게 털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상처받는 것이 싫어서 '나는 아무렇지 않다' 스스로를 세뇌시키면서 살았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감정적으로 타인과의 불편한 관계 속에 얽히는 것이 힘들어서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애써 감춰둔 채 정직하지 못한 '나답게 말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런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아닐까.

모든 인생사가 그러하듯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정답은 없기에 그런 나의 소통방법이 잘못됐다고, 나를 낮아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좋은 게 좋은 거지'가 '좋은 게 잘못이지'라고 후회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작은 이슈가 있었다.

그런 생각의 테두리에서 나온 나의 행동이나 표현들이 모두를 배려하는 것은 아니고 나의 생각과 다른 범위 안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소통이 아닌 불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사람 저 사람 모두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는 능력 따윈 내게 없는 걸 알지만 그 역할을 하기 위해 무던 애를 쓴 적도 있었다. 

나의 멘틀을 한 번쯤 점검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타인의 기분을 맞추려 애쓸 필요는 없고 나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에게 굳이 내가 친절을 베풀 필요도 없을 것이며 나 때문이 아니라면 상대방의 기분이 나빠졌다고 해서 내가 그 감정을 풀어주려고 부단히 노력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사이의 불편한 감정이나 어떤 상황들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약해지거나 소멸되거나 하기마련이다.

마음이 급하거나 약한 사람은 그 며칠의 순간을 견디기 힘들어 자신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따로 매고 허우적거리다가 결국은 혼자 지치게 된다.




내가 아는 J는 자기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남들 사는 일에 관심 없기가 갑 인 사람이다.

나는 처음에는 J가 내면이 강하고 모진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J 또한 한없이 여리고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었다.

그런 자신의 성향을 알기에 타인 앞에 나서는 것도 섞이는 것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J 도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살면서 사람에게 겪은 큰일 작은 일을 생각해 보면 왜 J가 타인과의 관계에 배척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그런 반면 남들일에 사사건건 관여하고 속에 있는 말 다 퍼붓고 되돌아서면 잊어버리는 E  같은 사람도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정신적 멘틀을 한껏 끌어올린 채 고군분투하여야 한다.

나처럼 속에 있는 말 다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어디서 날아들지 모르는 돌멩이를 피하기 위해 수시로 내 마음을 내 육체를 철갑으로 무장한 갑옷으로 둘러싸고 지낸다는 것을 E 같은 사람들이 부디 알아줬으면 한다.

그렇게 철저하게 무장한 갑옷에 잠깐 한눈판 사이 어디 한 곳이라도 구멍이 뚫리게 되면 그날 하루는 긴 가뭄 끝에 쫙 쫙 갈라져 말라버린 저수지의 바닥처럼 변해버린 내 감정에 한 방울의 물을 적실 힘도 없어진다.

내가 어렸을 때 왜 아빠는 엄격하게 우리를 통제하시고 착하게 자라기만 바라셨을까?

그래서 내가 나도 모르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지닌 채 성장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의 차이로 작은 오해가 생겼던 오늘,

나는 또 내 생각을 말하고 상대방의 오해를 풀려고 노력했고 그로 인해 조금은 낮아진 것 같은 자존감에 나 스스로를 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랬던 나를 '나답다'라고 말해주는 또 다른 타인이 있어 나는 이런 내 마음을 저울질하다가도 결국엔 저울의 추 가 더 무겁게 내려가는 '나 다운 나'의 편에 서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는 동안 상처받고 추스르고 의 반복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런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기에 나를 나답게 살아가게 만드는 것 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라는 시 한 편으로 오늘의 내 마음을 응용해 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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