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오늘의 감사
주말에 날씨가 좋았다. 아이와 함께 어딘가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라이트하면서도 색다른 진짜 여행 느낌이 나는 게 뭐가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다른 동네에 가서 그곳을 천천히 둘러보고 걷다가, 맛있어 보이는 맛집에 들어가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그 동네 사는 사람처럼 편안하게 산책을 해보기로 했다.
낯선 동네를 걸으며 이것저것을 살펴보고 그 동네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 그곳 사람들의 시선으로 함께 어우러져 천천히 걸으면, 차를 타고 지나칠 때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동네의 진짜 모습을 경험하게 된다.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이런게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해서 가보기로 한 곳은, 얼마전 지하철 8호선이 개통된 남양주 다산동 신도시였다. 다산동은 차를 타고 자주 방문하는 곳이어서 별다른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작정하고 거리를 걸은 적은 없었기에, 아이와 함께하는 뜻깊은 여행이 될 거라 생각했다.
다산동은 신도시여서 거대한 아파트 단지이다. 빽빽한 아파트 단지와 쇼핑 상가가 밀집한 빌딩숲을 가볍게 걸었다. 아파트마다 훌륭한 정원이 갖춰져 있고, 고층 빌딩에는 다양한 매장들이 즐비해 있다. 거리 곳곳에는 초중고 대학생 젊은이들이 많이 보였고, 조부모님과 함께 사는 듯한 가족들, 아기들을 태운 유모차도 많이 보였다.
우리는 동네 사람들이 가는 카페에 들러서 동네 사람들에 둘러싸여 차를 마셨고, 동네 사람들이 가는 떡볶이 가게에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어묵과 오징어튀김을 먹었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마치 우리가 거기 사는 사람인 것 같았다.
우리는 자이 아파트 정원을 산책했는데 마치 우리집에 있는 듯 편안했다. 여중생들이 배구 코트에 모여 배구 경기를 하고, 초등 아이들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아빠들과 함께 팀전 축구를 하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젊은 부부들이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산책을 하고, 애완견 산책을 시키고, 조부모님들이 손주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들. 여느 동네의 여느 아파트와 다를바 없는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 풍경이었다.
요즘 자전거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자전거 주차장을 지날 때마다 자전거를 살펴봤다. 이건 픽시네 이건 트렉스네 이건 MTB네 이건 정말 비싼거네 이러면서 관찰하고 즐거워했다. 낯선 동네에서 낯선 아이들이 재밌게 노는 모습을 본 아이는 갑자기 동네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다며 빨리 친구들한테 가고 싶다면서 이쯤에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사실 나는 궁금했다. 아이가 낯선 동네에 가면 어떤 포인트에서 낯선 느낌을 가지게 될까. 그런데 이번에 그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사람이었다. 알프스 산과 할아버지와 피터가 너무 그리워 몽유병까지 생겼던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떠올랐다. 아이는 동네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크게 느꼈고, 살면서 그 경험이 두고두고 떠오를 것이다. 그날 저녁 우연히 '금성 목욕탕' 이라는 제목의 라디오 극장을 들었는데 거기서도 낯선 동네와 정든 동네의 기준이 동네 사람들과의 친분이었다. 아이 역시 오늘 그 느낌을 강하게 느낀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동네에 친분있게 지내는 분이 없어서인지 그런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도리어 수입 구조를 업그레이드해서 이 동네에 이사 오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이런저런 구상을 하느라 머리가 그쪽으로 움직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뜻밖에도 우리 각자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게 된 것 같다. 이것이 이번 지하철 여행을 통해 알게 된 묘미였다. 지하철 여행 그거 별거 있을까 싶었는데, 아이와 함께 한 좋은 추억이었고 의미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리 동네로 돌아오는 내내 아이는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신이 났는지, 보이는 간판 이름을 가사 삼아 얼렁뚱땅 즉석 랩을 쉼없이 불러댔고, 집에 도착해서는 자전거를 가지고 동네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부모로서 부족한 게 너무 많아 넉넉히 해주지 못해서, 그래서 오늘도 멋진 진짜 여행 대신 지하철 여행을 갔던 것이다. 동네에 정 붙이고 즐겁고 천진난만하게 건강하게 자라주는 아이에게 이런 정도 밖에 못 해줘서 늘 미안하고 고맙다. 주어진 사소한 모든 것에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