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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 Aug 22. 2024

결혼식 D-90, 나 홀로 산티아고 순례길

순례길 신부 입장 ep.1

사진 세실
저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도 될까요?


지금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남자친구 동욱에게 말했다. 결혼을 두세달 앞두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홀로 가겠다는 말에 동욱은 적잖이 놀랐다. “음… 일본의 후지산도 있고, 히말라야 등산도 있는데 다른 데는 어때요?” 동욱은 다른 대안책을 찾아보자며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굳이 지금? 하필 거기?’라는 표정과 이해하고 싶은 표정이 복잡하게 섞인 그의 얼굴을 보며 충분히 생각해 보고 편하게 말해달라고 했다.


친동생에게 말하니 모처럼 퇴사하고 길게 쉬는데 공주처럼 편히 쉴 수는 없겠냐고 한다. ‘공주’라는 단어 앞에서 푸하하 웃었다. 예비 형부의 반응도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언니를 신기하고도 애잔한 눈으로 바라보는 내 동생. 그러게, 평소 보지 못했던 전시나 공연을 보러 다니거나 다가올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신부 관리를 해도 괜찮을텐데 말이다. 해외에 가고 싶다면 몸이 덜 고단한 해외여행을 가서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인생 사진도 건지던가.



그런 쉼도 싫지 않다. 다만 그것보다 더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뿐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일. 막연히 마음 속에 품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이 나를 부르는 기분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목소리가 속삭인다. 잘 듣기 위해서 귀를 기울였고, 마음에 대고 귀를 기울일 때마다 같은 말을 듣는다. 때때로 직감은 나를 필요한 곳으로 보낸다고 믿는다. 외부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이 기쁜 방향에 귀 기울여 흘러갈 때 성장했고, 나에게 필요한 곳이자 내가 필요한 곳에 닿았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결혼과 어디인지 모를 새로운 일터로 건너가기 전에 해야할 일 한 가지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진 세실

몇 년 전, 먼저 순례길을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인생길이고 출발은 탄생이며,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 앞에 도착하는 것은 죽음이라고. 그 길 끝에는 어디 있었는지 모를 사람들이 저마다의 길을 걷고 모두 그곳으로 모인다고 했다. 제각기 걸어온 여정이 다 달라도 종착점은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모두 같은데, 그것은 죽고 난 뒤 천국에 모인 사람들로 비유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도 혼자고, 죽을 때도 혼자잖아.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게 된다면 꼭 혼자 가봤으면 좋겠어.”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과연 나도 저기 갈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었다. 언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첫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은 꼭 혼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마침내 온 것이다. 그것도 생각보다 빠르게. 유럽조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지만 없던 용기가 생겼다.


퇴사 후 끊긴 급여

결혼


현실적인 문제를 빈 노트 위에 끄적였다. 지금 다녀오는 것이 미래의 나에게도 나와 함께 할 사람들에게도 도움이라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두어 달 뒤부터는 본격적으로 혼자가 아닌 둘이 되고, 아마도 새로운 곳에 소속되어 신나게 일하게 되겠지? 그전에 혼자 걸으며 인생의 한 꼭지를 깨끗하게 정돈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퇴사한 지금은 무언가 정신없고 정돈되지 않은 기분이었고, 이런 상태에서 다음 스텝을 결정하기는 싫었다. 깨끗한 상태에서의 선택은 옆에 있는 짝꿍에게도 새 일터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혼자 걸어온 30여 년 간의 삶을 돌아보고, 다음 스텝에 대해 고민하며, 자기 자신과 깊이 대화하는 일은 누가 도와줄 수 없는 일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굳이 지금 가야 했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서 걷기만큼 좋은 행동이 없다는 생각의 끝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었다. 인생길로 비유된다고 하니 길을 걸으며 작은 인생의 한 사이클을 미리 경험해 보면 다시 살아갈 현생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유럽도, 산티아고 순례길도 처음인 나에게 큰 도전이라 낯선 곳에 던져서 살아낼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것이 순례길을 택한 이유다. 어찌보면 공식적으로 혼자인 마지막 시기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선택한 이유.




“솔직히 조금 미웠어요. (지금도 마음이 왔다갔다 해요) 그래도 지금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혼자 다녀올 좋은 타이밍이라는 것도 너무나 이해해요. 시간이 지나더라도 결국에는 갈 것 같으니 다녀오기 가장 좋은 시기인 지금 다녀와요.”



예비 남편 동욱의 승인이 떨어졌다. 사랑하는 마음이 미운 마음을 이겨준 덕분에 퇴직금을 들고 난생처음 유럽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9월의 신부가 될 각오를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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