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아는 햇살이 좋았다. 파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좋았다. 바닷가에서 시원하게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파도를 보는 것도 좋아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을 느낄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없다니. 그냥 흘러가는 게 시간인데.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이었다. 23살 대학생인 그녀에게는 다른 또래들만큼 자유로운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궁금했다.
집을 나서면 많은 사람을 상대하면서 살고 있지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은 부족했다. 매일 그저 지나가는 하루처럼 살고 있다고 느꼈다.
'나도 아직 20대인데 이렇게 살아도 될까? 20대가 가장 젊고 예쁜 나이라던데. 그게 내 모습과 관련이나 있을까 모르겠다.'
간호학과 학생인 민아는 졸업을 위해 필수적인 병원 실습을 다니고 있었다. 제시간에 실습 병원에 도착하려면 새벽 첫 차를 타도 시간이 빠듯했다. 아침에 시작한 실습이 오후에 끝나고 나면 아르바이트를 가거나 영어 학원을 다녔다. 그리고 실습 과제나 학교 과제를 하다 보면 밤이 찾아왔다.
같은 과 친구들 외에는 친구를 만나기도 어려웠다. 아르바이트를 가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이도 다르고 친구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아직 어둑어둑한 이른 아침 집을 나서서 깜깜해진 저녁에 집으로 향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런 그녀에게도 좋아하는 일이 있었다. 동네 북카페에 들러서 조용한 분위기에서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는 것. 이 북카페에서는 인심 좋은 사장님이 직접 내린 커피와 식빵으로 만든 토스트를 무제한 제공해 주었다. 학기가 시작하고 바빠진 후로는 좀처럼 가기 어려웠지만 가끔이나마 평온함을 되찾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지만 잘 사는 건 어떤 걸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멍하니 생각에 빠져 들었다. 20대라고 특별한 일만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나만 빼고 다들 특별하게 잘하는 일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았다. 잘하는 일이 아니면 좋아하는 일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주인아저씨의 커피 내리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 민아는 천천히 노트북을 꺼내고 인터넷 창을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