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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 Sep 04. 2024

돈 안 되는 숲 속 무인 카페

하루에 7시간 많게는 9시간 정도를 걸었다. 걸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다 합쳐서 1시간도 안 된다. 대부분 혼자 걷고 혼자 대화한다.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재밌다. 평소에는 잘하지 않는 혼잣말이 걸으면서 많이 늘었다. 걷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괜히 한번 뱉어보고 그 생각에 또 다른 생각을 보태고 보태다 보면 정말로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 같다. 하루는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건 하우절처럼 살아도 좋겠다.' 모건 하우절은 <돈의 심리학>을 쓴 작가이다. 작년에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책이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묻고, 내가 생각하는 돈의 역할과 행복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떠들었다. 이런 생각이 든 건 왜일까. 걸으면서 은연중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있었기 때문일까.


'진정한 성공은 나를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얻는 데 압도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순자산의 수준이 아니라 네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이다.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금융 조언은, 너나 대부분의 사람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돈이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 중에서


<돈의 심리학>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다. 지금 내가 살고 싶은 방향과 유사하다. 순례길 위에서 이 구절이 다시금 생각난 데는 무언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퇴사하기 직전까지 나는 부동산 분야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현 시장에서 대중들에게 도움이 되는 강의를 기획하는 일을 했다. 부동산으로 큰 자산을 이룬 분들을 일적으로 많이 만나면서 돈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돈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면 행복과 멀어진다는 것도 추체험하게 되었다. 현실적인 것을 직시하면서도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놓치지 않기 위해 알아차리려고 노력했던 날들이었다.


돈돈돈거리는 것을 천박해하던 낭만주의자가 돈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배고픈 상태에서는 음악을 들을 수 없는 현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책을 통해 만난 모건 하우절은 돈과 낭만의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소설가의 기술을 가진 금융 작가 모건 하우절처럼 일에 대한 전문성을 뾰족이 하고 동시에 삶의 중요한 것들을 지키며 살아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걸으면서 특정한 어떤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다니 재밌다.


모건 하우절은 사랑을 얻는 데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순자산의 수준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고 말한다. 그때 마치 신이 답을 알려주는 것처럼 누군가 만들어놓은 오아시스를 만났다. 누군가 배고픈 순례자를 위해 만들어 놓은 공간이었다. 마침 간식이 떨어져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른 참이었다. 과일, 차, 커피, 따뜻한 물, 우유, 쿠키가 테이블 위에 이쁘게 셋팅되어 있다. 달달한 쿠키를 한 입 베어 무니 살 것 같다. 순례자를 상징하는 조형물들도 보인다. 손으로 만든 것 같았다. 아주 작은 기도방 같은 것도 있었다. 그 안에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 십자가, 그리고 까미노를 상징하는 것들이 있었다.



이런 무인 카페는 이용한 후 돈을 두고 가는 게 암묵적 룰이다. 원하는 만큼 넣을 수 있는 돈통이 있기는 했다. 나와 비슷한 순례자들이 충분히 쉬고 여기에 몇 유로를 넣겠지. 그러나 이게 돈이 될지는 의문이다. 산티아고 포르투갈 루트는 순례자가 많이 없어 카페를 이용하는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포르투갈길에 순례자를 위한 인프라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몇 안 되는 순례자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이 공간 주인의 마음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다. 이름 모를 순례자를 위해 공간을 만들고 음식을 채워놓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이렇게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어디서, 어떻게 배우신 걸까. 그때, 수레에 커다란 물통을 싣고 무인 카페로 오는 늙은 농부가 보였다.


"혹시 이 공간을 만든 분이세요?"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포르투갈어로 물어보았다. 주름마저 아름다워 보이는 선한 인상의 농부 아저씨가 씨익 웃으며 끄덕인다. 돈 대신 생명을 만드는 사람의 웃음. 순례길을 걷다 보면 뜻밖의 친절을 받게 된다. 전날에는 숲 속으로 피크닉 나온 가족들이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초대해 따뜻한 커피와 직접 만든 수제 쿠키를 나누어주었다. 닮고 싶은 친절이다. 돈 안 되는 숲 속 무인카페를 만드는 마음, 가족 피크닉에 이름 모를 순례자들의 쿠키까지 함께 굽는 마음. 책구절에 본 성공한 삶이라는 것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걸으면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우고 있다. 이렇게 받은 사랑을, 이렇게 배운 친절을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수 있기를. 까미노 엔젤들의 친절이 나를 거쳐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흐르고 흐르기를.

물통을 수레에 싣고 무인카페로 가는 포르투갈의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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