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냐 미국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by Adela

남편을 만나기 전 이야기이다. 나는 당시 미국 유학생이었다. 부푼 꿈을 안고 미국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 몇 년 더 있으면서 졸업 후 취업도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 세계에 영향을 준 코로나 19가 나타났다.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한국보다 마스크 착용이나 거리두기 정책 시행은 비교적 느렸다. 그러는 사이 바이러스는 일파만파 퍼져 나가 주위 친구들은 학교를 휴학하고서라도 동네를 떠나기 시작했다. 미국인인 친구들은 비행기를 웃돈을 주고 구해서라도 고향으로 돌아갔다. 가족들이 긴 시간 운전을 해 다른 지역에서 찾아와 최소한의 짐만 싸서 돌아간 아이들도 있다. 해외에서 유학을 온 사람들도 비행기표를 구해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렌트하고 있던 방을 버려두고 떠난 사람들도 많았다.


나도 고민이 깊어졌다. 정답은 없는 문제였다.


그래도 조금 버텨보면서 미국에 남아야 할까.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코로나 19가 퍼지기 시작한 건 3월경이었고 나는 5월에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나마 졸업은 온라인으로 행사를 하며 치르게 되었고 무사히 졸업을 해서 다행이었다.




만약 미국에 남는다면 어떻게 지내야 할까. 미국 학생들은 졸업 후 1년 정도 미국에서 일을 할 수 있는 OPT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일을 하면서 그다음 일자리를 구한다면 1년 이후의 비자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5월이면 집 계약도 끝나기는 하지만 다들 집을 버려두고 떠나는 마당에 새로운 집을 찾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또 졸업 후에는 학교에 묶인 몸은 아니기에 원래 살던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하거나 정 어려우면 졸업한 대학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가능은 해 보였다. 또 점점 인턴십이나 일을 온라인 재택근무 방식으로 하는 취업 자리도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을 하다 보니 서로 걱정이 늘었다. 잘 지내고 있는 걸까 걱정스러웠다. 한국은 미국보다는 마스크 수급이 잘 되어 보였지만 약국에서 긴 줄을 설만큼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어딘들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살아가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한국에 돌아가서 취업을 한다면 가능은 할 것이지만 몇 달은 놀게 될 수도 있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당시에는 경력이 비게 되는 것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기에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 미국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아 졌다. 중국에서 바이러스가 시작되었다는 말이 돌면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길거리 등에서 무차별 폭력 사건들이 벌어졌다. 밖으로 나가기도 조심스럽고 무서운 상황이었다. 주변에 알던 미국 사람들은 가족이 코로나로 세상을 떠나 장례식이 잦아졌다.


그러는 사이 국가 간 감염 차단을 위해 미국 국내 및 국제 여행이 제한되기 시작했다. 한 번씩 사이트에 들어가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는 매진이 되어 있기 일쑤였고 가격도 평소보다 많이 비쌌다. 한국의 감염 상황이 좋지 않아 지면서 미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표가 막힐 수도 있다는 말도 돌았다. 이제는 진짜 선택을 해야 했다.


오늘은 고민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던 날이 떠오른다. 해가 질 무렵 어둑어둑해져 가는 방 안에서 침대에 앉아 하염없이 고민을 했다. 그러다 엄마와 통화를 했다. 조금만 참으며 남아 있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하며 몇 달을 지내고 있었는데 무언가 툭 터진 듯 고향이 너무나 그리웠다. 사람들도 잘 만나지 못하는 이 어둠 속에서 몇 달일지, 몇 년 일지 모를 팬데믹 기간을 견딜 자신이 없어졌다. 한국에서도 기회를 찾아보고 그 후에도 유학길을 정 다시 택하고 싶다면 그때 준비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한국행을 택했다. 비행기표를 겨우겨우 구할 수 있었다. 이때 미국에 남았다면 남편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오고 몇 달 후에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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