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잃고 중심을 잡다.

by Cecil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7년 전의 일이다.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바뀔 무렵 급성 인후염 진단을 받고 열흘을 고열에 시달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가수도 아니고 강사도 아닌데 성대부종이 심각하고 결절도 매우 심해서 고농도 스테로이드 처방을 받으며 결국 한달 집에서 강제 요양을 하게 되었다. 전화가 와도 받을 수가 없었고 아이나 남편에게 무슨 부탁을 하려해도 말이 안되니 집에서도 카톡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웃픈 추억이지만 그 때는 정말 망망대해에 나 혼자 무인도에 갇힌 적막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이대로 목소리가 안나오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다행히도 한달즈음 지나고 나니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고 아주 조금씩 호전되어 1년간의 치료 끝에 예전 목소리로 회복될 수 있었다. 목소리를 회복하는데 1년이 걸렸지만 목소리만큼이나 반드시 회복해야 했던 것, 바로 자신감이다. 워킹맘으로 외동 아들을 키우며 일과 육아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완벽하게 잡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은 가혹한 육체적 노동의 결과로 얻게 된 질병으로 완벽하게 추락하는 중이었다.

인후염에 걸리기 직전까지 하루를 분단위로 쪼개 놓고 매일을 전투적으로 살았었다. 정보에 둔감한 워킹맘이 되지 않으려고 일부러 엄마들 모임에서 총무역할을 하며 궂은 일을 맡아 열심히 참석하고 각종 행사에도 모범적으로 참석했었다. 물론 업무 능력 향상을 위해 일터에서는 엄청난 기세로 일에 몰두하며 '할 수 있다!'를 백번 외치며 원더우먼처럼 살았다. 폭주 기관차처럼 질주하던 나에게 급제동이 걸리고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하루 하루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방황을 잡아야 겠다고 생각했던 순간 책장에 먼지가 쌓인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쁘고 정신없던 일상에 밀려 다음으로 미뤄진 새 책들이었다. 간만에 서점에 갔다가 꼭 읽어보리라 다짐하고 사왔던 책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책들을 꺼내 들고 '이거나' 읽고 있자고 체념하듯 책상에 앉았다. 만약에 내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아침 나절 내내 책에 빠져들 수 있었을까? 휴가라고 집에 있었어도 끊임없이 업무 전화로 공사다망했을 것이다. 강제 음소거가 되어 버린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친구 삼는 것이 전부였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빅터 프랭클'죽음의 수용소에서' 中-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며 이 구절에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삶을 살고 있었는가? 일은 왜 하려고 하며 삶을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인가? 현실에 치여 앞만 보고 달리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진 순간 성공자들이 다 읽는다기에 사놓고는 차일피일 미뤘던 책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너의 삶을 살고 있는가?

돌이켜 보니 열심은 있었으나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달리고 있었는지는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강제 음소거 중에 나를 마주하니 삶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삶의 중심이 완전히 뽑혀나간 상태의 바쁨은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삶,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해야하는 일들을 잘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을 갖는데 강제 음소거는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위험하다. 그러나 무엇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니체'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中-

어려우니까 시작도 안했던 니체의 책. 짜라투스투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욕심이 생겨서 결제하고는 책꽂이에 꽂혀 있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 나온 이 구절을 보며 소진되어 재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지난 순간을 떠올렸다. 나에게 자양분을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확보하는 시도, 주변과 잠시 단절하고 나를 들여다보고 스스로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는 시간에 대한 시도를 하기로 용기를 내게 되었다. 아무리 바빠도 책을 읽고 정리하고 나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계속 해주는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했고 장거리 출장을 일부러 만들어 KTX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 그 용기가 누적되고 쌓여서 왠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내가되었으니 그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 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니체'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中-


목소리를 잠시 잃었던 직전까지 상처 받은 줄도 모르도 아플 시간도 없이 그렇게 살았었다. 대학 때 읽었던 짜라투스트라에서 너무나 인상깊어 여기저기 적어두었던 좌우명같은 이 문장도 아이를 낳고 일을 하면서 현실에 찌들어 완벽하게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적막강산에 눈을 감고 10여년을 돌이켜보니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시간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세상에 완벽한 인생이 어디 있겠냐마는 적어도 힘들 때, 아플 때는 그 때 바로 치료를 하고 일어나야 훗날에 큰 일을 면할 수 있는 법. 그걸 모르고 안 아픈 척, 안 힘든 척, 쿨한 척 하다가 결국 주저 앉아 버린 시간들이 떠올랐다. 아프고 다치고 어렵고 좌절하더라도 이제는 나를 위해 당당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고 7년이 흘렀다. 이제 돌이켜 다시 살아도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중심을 잡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가끔씩 삶의 지루함이 몰려올 때 목소리를 잃었던 그 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 세권의 책들을 꺼내고 다시 읽어 본다. 삶이 지루할 수 없다. 중심에 서서 삶을 바라보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자. 생명을 얻은 자의 소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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