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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 Aug 31. 2024

두려움 뒤에 서있는, 아직 보지 못한 용기

순례길 신부 입장 ep.09

무서울 때마다 품에서 검을 뽑듯이 휴대전화를 꺼내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누른다. "거기 누구야, 나 이거 다 찍고 있어!" 휴대전화에 제일 많이 저장된 영상 속 목소리다. 대부분은 풀 속에서 바스락거리며 호로록 움직이는 작은 도마뱀이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내가 느끼는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의 모양들이 참 다채로웠다. 씩씩하게 걷다보면 매일 새로운 두려움이 예고 없이 튀어나온다. 검처럼 뽑아든 휴대폰 동영상 속 얼굴과 목소리에 고스란이 담겨있는 걸 보고 나중에 얼마나 깔깔 웃었는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흔들거리는 동공으로 지금 처한 상황과 지금 느끼는 내 감정을 천천히 말하는 모습이 짠하기도 했다.


첫번째 만난 두려움은 의심 섞인 막연함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내내 과연 내가 이 길을 다 걸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유럽도 처음이고 영어도 스페인어도 포르투갈어도 전혀 안 되는 내가 친구 한 명은 사귈 수 있을까, 알베르게 2층 침대에서 자다가 떨어지면 어쩌지, 복도가 무서운데 자는 도중 화장실에 가고 싶어질 땐 아침이 올 때까지 참아야하나.


어디 그것뿐이랴. 남녀 구분 없는 낡은 알베르게 도미토리에서 짐을 누가 가져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누군가 나를 만만하게 보고 추근덕대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쓰고 나니 민망하네.), ATM에서 돈을 뽑을 때 도둑이 나를 보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베테랑 순례자들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길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두려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향해 한심한 한숨을 팍 터뜨린다. 그야말로 스스로 만든 검은 감정의 축제.



걷다보니 축제도 잦아들었다. 아니, 걸어야만 잦아들었다. 비로소 도마뱀 소리에 놀라지 않는 날이 왔다. '작은 도마뱀 너 또 거기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아 친근한 기분이었다. 문득 스스로가 기특해졌다. 두려움을 통과할 때마다 두려움이 있던 자리에 기특함이 환하게 자리 잡았다. 걸을수록 마음이 점점 더 환해졌다. 걷는다는 것은 계속해서 나에 대한 믿음을 쌓아가는 일이다.


이것은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등불에 빛을 하나씩 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이 길은 어제 두려웠던 것이 오늘 두렵지 않게되는 감각을 선물했다. 여전히 경험하지 못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걸으면서 또 무서워할테지. 그래도 어제처럼 그리고 오늘처럼 한걸음이라도 걸으면서 두려움인줄 알았던 곳에 불을 켜게 되지 않을까. 꺼진 등에 불을 켜는 행위를 산티아고 대성당 앞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오늘도 일기를 쓴다. 순례길 일기장 마지막 이야기가 나도 궁금하다.



오늘은 골레가라는 마을에서 출발해 30km 조금 넘게 걸어 토마르라는 마을에 왔다. 아름다운 마을인데 걸어서 오지 않으면 몰랐을 곳이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보다 이 마을이 더 생각날 것 같다. 알베르게에 짐을 놓고, 코인 세탁기에 빨래를 돌린 뒤 빠르게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렸다. 내일 다음 마을로 떠나기 전에 토마르를 눈에 더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손빨래를 하지 않고 코인 세탁기로 사치를 부릴 만큼 평화가 흐르는 마을이었다. 중세 유럽풍 성당, 골목골목 아기자기한 상점들, 하얀 건물 벽을 타고 꽃나무가 이어졌고 나무로 만든 창 앞에는 예쁘게 생긴 고양이가 쉬고 있었다. 아름다운 곳에서 평생 여유로움을 즐겼을 이 고양이가 부러웠던 순간이다.

토마르에서 만난 예쁜 고양이



토마르 구경을 끝으로 식료품점에서 장을 보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공용 거실에 마티아스와 쿡이 있었다. 알베르게에 '파티마 붐'이 불어서 시끌시끌했다. 성모 마리아가 발현된 곳으로 유명한 성지인 파티마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데, 내일 새벽 다같이 파티마로 가는 버스를 타고 오후까지 파티마를 관광한 뒤 저녁에 다시 토마르에 오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럼 파티마도 즐기고, 아름다운 토마르에서도 하루 더 묵을 수 있으니 나름 괜찮은 계획처럼 들렸다. 토마르의 묵은 순례자의 반 이상이 파티마로 가는 것 같았다. 침대에 앉아서 양말을 널고 있으니 쿡이 와서 말을 건다.


"내일 저는 마티아스랑 파티마에 갈 것 같아요. 버스표 구하기가 쉽지는 않은데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같이 갔으면 하는 눈치다. 옆 침대에 있던 스페인 사람 디다카 할아버지도 휴대전화를 보여주면서 묻는다.


"세실, 여기가 파티마래. 너 갈래?"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속도로 걷는 순례자들 중 마음 맞는 순례자들과는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그리고 지도에만 의지하던 마음이 사람에게도 살짝 기운다. 생초 순례길을 걷고 있는 나는 여러차례 순례길을 걸어온 이 베테랑 순례자들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컸다. 친구들이 부담스러워할까봐 내색하지 않았지만 티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한번씩 이 친구들과 떨어져 온전히 혼자가 되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을 상상해보곤 했다. 대체로 생각하기 싫었다. 그런데 이제 이 두려움이 떨어질 차례가 된 것일까? 나와 동행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에게는 너무나 고마웠지만 그곳으로 가는 것이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 내 마음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파티마는 어렸을 때부터 천주교 신자인 엄마로부터 많이 듣던 곳이라 궁금했지만, 그곳으로 발길을 돌려서 하루를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이제 혼자 걸으라는 신호가 아닐까. 언젠가는 혼자 걸어야할텐데 이제 받아들이고 혼자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내 마음은 계속 산티아고 방향을 향해 걷기를 원했다. 떠나기 전에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내 마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로 결정했다. 마티아스와 쿡에게 나는 내일 산티아고 방향으로 이어서 걷겠다고 말했다.

쿡이 셋팅해놓은 아침 식사 자리

다음 날 아침, 우리 셋은 마지막 아침 식사를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사진 엽서를 두 사람에게 주었다. 지금까지 이 길을 걸으며 나를 많이 도와준 나의 까미노 프렌드, 까미노 엔젤. 한국에서 포착한 나의 행복한 순간들을 처음으로 선물한 순간이다. 많이 그립겠지만 그리울 수 있는 벗들이 있다는 것도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우리 각자의 까미노를 걷는 것이 모두에게 기쁜 방향일 것이다. 커다란 두려움이 꺼지고 용기라는 불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혼자 걸을 용기가 생긴 것이다.


밥을 다 먹고 숙소에서 나서기 전 배낭을 잠시 내려놓았다. 계속 가지고 다녔던 나의 까미노 사치품,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꺼냈다. 무서울 때마다 나처럼 느껴지는 책의 주인공 '산티아고'의 여정을 펼쳤다. 혼자 남겨져도 이 책을 쥐고 있으면 산티아고와 함께 하는 것처럼 안심이 되었다. 이제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 없이도 혼자 걸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책을 펴고 이름 모를 순례자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순례자가 많지 않은 이 길을 따라 토마르에 도착할 한국인 순례자에게, 겁보 순례자 한 명이 무사히 두려움을 통과했으니 걱정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내가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중에서

알베르게 공용 거실 한 쪽에 책을 놓고 나왔다. 파티마 방향으로 가는 쿡과 마티아스가 아주 작아질 때까지 손을 흔들다가 산티아고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만나지 않은 두려움을 향해, 아직 보지 못한 용기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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