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즐거움을 안다는 것

내가 아이를 키우고 싶은 방향은

by 도토리


아이를 키우며 내가 가장 간절히 염원했던 목표는 ‘읽는 즐거움을 아는 존재’로 길러내는 것이었다. 아이가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세상 속을 걸어가든, 그 주변에 책이 벗처럼 가까이 있다면 아이는 거기서 스스로 삶의 지도를 발견해 낼 것이라 믿었다.


백일이 채 되기 전, 서둘러 이름난 유아 전집을 들였다. 당시 유아 전집의 양대산맥 앞에서 오랜 고민과 검색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하나의 세계를 골라 닳도록 읽어주었다. 스스로 목도 가누지 못하는 아이에게 쉴 새 없이 말을 건네고, 영어책과 동화책의 문장을 읊었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고, 나 또한 입덧으로 직장을 떠난 터라, 하루 종일 나의 목소리를 들어줄 이는 오직 아이뿐이었다. 아직 옹알이도 시작하지 않은 아이를 품에 안고 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불렀으며, 함께 빛 속을 거닐었다.


꽉 찬 세 살까지는 오롯이 품에 안아 기르고 싶어 박물관과 아쿠아리움의 문턱이 닳도록 방문했다. 돌아와서는 늘 연계 독서라는 명목 아래 갖가지 책들을 펼쳤고, 하나의 개념이나 단어에서 가지를 뻗어 나가듯 또 다른 책들의 세계로 아이를 이끌었다. 유아 때 구입한 전집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건져 올리거나 당근 마켓에서 무료 나눔 받은 책들이었다. 아이스커피 두 잔을 들고 헌 책의 나눔을 받으러 가는 길은 어찌나 설레고 풍요로웠던지. 거실 중앙에 책장을 두고 아이와 함께 책으로 피라미드를 쌓고, 징검다리를 만들고, 비밀스러운 아지트까지 지으며 까르르 웃어넘겼다. 때로는 누가 먼저 책을 찾나 겨루기도 하고, 전혀 무관한 책 제목들을 연결하여 엉뚱한 이야기 만들기 대회를 열기도 했다.


가끔 주말이면, 우리 세 식구는 작은 발명 대회를 열었다. 서로의 일상 속 사소한 불편함을 찾아내어 해결책을 강구하는 놀이였다. 스케치북에 해결 방법을 그리고, 기발한 제품명을 붙이는 유쾌한 과정이었다. 예를 들면, 요즘 피곤하다는 아빠를 위해 유산균과 비타민이 가득 담긴 팬티를 발명하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발명품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식이었다. 아이디어의 원천은 늘 책 속에 넘쳐났다. 우리는 언제든 그곳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거실 바닥, 소파, 침대 위에는 언제나 책들이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일부러 정리하지 않았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항상 영어 또는 한글 동요가 흘러나왔고, 아이가 책에 몰입하는 순간에는 드뷔시의 고요한 선율로 공간을 채워 넣었다. 또래 친구들이 보는 만화를 몰라 투정 부릴 때도 있었지만, 웬만하면 TV 노출을 막으려 했다. 심심할 때 자연스레 책에서 즐거움을 찾는 내면의 메커니즘을 심어주고 싶었다.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만 들리면 침을 흘리듯, 아이가 심심할 때는 늘 책을 찾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잠자리 독서에는 따로 시간을 제한하지 않았다. 세 살까지 기관에 보내지 않았으니, 아이가 피곤해하지 않는 한 밤 깊도록 책을 읽어주었다. 네 살, 처음 어린이집에 가던 날, 아이는 원장선생님께 "저 어린이집 한 번도 안 다녀봐서, 엄청 기대돼요!"라고 또렷이 말했다. 흔한 덕담이었겠지만, 아이가 또래답지 않게 말을 참 잘한다는 원장님의 칭찬은 내게 큰 기쁨이었다.


기관 생활이 시작되자, 아이는 집에 있는 책들로는 충족되지 않을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원 후에는 매일 어린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그 공간에서 아이는 자유로이 책의 숲을 거닐었다. 나는 아이가 흥미로워할 책들을 슬그머니 아이의 자리 옆으로 밀어 넣어주고, 아이가 원하면 읽어주고, 아니면 그림을 보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상상하게 했다. 아직 글을 읽지 못하던 아이는 그림책을 펼쳐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을 즐겼고, 나는 그 기발한 상상을 아낌없이 추켜세워주었다.

도서관을 나선 후에는 언제나 놀이터로 향했다. 도서관에서의 즐거운 경험 뒤에는 반드시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연결 고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놀이터에서 실컷 뛰어 논 아이는 집에 와서도 책과 함께 밤을 보냈고, 잠들기 전 누워서도 끝없이 이야기를 엮어냈다.


나는 자주 불 꺼진 아이 방에서 그림자놀이를 했다. 빛과 그림자가 빚어내는 무대 위에는 늘 이야기가 등장했다. 아이와 내가 한 문장씩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짓는 놀이는 참으로 즐거웠다. 내가 나름의 구조를 갖춘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이는 어김없이 '똥, 방귀, 오줌' 등의 단어로 이야기를 끌고 가려했고, 그러면 나는 "너, 정말 이럴래~?" 하며 과장되게 타박하며 아이를 간지럼 태우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아이는 유아기부터 낮잠이 거의 없었다. 엄마에게 유일한 휴식 시간인 낮잠 시간을 빼앗긴 것 같아 속상하고 지친 날도 많았다. 하지만 아이는 굳이 그 시간에 놀아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자지 않겠다며 투정 부리는 아이를 억지로 재우다 함께 잠들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깨어있겠다며 고집부리는 날에는 "엄마는 쉬어야 하는 시간이니, 너 혼자 놀아"라고 선언하고 안방 침대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면 아이는 혼자 뒹굴거리다 잠들거나, 책으로 도미노를 만들어 거실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집에서도 낮잠을 거부하여 다른 아이들의 낮잠에 방해가 된다며 혹시 데려가 주실 수 있냐는 하원 요청 연락을 숱하게 받았다. 그럼 나는 곧바로 차 시동을 걸고 아이를 데려와 도서관이나 박물관에서 에너지를 발산하게 했다. 선생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에 새벽 6시에 깨워보기도 했지만, 결국 편하게 전화 주시면 언제든지 하원하러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사립 유치원을 고를 때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책 읽기를 모토로 삼는 유치원을 선택했다. 다양한 독후 활동, 독서 골든벨, 몬테소리 수업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매일 쓰는 독서 기록장을 결산하여 한 달에 한 번 독서왕 배지를 수여하는 제도는 아이에게 큰 동기가 되었다. 아이는 늘 교실에서 가장 많은 독서왕 배지를 받는 아이가 되었고, 그것은 아이의 자부심이 되었다. 짧은 독서 기록장 한 권을 채우고 빳빳한 새 책을 받는 성취감, 그리고 결말을 다르게 짓거나 주인공을 바꿔보는 식의 다양한 독후 활동 프로그램들은 아이의 독서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아이 앞에서는 웬만하면 휴대폰 대신 책을 보려 노력했다. 책 속에 휴대폰을 숨기고 웹툰을 보거나 쇼핑을 했던 날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아이 눈에 '책을 가까이하는 엄마'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부단히 애썼다.


여덟 살이 되던 해, 친한 언니의 조언으로 원서 읽기를 시작했다. 페이지당 단어 하나만 나오는 그림책부터 시작해서, 매일 한 시간씩 목이 쉬도록 영어 책을 읽어주었다. 유튜브를 본 적이 없던 아이는 영어 영상 노출을 시작하자 빠르게 몰입했고, 놀라운 속도로 언어를 흡수했다. 엄마표 영어 관련 서적들을 모조리 빌려와 읽으며, 왕복 한 시간이 걸리는 영어 도서관에서 원서를 빌려왔다. 재미없어하는 책은 미련 없이 반납하고, 아이의 취향에 맞는 '대박 책'들을 하나둘 발견해 갔다. 아이의 취향을 발견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아이가 재밌다고 좋아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자막 없이 보는 영상에 아이가 익숙해졌을 무렵, 원하는 디즈니 영화도 보여주기 시작했다. 별도의 파닉스 교육 없이도 아이는 잘 따라와 주었고, 감사하게도 아홉 살 여름에는 챕터북을 읽기 시작했다.


어제는 아이가 학원을 마치고 차에 타자마자 흥분하여 외쳤다.


"엄마! 나 진짜 인생 책을 찾았어! 내 인생 통틀어 이렇게 재미있는 책은 처음이야. 이 책을 읽는데, 페이지가 사라지는 게 너무 아깝고,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진짜 감사했어!"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니. 나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이로운 표현이었다. 아이는 연이어 "엄마, 오늘 제발 도서관 가서 시리즈 다 빌리면 안 돼? 진짜, 제발!"하고 애원했다. 결국 퇴근 시간의 교통체증을 뚫고 왕복 40분을 달려 도서관에 도착했고, 카트 가득 50권의 시리즈를 빌려왔다. 아이는 정말 행복하다며 품에 안겨왔고, 연신 엄마는 역시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나는 "돈 드는 일 아니면, 엄마가 다 해 주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지만, 아이가 이토록 기뻐하니 덩달아 즐겁고 뿌듯했다. 아이는 저녁 내내 책에 빠져들었다. 다른 집과는 달리 식사 중 독서와 영상 시청을 허용하는 우리 집이기에, 아이는 포장해 온 피자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을 쑤셔대는지도 모를 만큼 몰입해서 책을 읽었다.


읽는 즐거움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라는 책을 참 좋아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전에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새롭게 드러나는 '시선의 변화'를 겪는 것이며, 내면의 사색을 동반하여 기존의 사고를 도끼처럼 내리치는 충격을 경험하는 것이다.

아이에게도 책이라는 것이 그런 도끼 같은 존재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무언가를 깨부수고, 틈을 내고,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그 조용하지만 강력한 울림으로 아이의 사유를 넓혀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울림을 느끼는 아이를 곁에서 바라보는 일은, 엄마인 나에게도 작은 기적 같다. 책을 읽으며 눈이 반짝이고, 마음이 커지고, 자기만의 문장을 만들어가는 그 과정을 보는 일. 그 모든 순간이, 내가 아이에게 바랐던 단 하나의 목적이기도 했다.


나는 아이가 책을 통해 지식의 축적을 넘어,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안경'을 얻기를 원한다. 미지의 세계에 공감하고, 견고했던 자아가 깨지는 성찰을 경험하며, 나아가 자신이 딛고 선 땅의 구조와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지 않은 예민한 감수성을 키워내는 것. 이것이 내가 바라는 '읽는다는 행위'의 궁극적인 의미이다.


내가 바라는 건 ‘성공한 아이의 뒤에는 엄마의 노력이 있었다’ 같은 서사가 아니다. 대부분의 인생은 특별한 사건 없이 흘러가는, 시시하고 고요한 일상의 연속이다. 삶은 거창한 순간보다도, 놀이터에서 뛰던 한 시간, 책장 넘기던 서늘한 종이 감촉, 잠들기 전 우리가 만들던 엉뚱한 이야기 같은 작은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작은 순간들을 스스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

혼란의 순간에 책 한 권을 펴고, 거기서 한 줄의 위로나 단서를 건져 올릴 줄 아는 사람.


나는 내 아이가 그런 아이였으면 한다.

그것이 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그리고 내가 끝까지 지키고 싶은 최소한의 사랑이라고 믿는다.


아이가 펼친 책 속에 세상의 지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 아이의 마음속에는 스스로 길을 낼 수 있는 단단한 도끼 하나는 쥐어진 것이라 믿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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