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질문의 편지> 프로젝트 - 8월의 편지
내가 기억하는 한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내 삶을 기록해 왔다. 말을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카세트를 켜고 녹음을 했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그 시절 테이프를 켜면 세 살 아기 목소리로 그때의 내 삶을 들을 수 있다. 초등학교 땐 친구들과 드라마나 뉴스 대본을 쓰고 그걸로 연기도 하고 뉴스도 진행했다. 물론 이때도 난 녹음을 잊지 않았다. 이것 역시 카세트테이프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삐삐, 사서함 안내 멘트에 나갈 인사말이나 음원을 직접 제작해 늘 기록해 두었고, 가까운 친구들과는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내 삶을 기록하고 공유했다. 중학교 때부터 한 해도 쉬지 않고 일기장을 썼고, 스무 살에 처음 만든 내 개인 홈페이지에는 20대의 삶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이후 블로그나 에스엔에스 채널이 생겨난 이후부터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그때그때의 삶을 기록해 두었다. 돌아보니 내 인생은 단 한 번도 기록을 멈췄던 해가 없었다.
세월이 흘러 여기저기 쌓인 나의 오프라인, 온라인 기록들의 양은 방대해졌다. 나는 작년부터 이걸 다시 차곡차곡 정리 중이다. 남길 건 남기고, 버릴 건 버린다. 이 원칙 하에 내게 여전히 의미 있는 기록을 선별한다. 오프라인 기록은 파일링 해서 언제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정리했고, 수십 년간 디카와 폰카로 찍어온 사진들은 한 외장 하드에 넣어 폴더 별로 정리해 두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아무도 시키지도 않았고 꼭 해야 하는 일도 아닌데, 나는 왜 이걸 계속하고 있는가. 나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것. 이것은 내게 무슨 의미가 있길래 이 긴 세월에 걸쳐 계속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거야말로 내가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묻고 싶어졌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다들 일상 속에서 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이다. - 홍지
(질문)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닌데 스스로 해야 할 것 같아서 거의 매일 하고 있는 행동이 있는가? 누군가 당신에게 시키지 않았고, 당장 그 일을 멈춰도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일. 설령 당신이 내일부터 죽을 때까지 그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일. 그냥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늘 해오던 일. 만약 당신의 일상에 이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이 행위를 언제 처음 시작했는가? 당신은 보통 이 행위를 하는 데 얼마의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가? 또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이 일을 하는 것에 있어 어느 정도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 홍지
(답변)
나의 경우 거의 매일 글을 끄적이는 일을 하고 있다. 이거야말로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도 어릴 때는 종이 다이어리를 썼고, 옛날 싸이월드 시절에도, 페이스북이 유행하던 때에도 일기처럼 사진과 함께 글을 남겼다. 인스타그램에는 사진 위주로 올리는 플랫폼이라 초반에만 긴 글을 남기고 점점 메모 수준으로 남기기는 했다. 그 후로는 블로그를 썼고 작년에 브런치 스토리 작가에 합격한 후에는 신나는 마음에 브런치에 글을 자주 썼다.
그래서 이 질문에 답을 하자면 자주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남기는 것이 요즘 내가 자주 하는 행동일 것이다. 처음에는 재밌게 내 일에 대해, 여행의 추억 등에 대해 썼다. 그런데 매주 연재를 하게 되며 매주 정해진 날에 글을 내어 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글쓰기에 정체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시기도 지나고 나니 나에게 브런치 글 쓰기가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스며들었다고 할 수 있다. 라이킷을 눌러주는 분들께 물론 감사하지만 이제는 그 좋아요 개수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렇게 글을 자주 쓰게 된 것이 내 일과 아예 상관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그동안 취미로 글쓰기를 하기도 했지만 일적으로 나에게는 멈춤 없는 글쓰기와 일정 수준 이상의 글쓰기 실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처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대학원을 다니고 논문을 쓰면서였는데, 글을 쓰는 실력을 올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현실적으로 기한 내에 보고서를 쓰거나 논문을 써내야 하는 상황들도 거쳤다. 단순 공부 때문만은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면서 기한을 지켜야 하는 상황을 겪었다. 그러면서 마감 기한을 지키면서도 퀄리티가 많이 떨어지지 않게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여러 글을 많이 써봐야 늘 거라는 생각에 자주 쓰게 되기 시작한 것 같다.
브런치를 하면서부터는 내 일과 관련된 ’업세이‘도 물론 썼지만 논문과 같은 다소 딱딱한 글만 쓰지는 않았다. 말랑말랑한 여행 에세이나 내 생각을 적은 글도 많이 썼다. 시와 소설 쓰기도 도전해 보았다. 예전보다는 그런 다양한 글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내 생각과 경험을 글로 내어놓기 부끄러웠던 모습은 많이 없어져서 그런 면에서 나에게 꽤 큰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특출 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재밌게 계속 쓰고 싶다. - 콩이
2024년 <질문의 편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매달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프로젝트입니다. 8월의 편지 질문과 저의 답변을 공유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