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by Cecil

중학교 3학년 시절 교직에 계시던 부친이 일본 한국인 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아 온 가족이 일본에 거주했던 경험이 있다. 서울 한복판에 살던 우리 가족은 교토 외곽에 위치한 녹차의 고장 '우지(宇治)'라는 완전 시골 마을에 거주하게 되었다. 비염과 각종 알레르기로 고생하던 나를 위해 3년 정도 머무는 동안이라도 공기 좋은 시골에 한 번 살아보자는 아버지의 배려였다. 중학교는 교토 시내로 고등학교는 오사카 시내로 다니느라 통학 열차를 타고 1시간이 넘게 등하교를 했지만 방 창문 너머로 보이는 녹차 밭과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은 통학의 피로를 깨끗하게 씻어주곤 했다.

워낙 물 맑고 공기가 좋았던 시골마을이라 여름밤이 되면 반딧불이가 잔뜻 나온다는 개울가에 동네 사람들이 아이들과 마실을 나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근처 주민들의 안내로 가로등도 없는 개울가에 손전등을 꺼놓고 반딧불이를 보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황홀경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잊히지 않는 놀라운 광경이 있다면 하늘을 촘촘하게 매운 별들. 살면서 그렇게 많은 별은 그 날 처음 보았다. '하늘을 수놓는 별들'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온전히 이해했던 경험이었다. 그렇게 넋을 놓고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무슨 이유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별들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순간의 공포가 밀려왔다. 아름다움에 대한 황홀감은 공포로 변하고 아버지 손을 움켜쥐고 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인 채 빨려 들어갈 거 같은 하늘에 시선을 주지 않고 집으로 왔다.

그 날 이후로 '우주'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무서웠다.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듯 답답함이 밀려왔다. 폐소공포증처럼 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면 답답하고 심장이 빨리 뛰는 신체 반응마저 생기기 시작했다. 별, 우주 관련 영화, 책, 그림책마저도 외면했다. 싫어서가 아니라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 때문이었다. 최근에 칼 세이건 '코스모스'가 다시 애독가들 사이에 약간의 유행처럼 번져서 한 번 읽어 볼까 하였으나 우주 공포증이 있는데 '코스모스'가 웬 말인가 싶어 곱게 넣어 두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포털 사이트 도서 관련 코너에서 '50, 우주를 알아야 할 시간'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우주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라는 말에 마음이 끌려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50이 되려면 여러 해를 지나야 하지만 50에는 우주를 이해하고 별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 책장을 펼쳤다. 우주를 사랑하고 별을 사랑한 사람들이 일생을 바쳐 인류에게 별을 이해시키는 각고의 노력을 마주하니 밤하늘 별빛들의 아름다움에 다시 눈길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트라우마'라는 심리 상태는 본인이 만들었다가 또 본인이 풀어내면 그만이라고 한다. 이전까지 아름답다고만 여겼던 밤하늘 별빛들이 순간 공포로 바뀐 트라우마는 별이 만든 게 아니라 그냥 그 순간 스스로가 느꼈던 잠깐의 두려움이었을 뿐이다. 30년 가까이 외면했던 두려움과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마치 무서운 인상에 놀라서 '무서운 사람'이라는 선입견에 갇혀 이해하려 하지 않아 생기는 인간관계처럼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도 순간의 선입견으로 만들어진 벽 저너머의 갇힌 공간이었다.

신비한 것은 세상이 어떠한가 가 아니라 세상이 존재한다는 그 자체이다.

-비트겐슈타인-

별은 그저 거기 있었을 뿐이다. 단 한 번의 두려움으로 단절되었던 관계는 별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통해 회복될 수 있었다. 별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충분한 설명과 별을 볼 수 있는 밤하늘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의 슬픔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우주가 얼마나 신비한 곳인지 아느냐며 장황하게 설명해 주는 어떤 말보다 잔잔하게 마치 친한 사람을 설명해 주듯 친절하게 손 잡게 해주는 책을 만난 행운을 얻었다.

'밤하늘, 별, 우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얼마나 신비롭고 엄청난 사실인지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두려움이라는 허상이 만들어낸 트라우마도 결국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니 스스로가 풀어내면 된다는 것. 풀어내려면 반드시 두려움의 실체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용기가 필요하고 온전히 이해하고 마음으로 화해하면 꼬인 실타래가 풀리고 새로운 관계가 맺어진다.


우연히 만난 책 한 권으로 어릴 적 순간의 공포로 단절되었던 밤하늘 별과 우주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도 어쩌면 이렇게 풀려 나가지는 않을까?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면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한 단절의 관계들이 사실은 정말 단순한 감정의 매듭이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리고 모든 별들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듯 우리의 인생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계속 인지하고 있다면 단순 간의 두려움이나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훗날 어떤 인연이 될지 모르는 관계를 쉽게 단절하지 않을 것이다. 또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계속 자각한다면 지금 이 순간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 지도 중심을 잃지 않고 견지할 수 있다.

책이 주는 놀라운 경험은 참으로 많지만 과학책을 읽으면서 인생을 깨우치고 인간관계를 돌아보게도 하고 인문학 책을 읽으며 과학 기술에 대한 경이로움에 탄복하게도 한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로 다가가기 위해 손에 잡은 책 한 권이 우주로 다가가는 길목을 터주는 역할은 물론, 그동안의 관계와 시간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도 하게 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작은 오해로 관계가 멀어졌다가 다시 만난 별처럼 과거의 작은 오해들로 단절된 경험이나 관계가 부디 별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다시금 가까이 다가와 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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