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나의 피아노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시절 아주 잠깐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한 달 정도였다. 내가 피아노를 좋아한 것도, 어머니께서 피아노를 좋아하신 것도 아니었다. 온종일 친구들과 공을 차거나, 자전거를 타며 밖으로만 나돌던 아들의 외향적 기질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 싶은 어머니의 불순한(?) 의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헤아릴 줄 몰랐던 아들은 피아노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피아노 앞에 한 시간씩이나 앉아 있어야 하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다. 강요에 떠밀려 다니다 보니 학원을 빼먹고 친구들과 놀기도 했고, 피아노 학원을 가서도 악보보다 시계를 더 자주 보았다. 내가 피아노에 관심이 없음을 알게 된 어머니께서는 한 달 만에 그만두는 것을 허락하셨다. (피아노 학원은 그만두었지만, 어머니는 거기서 멈추지 않으셨다. 다시 나를 서예 학원에 보내셨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피아노가 싫었던 건 아니다. 당시 내가 피아노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건 전적으로 친구와 축구의 영향이 컸다. 친구들과 하는 축구는 너무나 재미있는데 반해, 혼자 하는 피아노는 정말 죽을만큼 재미가 없었다. 그런 피아노를 더 재미없게 만든 건 바로 악보였다. 피아노를 치기 위해서는 먼저 악보를 읽어야 했는데, 어린 나에게(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악보는 외국어나 마찬가지였다. 음표가 하나만 달려 있어도 치기 힘든데, 3,4개씩 달려 있는 경우도 있었고, 음표에 따라 어떤 때는 반음을 올려 쳐야 하고, 어떤 때는 반음을 내려쳐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이해하기 어려웠다. 건반을 치면 칠수록 악보에 갇힌 느낌이었다. 음표가 많고 복잡할수록 악보를 읽는 시간은 길어졌고,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시간은 점점 지루해져 갔다. 겨우 읽어낸 한 줄의 기쁨보다는 읽지 못하고 남은 줄을 바라보는 괴로움이 더 컸다.
episode 2. 아내의 피아노
지루함과 괴로움으로 새겨진 피아노에 대한 기억을 리셋하게 된 것은 아내 덕분이다. 결혼할 때 아내는 업라이트 피아노를 중고로 구입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아내는, 피아노를 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지금도 피아노를 치는 아내를 볼 때면 가끔 아내가 연주하는 곡 안에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곡을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에 그렇게 연주할 수 있는 것인지, 그렇게 연주를 해야 곡을 느낄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내는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다시 행복한 초등학교 4학년이 되곤 한다.
아내는 주로 모차르트나 쇼팽 같은 클래식을 좋아한다. 빠르게 변해가는 유행가와 달리 몇백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며, 앞으로도 대중의 그런 관심은 변함없을 거라며 클래식 음악의 대변인이 되기도 했다. 어릴 때 많이 쳤던 곡은 지금도 손이 기억하고 있다며, 베토벤의 발트슈타인을 보란 듯이 연주해 보이기도 했다. 악보에 맞춰 바쁘게 움직이는 손가락들이 빚어내는 소리의 조화가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내가 악보를 읽고, 계이름을 찾고, 계이름에 맞는 건반을 찾고, 그 건반들을 꾹꾹 눌러야 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아내에게는 신기하게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아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피아노를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었다. 22평(실평수 17평)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22평의 공간은 피아노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아내는 결국 피아노를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내는 괜찮다며, 다음에 넓은 집으로 이사가게 되면, 그때 다시 구입하면 된다며 담담히 말했지만, 아내의 속마음은 결코 괜찮지도, 담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episode 3. 다시, 아내의 피아노
다시 피아노를 들이게 된 건, 13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고, 외출 제한이 강제되던 때였다.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자, 피아노를 잊은 채 살던 아내는 다시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는 피아노를 둘 만한 충분한 공간이 있기에, 당장이라도 구입만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아내는 사람에게 저마다의 목소리가 있는 것처럼 피아노도 소리가 다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릴 적부터 들어온 소리, 자신의 귀에 익숙한 소리를 가진 피아노를 찾고 싶어 했다. 우리는 신데렐라가 벗어두고 간 구두의 주인을 찾듯, 피아노 대리점과 백화점, 대형 마트, 그리고 중고 피아노 판매점까지 아내가 원하는 소리의 피아노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심지어 당근마켓에 나온 중고매물까지 확인하러 다녔다. 몇 시간이나 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가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하나 건반을 눌러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고, 소리를 직접 들어봐야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몇 개월을 찾아다녔지만, 아내가 원하는 피아노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야마하에서 나온 고급 사양의 디지털 피아노를 구입했는데, 채 일 년을 쓰지 못하고 중고로 판매했다. 분명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어딘가에 디지털화되어 저장된 소리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포르테에서 피아니시모까지, 아내의 손끝에서 섬세하게 달라져야 하는 소리와 타건감을 담아내기엔 적합하지 않은 피아노였다. 그러다 우연히 피아노 조율과 함께 리빌딩까지 하시는 분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통해 지금의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를 만나게 되었다.
아내가 다시, 피아노를 시작했다. 매일 두 시간씩 시간을 정해 연습을 하고, 주 1회 레슨도 받고 있다. 이제까지는 혼자 집에서 좋아하는 곡을 연습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남들 앞에서 준비된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다. 좋은 선생님께 배울 기회가 있다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찾아가 배우기도 한다. 피아노를 향해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과 모임도 하고 있다. 좋아하는 곡을 연습해 연주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다른 사람의 연주를 직접 듣는 것도 너무나 좋다고 말한다. 모인 사람들과 곡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고, 미처 알지 못했던 작곡가의 삶에 대해 듣다 보면, 곡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진다고 한다. 피아노에 흠뻑 젖어든 아내가 좋다 하니, 나도 참 좋긴 하다. 근데 피아노에 진심인 아내를 보고 있노라면, 가끔 피아노에게 아내를 뺏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가끔씩 아내는 피아노를 연주하다 말고 갑자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라며 다시 들려주곤 한다. 또 특정 부분을 반복해서 연주하며, 그 부분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기도 한다. 음악에 젬병인 내게 아내의 말은 아주 이상하거나 혹은 낯설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런 형체가 없는 피아노 소리에 아내의 설명이 더해지면, 놀랍게도 소리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되어 나타난다. 이를테면 곡의 한 부분을 들려주며, 여기는 저 멀리서부터 물결처럼 밀려오는 종소리와 같다거나, 아주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지난 일을 회상하며 말하는 독백과 같다는 식이다. 물론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아내의 말이 마치 곡 해석의 모범 답안인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이제까지 나에게 피아노는 단순한 악기에 불과했다. 전공자로서 또는 취미생으로서 음악이라는 예술을 지향할 때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악기) 정도라 여겨왔는데, 그런 내 생각이 짧았다. 피아노는 단순한 악기, 그 이상이었다. 가끔 부부 싸움을 하거나, 타인에 대한 실망이나 미움으로 마음을 주체하기 힘든 순간, 그런 아내의 곁을 지키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피아노였다. 피아노는 온몸으로 아내의 아픔을 받아주고 있었고, 아내의 힘든 마음에 자신의 소리로 공감하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아내를 알고 지내온 친구처럼. 그리고 이제는 심리상담사가 되어 아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진심 어린 위로의 소리를 건네고 있었다. 남편인 내가 미처 하지 못하는, 혹은 할 수 없는 것을 피아노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episode 4. 다시, 나의 피아노
아내에게 다시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의 강요에 떠밀려 피아노 학원을 다녔지만, 이번엔 나의 자발적 의사로 시작한 일이다. 갑자기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목표가 생긴 건 아니다. 단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아리아를 좋아하는데, 이 한 곡을 내 손으로 직접 연주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곡을 바로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그럴만한 수준이 되지 못했다. 아내는 체르니 30곡을 교재로, 매일 조금씩 기초부터 익혀보자고 제안했다. 아내의 말을 따라 굳고 서툰 손가락을 다시 건반 위에 올려놓았다. 그 옛날처럼 악보를 읽고, 건반을 찾고, 건반을 누르는 것이 더디고 순차적으로 일어났다. 외국어 같은 악보를 읽는 것은 여전히 괴로웠지만, 다행히 나이가 든 만큼 힘든 것을 견뎌내는 인내력이 커졌다.
한 곡 한 곡 진도가 느리기는 했지만, 한 곡을 완주하고 나면 작은 뿌듯함을 맛보기도 했다. 아내는 빨리 진도를 나가겠다는 생각보다는 한 음 한 음을 소중하게 여기며, 정확하게 치려는 마음을 가지라 했다. 마음은 벌써 골드베르크 아리아에 가 있었지만, 그럴수록 눈앞의 체르니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이렇게 한 곡씩 연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골드베르크 아리아에 가 있을, 그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가 피아노 협주곡 공연을 준비하는 아내를 위해 내가 피아노 반주를 해 줄 수 있는 날도 올 수 있기를, 혼자 욕심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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