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혼자가 되고, 다시 걷는다.
분명 이곳은 잠자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누우면 이리저리 뒤척이기만 하다 보니 어느새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몸은 쉬었는데 잠은 못 잔 기분. 가장 애매하게 피곤한 상태다.
대충 씻고 식당으로 내려가 아주머니께 그동안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며 아침을 먹었다. 아주머니께서는 앞으로도 몇십 년은 더 일하실 거라며, 언제든 다시 놀러 오라고 하셨다. 몇십 년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든든했다. 밥을 먹고 다시 샤워를 하고 짐을 정리하는 동안, 사감님께서는 계속 집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하셨다.
“버스 타고 올라가서 일주일 푹 쉬고, 다시 홍성으로 내려와서 다시 시작해.”
“한번 나왔는데 되돌아가는 건, 그 자체로 포기가 되잖아요. 물집도 이제 굳은살이 돼서 걷는 데는 별 지장 없어요.”
논리는 그럴듯했지만, 사감님은 끝까지 돌아가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마지막이라며 커피까지 타주시고, 정문까지 직접 배웅해 주셨다. 정이 많은 분이다. 그만큼 더 미안했다.
오늘의 일정은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와 김좌진 장군 생가를 거쳐 보령으로 가는 코스다.
중간 지점인 광천으로 가는 길에 자전거 여행자 세 명을 만났다. 자전거에 깃발까지 달고, 뭔가 적혀 있었지만 거리가 멀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 가세요?”
“보령이요!”
“수고하세요!”
그 말만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이럴 때마다 자전거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길을 걸을 때마다 민가가 나오고, 민가에는 어김없이 철망 속 개가 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지나가자마자 격렬하게 짖기 시작한다. 그런데 꼬리는 흔든다. '넌 지금 화난 거야 반가운 거야?' 애매하다.
근처에 도살장이 있는지, 돼지를 실은 트럭이 종종 지나갔다. 차가 지날 때마다 돼지 특유의 향이 공기를 채웠다. 향긋하다기엔 조금 복잡한 감정이 드는 향이다.
보령과 만해스님 생가로 갈라지는 교차로가 나왔다. 직진하면 보령, 오른쪽이면 생가. 멀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생가 쪽으로 몸을 틀었다. 안면도 방면 96번 도로를 따라 계속 걸었다. 배가 고파 선식을 먹을까 고민하던 중, 농협 마트가 보였다. 동전도 처리할 겸 우유와 파워웨이드를 샀다. 인상 좋은 누나가 계시길래 조심스럽게 깎아달라고 했더니 200원을 깎아주셨다.
선식을 우유에 타 먹고 나오려는데, 농협 누나가 호떡빵을 주셨다.
“인심 쓰는 거예요. 배고플 때 드세요.”
그 순간, 이 여행은 아직 사람 덕이 남아 있구나 싶었다.
농협에서 조금 더 가자, 도로 위에 족제비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머리가 치인 듯 심하게 상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족제비였는데, 이런 모습으로 만나니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길을 걷다 보니 초등학생 여자아이 둘이 하교 중이었다. 나를 낯설어했는지 차선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그러다 내 등에 붙인 ‘무전여행중’을 봤는지 깔깔 웃기 시작했다.
“무전여행중이래~”
저 잔 웃음이 은근히 기분이 상했지만, 초등학생에게 뭐라 할 수도 없고. 조용히 지나쳤다.
결성면에 도착하니 도로 표지판에는 ‘한용운 생가 6km’라고 적혀있다.
…6km. 힘들어 죽겠는데 6km라니.
마침 결성 농요 농사 박물관이 보여 잠시 들렀다. 각종 농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옛날 도구부터 지금도 쓸 법한 도구까지. 구경을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지만, 아무리 걸어도 생가가 나오지 않았다.
길가에서 일하시던 할아버지께 여쭤보니,
“한 10분만 더 가면 돼.”
그래, 10분쯤이야. 그렇게 힘을 내서 걸었고…
결과: 28분.
할아버지의 10분은 나의 28분이었다.
겨우 한용운 생가에 도착했지만, 이번엔 잘 곳이 걱정이었다. 게다가 파리들이 내 땀 냄새를 맡았는지, 아까부터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사진 몇 장 찍고, 결국 김좌진 장군 생가는 포기하고 되돌아가기로 했다. 그때 마침 동네 분이 차를 몰고 나오시길래 부탁해서 홍성 IC까지 태워주셨다.
톨게이트 근처에서는 경찰들이 음주단속 중이었다. 톨게이트에서 ‘보령 태워주세요’를 들고 서 있었더니 직원분이 나오셔서 여기서는 안 된다며 안 보이는 쪽으로 내려가라고 하셨다. 내려가며 계속 차를 태워달라는 손짓을 했고, 결국 한 차가 섰다.
“보령이 어느 쪽이에요?”
“남쪽이요...”
“타세요.”
결혼을 앞둔 커플 같았다. 차 안은 내내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여자분은 아침햇살을 주셨고, 물티슈로 얼굴이라도 닦으라며 챙겨주셨다. 괜히 더 민망했다. 대천해수욕장까지 태워주셨고, 인연이라고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며 조개구이를 사주셨다. 조개구이 대(大)에 칼국수까지. 양이 너무 많아 조개가 남아돌았다. 배가 너무 불렀고 저녁 8시가 되는 시간이라 잘 곳 핑계를 대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문제는 숙소였다. 해수욕장 주변은 콘도와 여관 천지였다. 성당에 가봤더글쿤니 숙박비를 받는다. 성당조차 돈을 받고 숙박을 하니 어디를 가도 재워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수학여행 온 듯한 고등학생 무리가 보였고 선생님들께도 부탁해 봤지만, 역시 거절.
결국 여관 밀집지역을 벗어나던 중, 아파트를 발견했다. 문득 아파트 옥상에서 몰래 자면 괜찮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그 전에 화장실을 찾으려 했지만 실패. 그대로 옥상으로 올라갔는데, 기적처럼 돗자리가 하나 깔려 있었다. 침낭 밑에 깔 판이 딱 필요했는데... 씻지 못한 찝찝함을 안고, 그렇게 옥상에서 첫 노숙을 했다.
(잘 곳을 찾아 헤맬 때 여관 호객하는 형들이 싸게 해 준다며 들어오라고 하셨다. 돈이 없다고 하니 무전여행이냐고 물으셨고, 그렇다고 하자 웃으시면서 “그럼 어떡하냐”며 진심으로 걱정해 주셨다. 생각해 보면, 그날 밤 내가 잘 곳을 찾지 못할때 나를 가장 걱정해 준 사람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