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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Jan 01. 2024

나나씨와 재봉틀

삶이 기억하는....

미로처럼 이어진 좁은 골목길 한쪽에 나나 씨의 허름한 가게가 있다.

뜨거운 여름 햇살아래 동네 어귀 어디서나 보인다는 흔하디 흔한 강아지 한 마리도 지나다니지 않는 그 골목에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만이 그곳에도 사람이 있다고 인기척을 낼 뿐이다.

이른 오전부터 불같이 달아오른 아스팔트의 열기에 일찍부터 사람들은 그늘자리를 만들어 피해버렸는지 그 동네에는 나나씨의 가게만이 피어오른 아지랑이 속에 흐릿하게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페인트 칠이 벗겨진 단층건물 시멘트벽에 총 4칸짜리 미닫이 새시문은 레일에 낀 먼지들로 인해 금방이라도 여닫히기를 멈출 것처럼 보이고 여기저기 날리는 옷감의 먼지들은 뿌연 먼지를 들숨날숨으로 내뿜으며 허공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

쨍한 여름밖의  빛과는 상반되게 어두컴컴한 에어컨도 틀지 않은 실내에서는 환풍기 하나와 역시나 그 밑으로 매달려있는 선풍기 한대가 습하고도 끈적끈적한 가게 안의 온도를 조금이라도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다 늘어지고 구멍마저 숭숭 뚫린 반소매 얇은 메리야스를 입고 헐렁한 반바지를 대충 입은 나나씨는 그 안에서 하루종일 재봉틀을 돌린다.

내복을 만드는 업체에서 일감을 받고 일을 하기 때문에 납품 날짜를 맞추는 것이 중요한 만큼 김치 한 종발에 물을 말아먹어 때우는 간단한 점심과 믹스커피 한잔을 마시는 시간 외에는 따로 여유시간이 없을 정도이다.

한참 경기가 좋을 때는 일손이 부족하여 잠깐 아르바이트라도 구해볼까 하였지만 여간 깐깐하지 않은 나나씨는 곁에 사람을 두는 것도 큰 맘을 먹어야 하기에 몸은 힘들지만 마음이라도 편한, 차라리 혼자서 하루종일 재봉틀 돌리는 편을 택한다.




'까다로운 사람'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은 나나씨를 그렇게 한마디로 압축시켜 표현한다.

그 까다로운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나름의 너그러움을 남들에게 내색하지 못한 채 나나씨는 그렇게 정의되어 갔다.

먹고살기가 바빠서 돈 버는 일이 제일 큰 낙이어서 그 외에 것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은 탓에 그나마 옆에 있던 가족들과도 소통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그녀.

나나씨가 돈을 버는 이유는 자신의 삶을 더 충만하게 가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공유할 수 없는 가족들의 삶 속에 돈으로나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실제로 나나씨가 병이 들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타게 됐던 모든 보험금은 두 아이들과 남편에게 고스란히 분배시켰다.

나나씨는 행복했다.

그 돈으로 큰 아이의 차를 바꿔줄 수 있고 손주에게 맛있는 과자를 사 먹일 수 있어서.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된 작은아이의 집값에 자신의 보험금을 보태줄 수 있어서.

그럼에도 주변사람들에게는 인색했던 나나씨의 곁에는 일부 마음 착한 몇 사람만이 그녀의 고통을 함께 느껴주고 얼마 남지 않은 삶 속에서의 여운을 남겨주기 위해 애를 썼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몸서리치게 찬 마음을 무엇으로도 덥힐 수가 없던 어느 새벽 '살고 싶다'는 괴성과도 같은 울부짖음은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잔해들처럼 갈기갈기 흐트러져 깜깜한 우주 속을 한없이 떠돌다가 그동안 참아왔던 비통스런 눈물에 스러져 쉽사리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삶의 애환 따윈 상관없이 하얀 눈이 탐스럽게 내리던 날 나나씨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가족들의 계좌에 남은 돈을 보내고는 자신의 이생에서의 할 일은 모두 마무리되었다는 듯 편안한 눈을 감았다.

더 이상은 돈을 벌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남은 가족들의 삶을 책임지려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눈이 내리던 날 하얀 바람과 함께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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