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서 근무하는 제가 최근에 재밌게 읽은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작가의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입니다. 모지스 작가는 '모지스 할머니 (Grandma Moses)' 로 불리며 미국 전역에서 사랑받아온 화가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화가로서의 인생은 노년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그 인생사가 놀랍기도 하고 인상 깊었습니다. 노년기에도 창조성을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모지스는 1860년에 태어나 시골에서 가정부 생활을 하다가 남편을 만나 열 명의 자녀를 낳았다고 합니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이라 다섯 명의 자녀를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조금은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그녀는 그림을 배워본 적은 없습니다.
▲ 모지스의 생전 그림과 활동을 다룬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사진출처: http://www.weinerelementary.org/moses.html )
ⓒ weinerelementary
자수를 좋아하던 그녀는 70대 후반이 되어서 관절염 때문에 바늘을 사용하기 어려워졌을 때 처음으로 붓으로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이후 10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며 1,000점이 넘는 그림을 부지런히 그렸습니다.
그런 그녀의 그림은 한 수집가의 눈에 띄게 되고, 이후 언론에도 보도되며 점점 화가로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그녀는 80세에 개인전을 열었고 93세에는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으며 100세 생일은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되기도 합니다.
모지스 할머니의 글은 소박하고도 부지런하게 지내는 농가에서의 일상을 그려냅니다. 아주 어릴 때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과 있었던 추억 이야기를 그 당시의 천진한 시각으로 그려주기도 합니다.
형제들을 어릴 때 홍역 등 병으로 떠나보내던 때의 이야기도 담담하게 풀어놓습니다. 또 친했던 부부의 집에 가정부로 들어가서 살던 시기의 일상, 결혼 후의 이야기 등 살아가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들려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 모지스가 그린 그림 중 ' Taking in the Laundry '. (사진출처: http://www.weinerelementary.org/moses.html )
ⓒ Grandma Moses
그녀의 그림과 함께 풀어놓은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아기자기한 그림책을 보는 느낌도 듭니다. 마을 사람들과 단풍나무 수액으로 시럽을 만들던 어릴 때의 추억 이야기와 그림을 함께 보면, 직접 보지 않았어도 그 당시 풍경이 머리에 생생히 그려지는 듯합니다.
말굽 박기나 우물가의 모습, 썰매 타기, 폭풍우가 오던 날 등 소박하고도 재미난 농장의 다양한 모습과 그 당시 일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림들은 역사적 기록으로 가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1950년대 미국의 농장 마을에서는 이런 생활을 했구나 싶어 신기하고 재밌기도 했습니다.
그림 속 사연도 의미가 있지만, 그림 자체도 요즘 말하는 굿즈로 만들어져도 좋겠다 싶을 만큼 알록달록 예쁘기도 합니다. 실제로 나중에 그녀의 그림들은 상업적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큰 인기를 얻기도 한 반면, 일부 평론가들은 그런 부분을 비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책에도 나오듯 대통령의 초청을 받기도 하고 전 세계에 팬이 생기며 유명해졌어도, 모지스 할머니는 세간의 평가에 연연하기보다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기며 살아갔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닭을 키웠을 거라고 이야기했다는 그녀는 실제로 그림을 안 그렸더라도 늘 뭔가에 나름의 열정을 가지고 살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요양원에도 바느질과 그림 그리기에 열정을 보이는 남자 어르신이 계십니다. 직접 옷이나 이불을 바느질해서 예쁜 무늬를 넣기도 하고 원하는 모양으로 다듬기도 하십니다.
낮에 무엇을 하는지 이 분을 살짝 살펴 보면, 거의 매번 바느질에 몰두해 계실 때가 많아 볼 때마다 미소 짓게 됩니다. 또, 미술은 주로 여자 어르신들이 좋아한다는 편견을 깨고 미술 프로그램 강사님이 오실 때도 제일 열심히 참여하며 즐거워하십니다.
▲ 제가 근무하고 있는 요양원에도 바느질과 그림 그리기에 열정을 보이는 남자 어르신이 계십니다.(자료사진)
ⓒ nci on Unsplash
다른 어르신 중에는 치매가 있으시지만 노래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어 하는 분도 있습니다. 거동은 불편하지만 이렇게 예술 활동을 할 때면 누구보다 열정을 보이십니다.
예전에 저는 70대 이후에도 어떤 것에 열정을 가지고 살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또 눈 앞의 현실을 보니, 나이가 들고 몸이 다소 불편해진다고 해서 아예 열정이 없이 사는 것은 또 아니었습니다.
특히 그림과 예술 등 창의력을 발휘하는 분야에서는, 오히려 나이든 어른들의 지혜와 연륜이 더 그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몇 살이든지 간에 계속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고, 그 안에서 작은 행복을 찾아가다 보면 모지스 할머니처럼 노년기에도 열정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의 삶을 돌아보니 하루 일과를 돌아본 것 같은 기분입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마쳤고 내가 이룬 것에 만족합니다.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언제나 그래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 - 책 본문 중
* 최근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기사로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